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에 도착해서

홀로 떠난 20일간의 중국 여행 #1

by 물미역

밤 10시 5분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3시간 30분 후에 목적지인 중국 시안에 우리 시간 새벽 1시 35분, 현지 시간 0시 35분에 도착한다면 여행의 1일 차는 언제 어디서 시작이 되는 걸까. 한국에서 출발할 때가 1일 차, 그리고 중국에 도착하는 순간 2일 차가 시작되는 건가, 아니면 중국에서 1일 차가 시작되는 건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기 힘든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도 전에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함께 사는 여인의 차로 이렇게 배웅을 받을 수 있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인데 이는 순전히 일요일 밤에 출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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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구채구보다 더 경치가 좋다고 평가하기도 하는 구채구 인근의 황룡



짐을 끌고 공항 대합실로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선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휴가철 성수기도 아

닌 일요일 밤늦은 시간이라 좀 한산하겠지 하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탑승수속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들의 국적은 거의 가 다 중국 같고, 거기에다 그 줄의 대부분은 에어부산 발권데스크를 향해 있습니다. 상황판단이 채 안된 상태에서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시안에 가는 건가? 그리고 비행기 한 대에 이 많은 사람들을 다 태울 수 있을까' 하는 공포스러운 의문이 듭니다. 이 긴 대기줄이 다 에어부산항공 줄인 지 다시 한번 확인한 후에 일단 줄에 합류합니다.

대기줄에 서서 천천히 데스크를 향해 움직이는 동안 전모가 파악되는 것입니다. 다른 항공사들은 대부분 업무가 종료되고 있었으나 이 시간 이후에 김해를 뜰 중국 시안, 대만 그리고 몽골행 비행기들은 대부분 에어부산 소속입니다. 그제야 이 긴 줄이, 그리고 그 대부분의 예비 승객들이 중국말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여기가 중국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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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여행의 시작은 기다림에서부터.

나는 여기 그대로인데, 어느 순간 고개 들어 보면 그들은 사라지고,

내가 떠난 빈자리엔 또 다른 그들의 기다림이 시작될 거다.



물론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쓸데없이 여유 부리다가 여기 공항에 늦게 도착했었으면 낭패 볼 수도 있었겠다 하고 공항에 일찍 도착한 것을 자위하며 어쨌든 조금 서둘러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것이 낯선 외국에선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새삼 깨닫습니다. 보딩패스를 받기 위해 서 있던 아까의 긴 줄을 생각하면 탑승 게이트 앞 대기실 좌석이 비어 있을 리는 없고, 2층 인터넷 라운지로 가니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여 한 자리에 끼여 앉습니다. 한 명이 자기 가방 하나랑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얌체족 한 명을 골라 그 옆에 앉습니다. 그 족속의 가방을 끌어내리고(근데 이 정도의 얌체는 얌체도 아님을 중국에서 만난 각종의 진상들을 통해 절감하게 됩니다. 나중에). 그러고 보니 얘도 한국애가 아닙니다. 얼핏 보니 태블릿 PC 화면에 떠있는 글자들이 한글이 아닙니다. 중국애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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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인근에 있는 화산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와 환상적인 산세



폰에 눈을 두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앞에는 칼 라운지가 있습니다. 지난 2년간은 대한항공 모닝캄 회원의 혜택을 받아 인천과 부산 등지에서 칼라운지를 잘 이용했었는데, 누적된 마일리지가 부족해서 근간에 자격을 상실한 채로 입니다. 하지만 자격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내가 쥐고 있는 보딩패스는 저가항공인 에어부산항공 티켓. 대한항공 티켓이 아니면 이용하지 못하는 칼 라운지는 그림의 떡입니다.

그런데 칼 라운지의 입구에 붙은 안내 배너를 자세히 보니 현대 다이너스카드 회원도 입장이 가능한 겁니다. 앞서 모닝캄 회원자격이 상실되면서 어떻게 대체할 수단을 찾다가 알게 된 것이 현대카드에서 발급하는 다이너스 제휴카드입니다. 연회비 5만 원이면 가족카드 두장까지 추가로 발급해주고 어떤 항공을 이용하든지 관계없이 전 세계 많은 공항에서 다이너스카드와 제휴된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데 솔깃해서 가입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출발 전에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바로는 김해공항은 국내선에서만 이용 가능하다는 잘못된 정보를 보고 포기한 채로 그냥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기쁜 소식을 라운지에 자리를 잡자마자 내게 차를 태워준 여인에게 전화로 알려주니 나보다 더 기뻐하는 겁니다. 다른 이유에서 그렇게 더 기뻐했겠죠. 그 카드가 정말로 그런 효능을 가지고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그게 확인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사실 모닝캄 회원 자격상실에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낙담했던 사람이 바로 그 여인입니다. 그 이후 비행기 타기까지 한 시간 남짓 동안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맥주도 마시고 빵과 과자도 먹으면서 여유로운 좌석에서 다리도 꼬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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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을 설렘의 느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서 있는 공간과,

