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을 깨우는 소리의 여행 첫날 시작
'드르르르드득 드르르르드득'
새벽 5시. 단잠을 깨우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내 귀를 규칙적으로 괴롭혔다. 평소 기상 시간이 8신데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피곤한 마음에 울컥함이 먼저 올라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부스륵 몸에 포개져있던 이불을 위로 젖히면서 아래쪽 잠자리를 살펴봤다.
“안 자고 뭐하고 계셔요?”
“아름아 깼니. 이 짐가방이 도대체 열리지가 않네.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아.. 그거 내가 좀 이따 아침에 해결해보려 했는데… 피곤할 텐데 좀 주무시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나도 피곤하고 졸린 마음에 잠 좀 더 주무시지라는 말로 이리저리 돌려가며 눈치를 줘봤지만, 도통 먹힐 것 같지 않아 보여 2층 침대에서 내려왔다. 엄마랑 명숙이 아줌마는 잠을 청하고 있었지만, 불을 안 키고는 상태를 해결해볼 수 없는 상황이라 불을 켠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도 여행 짐가방에 붙어 빈틈 새로 흘러나오는 비밀번호 숫자의 단서를 잡을까 싶어 눈을 요리조리 돌려봤다. 마음 같아선 비밀번호로 굳건히 닫혀있는 숫자판을 망치로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망치를 쉽게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었고, 앞으로 남은 일정에 비밀번호 판이 고장 난 채 열려 진 상태로 끌고 다녀야 하는 가방으로 2차, 3차의 추가 피해를 볼 생각을 하니 끔찍한 상상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폭력적인 방법은 접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한 시간 가량을 낑낑 매달려 네 자리 비밀번호를 풀어보려 애썼지만 수하물은 열리지 않았다.
새벽 여섯 시가 되었다. 아침도 아닌 너무 이른 새벽이라 근처 서비스 센터에 찾아가 볼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곰곰이 생각하고 짱구를 굴려도 그럴듯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이전에 들었던 드르륵 소리가 귓가에서 더욱 강하게 맴도는 것 같았다. 졸렸던 눈은 정신을 차렸지만 머리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는데 한쪽 귓가에선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아름아, 이거 풀면 십만 원 줄게.”
돈의 문제는 아니었고, 이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야 오늘의 일정을 한 시간이라도 빨리 다 같이 행복하게 움직이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뭐든 해결해준다는 유튜브 플랫폼이 생각나 ‘캐리어 자물쇠 푸는 법’을 쳐봤다. 다양한 영상들이 있었지만 제일 먼저 뜨는 영상을 클릭해봤다. 볼펜으로 자크 망가트리지 않고 캐리어 자물쇠 푸는 법이라니 뭐든 봐야 하는 상황 속에서 더욱 반가운 영상이었다.
잠긴 캐리어 자물쇠 푸는 법은 이러했다. 다이얼이 있는 곳을 비스듬히 세워서 돌려보면 특정 번호에서 검정홀이 보이게 된다. 홀 있는 부분이 빛으로 반사되어 반짝거리면서 은빛으로 도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빛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내게 반짝이는 샘물 같은 것이었다. 홀이 중앙으로 오게 하고 그 상태에서 각 번호별 시계방향으로 두 칸씩 이동해주면 문이 열리게 된다.
똑! 맑고 경쾌한 소리였다. 정말 유튜버가 하라는 대로 따라 했더니 캐리어 서비스 센터를 가지도 않았는데 가방 문이 열렸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일곱 시가 되었다. 아직도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일찍 나가서 하루를 시작하자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진 빠지는 아침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한 여행 첫날의 기억으로 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지난날이다.
ⓒ2021. Rumi. All Rights Reserved.
* 글·일러스트의 저작권은 루미 작가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