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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un 05. 2018

워마드와 21세기 테러리즘

현대사회의 '만들어진 테러리즘'

피부가 하얗지 않다고 해서 가해지는, 고국이 문명화된 선진국이 아니라고 해서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과 폭력을 방치한 채 21세기의 테러리즘을 막을 수 있을까?


21세기 테러리즘을 막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21세기 테러리스트는 조직된 특정 단체가 아니며, 그들은 백인우월주의나 선진국 중심주의, 자본주의 따위에 분노하지만 그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은 정작 그런 이데올로기와 아무런 관련 없는 일반 대중이다.


런 이유에서 워마드 현상이 작동하는 방식은 21세기 테러리즘이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실체가 불분명한 워마드라는 조직(워마드는 온라인 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어떤 사람이 워마드인가는 알 수 없다. 누군가 워마드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고 하면, 워마드적인 사람이 되는가?)은 분명히 여성혐오에 분노하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은 일반 대중이기 때문이다.


워마드 현상-워마드에서 이루어지는 장애인과 성소수자 혐오, 일반적인 남자 어린이 또는 안중근 의사 같은 남자 순국선열에게 이루어지는 혐오발언, 워마드 회원이 행했다는 홍대 누드몰카 사건 등- 흑인혐오를 기치로 한 KKK단(여성혐오, 민주화 혐오를 기치로 하는 일베는 KKK단에 비유할만 하다) 보다는, 대중에 만연한 '흑인' 차별과 폭력에 분노한 흑인들이 일반 백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과 더 닮았다. 이것을 '백인혐오'라고 불러야 할까? 백인들의 '흑인혐오'에 대한 분노라고 불러야 옳지 않을까? (미투운동이나 그 전에 있었던 미러링은 폭력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가해진 구체적인 폭력을 고발하는 행동이 어떻게 폭력인가? 구체적인 폭력을 고발하는 행위에 분노하는 사회가 오히려 폭력적이다.)


내가 워마드 현상을 굳이 21세기 테러리즘에 비유하는 이유는 21세기 테러리즘을 단순한 악행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테러리즘에 희생당한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21세기 테러리스트는 분명한 악이겠지만, 마찬가지로 테러리스트에게는 테러리스트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분명한 악으로 보였을 것이다.


국가가 21세기 테러리즘에서 대중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테러리스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뿐이다. 부당한 차별과 폭력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 것. 테러리즘이 발생하는 본질적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테러리즘을 억제하는 것.


21세기 테러리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대중을 모든 대중에게서 분리해야 하는데, 모든 대중을 개인으로 분열시켜서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가 테러할 지, 누구를 대상으로 테러할 지를 국가가 모르는 상태에서 국가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워마드 현상도 그러하다. 워마드에서 이루어지는 분노-누군가 '남성혐오'라고 이름붙인-를 조절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부터 조절해야 한다. 여성혐오가 존재하는 한 제 2, 제 3의 워마드는 얼마든지 다시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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