함께 몸을 맡겨야 하는 시간이 너무 익숙하지 않은



별로 가능성 없는 기대지만 비행기에 탈 때마다 혹시 옆자리가 비어갈 수 있으려나 하는 희망은 아마도 최소 세 시간 이상의 비행을 해야 하는 탑승객이라면 누구나가 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미얀마 갈 때, 운 좋게도 혼자서 세 자리를 차지하고 간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받았던 질시와 부러움에 찬 주위의 눈길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만큼의 편안함은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번에도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횡재를 내색하지 않으려 내내 표정관리를 하며 시안까지 갔습니다. 이런 운이 여행기간 쭉 지속되었으면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바람을 품고 말입니다.

심야 비행기를 예약하면서부터 떠나지 않는 걱정이 과연 심야에 현지에 내려서 그 시간에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마지막 공항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난생처음 가는 말도 안 통하는 공항에서 무사히 짐 찾고 공항버스 티켓 파는 곳을 찾아서 늦지 않게 그 버스를 과연 탈 수 있을까. 물론 여태까지 그런 경험을 수없이 해 봤지만 중국은 여느 지역과 달리 현지어를 못하면 자유여행을 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곳 아닙니까. 그리고 시안의 센양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40Km나 떨어져 있어 택시를 타면 우리 돈으로 2만 원을 훌쩍 넘는 비용이 든다는데(며칠 뒤에 구채구 가는 6시 5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다시 이 센양 공항에 왔는데 150원, 우리 돈으로 25,000 정도 주고 왔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대중교통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만) 이건 돈도 돈이지만 자유여행의 기본정신에 어긋나는 일일 뿐 아니라, 대장정의 시작을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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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성도) 인근 지역에 있는 여산의 대불



요즘 젊은이들 여행 관련 블로그를 보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자세히 특정 노선이나 정해진 목적지로 찾아가는 경로를 잘 설명해놓은 것들이 간혹 눈에 띕니다. 나도 그중 하나를 찾아서 부산에서 심야 비행기로 시안에 내려서 호텔을 찾아가는 경로를 상세하게 머릿속에 그려놓고 수없이 머릿속으로 연습을 해왔었습니다. 우리 비행기가 내리는 터미널은 국내선 전용 3 터미널이기 때문에 우선 2 터미널을 찾아서 거기서 공항버스 티켓을 끊어야 된다는 등 머릿속엔 이미 경로가 다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미지 트레이닝과는 다르죠. 조급한 마음에 거기로 나가야 된다고 외우고 있던 출입구 앞에 가서 문이 폐쇄되었으니 다른 출입구를 이용하라고 쓰인 영어안내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이거 어떡하지', '왜 문이 안 열리는 거지', '그럼 어떻게 밖으로 나가지'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무사히 버스 티켓을 끊고선 02:00에 출발하는 마지막 공항버스의 탑승게이트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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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의 호텔들을 프로모션(특가) 가격으로 예약을 하다 보니 호텔 조식이 거의 다 빠져 있어서 조식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25원에서 30원 정도의 가격으로 쿠폰을 구입해야 합니다. 20일간 호텔에 조식이 포함된 날자는 약 나흘밖에 안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일정이 새벽 일찍 호텔을 나서야 하고,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조식을 먹으러 간 경우에도 먹을 수가 없는 수준의 중국식 조식이 제공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그나마 괜찮았던 호텔 조식 뷔페(?) 중의 하나였던 시안 투요호텔의 조식과 친절했던 주방장 영감님. 먹고 난 접시를 직접 주방으로 가져다 주니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밖으로 나서야 하는데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첫날부터. 그리고 이 비는 시안을 떠날 때까지 계속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대기줄은 어느 순간 무너져 버리고, 줄 속에 서 있는 순서는 의미가 없다는 말을, 그리고 새치기를 아무런 죄의식이나 거리낌 없이 한다는 얘기들을 사전에 너무도 많이 머릿속에다 주입시켜 놓은 관계로 내가 앉아 있는 주위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 차라리 앉아서 눈치 보는 대신 개찰구 바로 앞에 서있기로 작심을 합니다(실제 이후로 수없이 많은 새치기를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처음에는 좌절감을 느꼈다가 나중에는 분노가 치밀고 그리고 조금 지나니 중국인처럼 되어야겠다는 체념 상태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20일의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하지만 첫날, 이 늦은 시간에는 그런 볼썽사나운 꼴은 보지 않고 시내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삐끼들이 날파리처럼 몰려듭니다. 이건 이미 미얀마에서도 많이 경험했던 일. 하지만 그런 축적된 경험이 또다시 새로운 상황에 처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내가 타야 할 택시를 미리 정해놓기라도 한 듯 자기들 택시를 타라고 들어붙는 개인택시 기사들을 무사히 뿌리치고 정식(?) 택시를 탔습니다.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요즘 수많은 범죄 혐의자들이 검찰청의 포토라인에 서기 전, 그리고 서고 난 후에 몰려드는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공세에 한마디도 않고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빠져나가는 건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 쓸데없이 끊임없이, 어디 한번 해보자, 받을 때까지 울어 델 테다 하고 작심한 전화기를 그냥 못 들은 채 무시하고 내 할 일을 하기가 힘든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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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 인근에 있는 석림


