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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애 May 03. 2024

역사를 '읽지' 않고 과거를 '보다'?

중국계 미국인 켄 리우는 대단한 SF작가다. 그의 단편집 "종이동물원"에 들어있는 단편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역사 다큐+SF의 소설이다. 이차 대전 중 하얼빈 근교  핑팡에서 일본군 731부대가 벌인 생체실험이라는 만행이 중심에 있다.  이 다큐 소설을 SF에 포함시킨 것은 과거를 볼 수 있는 첨단 기술을  역사 연구에 이용하고, 만행의 역사적 현장으로의 첨단 기술 여행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묘사된 731부대의 만행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나 작가가 다 엄청나게 리서치한 팩트들이다. 주인공인 중국계 미국인 일본사 학자인 웨이 박사는 우연히 영화 "칼의 철학"을 보다 영화에 삽입된 만행의 현장을 접한 순간 역사의 추상성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그때부터 웨이 박사는 731부대에 의한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겠다는 일에 전념한다. 애인이던 물리학 박사 아케미 기리노의 도움을 얻어 뵘기리노 입자를 통해 과거의 정보를 재구축할 수 있는 기계를 설계하고 과거 여행 참가자를 모집한다. 참가자 두뇌와 연결된 기계는 뵘기리노 입자장에 압축된 과거의 정보를 현실적인 시청각 장면으로 만들어내어 참가자들로 하여금 과거를 직접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보는 어떤 별의 빛이 20년 전의 빛이듯이, 한 쌍으로 만들어지는 뵘기리노 입자를 통해 그것이 생성된 순간에 존재했던 모든 종류의 정보를 재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정...... 과학적으로 가능한 가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731부대의 만행은 기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왜 과거를 읽거나 듣지 않고 직접 '본다'는 SF적인 장치가 필요한가? 오래 전 독일 유학 시절에 본 스위스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 제목도 내용도 생각 안나는데, 한 가지 장면은 인상적이라서 생생하다.  스위스 중세의  한 영웅의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가 스위스의 어느 소도시에 들렀다가 길 바닥에서 오래된 종을 발견하고는 그 종을 흔들어본다. 그러고나서 어느 골목에 들어서니 완전히 중세의 배경으로 바뀌어있었고 사람들도 그랬다. 종을 다시 흔드니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켄 리우의 "역사의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첨단 기술 장치를 매개로  동일한 일을  실행한다.


모든 기록, 문서, 영상 자료까지 있는데도 왜 역사를 '보고자' 한 것일까? 이미 지나간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기억이나 기억을 돕는 자료 외에는 없는데? 역사에서 일어난 일을 마치 현재처럼 느끼고 공감하기는 진짜로 힘들다.  역사에 있어왔던 거대한 고통 전체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도 극히 제한적이다. 731부대 희생자 몇명의 이름을 찾아낸다고 해도 그들에 대한 애도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애도에 불과하지 않은가? 웨이 박사의 역사관을 개인화된 역사관이라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비판한다. 역사 기록이 지닌 추상성도 문제가 있지만, 감정에 휩쓸린 증언의 주관성도 진실 탐구와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어차피 역사상의 모든 희생자를 구체적으로 애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기껏해야 몇 몇 희생자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역사 무용론자들도 있다. 역사가 밥을 주냐 떡을 주냐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 아니겠냐는 현실주의자들도 있다.


그런데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나간 불의를 부정하고 은폐하기 때문에 불의가 역사적으로 반복된다. 그래서 20XX년 11월 26일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731 부대에 가담한 장교들은 전후 일본에서 빛나는 경력을 이어갔다. 그둘 가운데 세명은 나중에 녹십자가 된 일본 혈액은행을 설립했고. 생체실험에서 얻은 혈액동결기술을 이용한 제품을 한국 전쟁 당시 미군에 판매해서 막대한 수익을 얻었고, 731부대 사령관은 미국에서 미군의 생물학 무기 연구에 협력했으리라 추정되고, 인체 실험으로 얻은 자료를 이용한 논문들, 실험 자료들... 등 우리 모두는 부지불식간에 당시 벌어진 잔학 행위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일본군 731부대가 저지른 짓을 보니, 하얼빈 근교 핑팡은 중국의 아우슈비츠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일본 정부는 사과를 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 사과는 추상적인 사과일 뿐,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이 아닌 공허한 일반론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추상적인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같은 가해국으로서 독일과 일본의 차이.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억은 완결된 것(고통과 불행)을 완결되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역사에서 완결된  고통과 불행을 되돌릴 수는 없다.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종교적 구원에 해당되는 것이다.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기억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미 완결된 불행을 완결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완결된 불행에 대한 기록을 '읽고' '듣고' 바로 잊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역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역사를 나의 체험으로 만드는 것... 켄 리우라는 작가는 이러한 태도를 희망한 것 같다. "역사의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웨이 박사의 아내 기니로 박사의 다음 멘트로 끝난다.


"우리가 이 지구 위를 걷는 매 순간 우주의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역사학자들은,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망자들의 착취자 노릇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발 딛는 곳마다 마치 창밖을 내다 보는 것처럼 쉽게 과거를 보게 해주는 뵘기리노 입자장이 우리를 뒤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비명을 들으며 유령들 사이를 걷고 있는 겁니다. 눈을 돌릴 수도 없고, 귀를 막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보고, 말해야 합니다. 바로 잡을 기회는 오직 한번 뿐입니다."(켄 리우, "역사의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과거 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려졌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세대에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과거는 우리에게 이 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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