그런데 이렇게 어렵사리 탄 택시에서 난 중국에서의 좋은 첫인상을 경험합니다. 중국의 택시는 운전석과 조수석이 있는 앞 좌석과 뒷좌석이 솨 창살 같은 것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그 창살이라는 것이 정말 감옥의 창살을 연상시킬 정도로 투박합니다. 승객이 기사 폭행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은 구조입니다. 인터넷상에서 대충 조사한 바로는 공항버스 내리는 곳에서 내가 가는 호텔까지 약 15원 정도의 택시비가 나온다고 알고 있고 그렇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터기에 14원이 나왔습니다. 20원짜리 내고 거스름돈을 받으며 1원짜리를 팁 조로 줬는데 결코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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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전기사들이 눈이 안 좋다는 글을 어디서 보고, 또 어두운데서 좀 더 분명하게 식별시켜주기 위해 나는 이렇게 큼지막한 호텔 주소를 이미지화해서 기사들에게 보여줬습니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날 정확히 호텔 앞에서 내려 주면서 뭐라고 한참을 얘기하는데, 내가 분명 중국사람은 아니고 중국말도 못 한다는 걸 파악을 했음직한데 어쨌든 얘기를 길게 하는데, 나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는 말만 하고 택시에서 내렸고, 내리면서 고마워서 손을 흔들어줬습니다. 한참을 안 가고 서있는 게 내가 제대로 찾아가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고, 난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호텔은 작았고(하지만 객실은 엄청 많은 것 같았습니다), 늦은 아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호텔 카운터의 풍경은 나른했고, 듣던 것과는 달리 야진이라는 보증금도 요구하지 않았고, 나름 밝은 표정으로 약간의 영어도 섞어가며, 조금 뚱뚱해 보이기는 했지만 인상 좋은 심야 담당인듯한 호텔리어 아가씨가 체크인 수속을 편안하게 마쳐줍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중국인들의 사람을 응대하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좀 더 좋고 우호적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공항에서 버스 티켓을 살 때도 티켓 파는 아가씨가 상당히 친절했던 것 같았습니다(하지만 이런 첫인상에 대한 나의 호감은 다음날부터는 무참히 깨어집니다). 내일 아침 조식 티켓 한 장까지 구입하고서는 어떤 방일까 하는 기대를 안고 내 방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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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의 어느 골목길


생각보다 깨끗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진보다는 많이 못합니다. 인터넷에서 호텔을 예약하는 우리가 매번 알면서도 속는 거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4박에 10만 원 정도 치고는 괜찮아 보입니다. 이 호텔 이전에 내가 예약을 했다가 취소한 호텔은 4박에 24만 원 정도였습니다. 호텔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몇 개(입지, 청결도, 종업원들의 친절, 시설, 가격 등)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청결도를 가장 중시 여깁니다. 물론 고급 호텔이야 이 모든 기준들을 다 충족시키겠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여행해야 하는 배낭족들에겐 상대적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침대 시트를 점검해보고 좀 더 깨끗해 보이는 침대를 먼저 쓰기로 하고 짐을 정리합니다. 한국시간으로는 4시입니다. 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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