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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an 30. 2019

Eureka 비문학읽기14 "메시지가 미디어다"

메시지, 고장난 미디어를 지휘하다


뉴미디어 이용자 수가 올드미디어 이용자 수를 앞질렀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뉴미디어 시대엔 중개자가 없다. 바야흐로 메시지 민주화의 시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미디어가 아닌 메시지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리 권위 있는 미디어에 실린 정보라도 내용이 안 좋으면 도태된다. 반면 좋은 메시지는 미디어의 국경을 뛰어넘어 전파된다. 저자는 말한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메시지가 미디어다.”


Context 

배경읽기_ 미디어를 지휘하는 메시지

작품해설_ 메시지의 주인이 되자



올드미디어 시대는 한 마디로 미디어가 메시지를 독재하는 시대였다

< 배경읽기 >

미디어를 지휘하는 메시지


I can't see a thing in the video

(비디오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I can't hear a sound on the radio

(라디오에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

In stereo in the static age

(이 멈춰져 있는 시대의 스테레오에서는)

- Green day, ‘The Static Age’


권력을 가진 자가 신문, 잡지, 뉴스 등의 미디어를 쥐락펴락 하던 올드미디어 시대는 한 마디로 미디어가 메시지를 독재하는 시대였습니다. 위 노래의 가사는 스테레오의 주인이 권력 앞에 무릎 꿇은 현실을 풍자하고 있어요. 스테레오의 주인은 물론 대형 언론입니다. 대중은 스테레오에서 울려 퍼지는 큰 소리를 일방적으로 전달받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메시지는 자취를 감추고 라디오에선 잡음만 울려 퍼지며 화면에선 쓸모없는 광고만이 빛을 발하죠. 무엇보다 공정해야할 언론이 자본이나 권력에게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가 생겨난 뉴미디어 시대 이전은 계속 메시지 독재의 시대나 다름없었으니 오히려 지극히 최근의 이야기죠.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등장했습니다. 텔레비전과 종이신문을 이용한 뉴스 시청 비율이 큰 폭으로 낮아지고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이용한 뉴스 시청 비율이 그만큼 높아졌어요. 특히 사람들이 디지털 뉴스를 이용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한 기기로 스마트폰이 뽑히며 PC 이용률을 앞질렀다는 사실은 스마트폰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합니다. 카카오톡과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가 대중화될수록 신문과 라디오, 뉴스 같은 올드미디어의 위상은 점점 낮아집니다. 그래서 저자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와 메시지의 주종관계가 뒤바뀌었다고 주장해요. 이제 메시지가 미디어를 지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스테레오의 주인이 권력에게서 시민으로 뒤바뀌었다고 주장합니다. 강력한 메시지 한방으로 누구나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주장하는 거죠.

스마트폰 시대에는 메시지가 미디어다!”



뉴미디어 시대, 메시지의 주인이 되자!

< 작품해설 > 

메시지의 주인이 되자!


#1 미디어가 메시지다?

올드미디어 시대의 청중은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대안이 없었으니까. 마셜 매클루언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고자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남겼고 그 문장은 미디어가 단지 메시지의 전달방식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믿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미디어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인식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KBS>와 <JTBC>는 세월호 참사라는 똑같은 사건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루면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청중들에게 완전히 다른 영향을 미쳤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중 어떤 신문을 보느냐, <일간베스트>와 <오늘의 유머> 중 어떤 온라인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한 관점이 극명하게 달라진다. 같은 사안을 조명하는 방식이 미디어에 따라 다르고, 우리의 인식체계는 그에 따라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매클루언에 따르면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한계인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 미디어라는 것. 바퀴를 통해 발과 다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리모컨을 통해 손의 한계를 극복하고 라디오를 통해 귀의 한계를 극복하며 전자기기를 통해 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기술들은 미디어로 볼 수 있고, 기술의 발전은 곧 미디어 혁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미디어는 인간의 시‧공간적 인식의 한계를 확대시키고 사람들은 새로운 미디어에 맞춰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재편한다.

이와 같이 미디어는 단순한 메시지 전달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메시지적 기능을 수행한다. 만약 자본이나 권력이 미디어를 좌지우지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좌지우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디어는 우리에게 암묵적으로 전달되는 거대한 메시지기 때문이다.


#2 스마트폰의 등장과 미디어의 몰락     

사람들은 뉴미디어를 통해 말 그대로 모든 순간, 모든 일상을 보도한다. 이용자 개개인이 앞장서 취재거리를 찾아내고 공유하는 것. 기존 미디어는 이런 흐름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이제 사람들은 기성 미디어가 미처 취재하지 못한 현장까지도 빛의 속도로 공유하고 소통한다. 취재와 보도 사이의 여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권력이 스테레오를 장악할 시간적 여유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취재와 보도 사이에 언론의 조작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대중을 호도하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또한 이제 대중은 더 이상 미디어가 퍼다 나르는 정보들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언론이 허위 정보를 퍼뜨린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때 옛날이라면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또 다른 언론을 찾아가야 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진실을 눈치 챈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소셜 미디어에 게시할 수 있으니까. 스마트폰을 가진 개인이라면 누구나 ‘1인 미디어’가 되어 대형 언론에 버금가는 위력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단신으로 중소 언론에 버금가는 미디어 파워를 지닌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언론은 대중의 눈치를 훨씬 많이 볼 수밖에 없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3 메시지란 무엇인가?

메시지란 무엇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 저자의 말을 읽어보자.

“우리는 눈을 뜨면 수백만 개의 소음을 마주한다. 마치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것과 같다. (…) 이 책은 99%의 소음을 뚫고 도달하는 1%의 신호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 그 1%의 신호를 메시지라고 부르기로 한다. (…) 메시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만드는 어떤 언어다. 말이거나 글이거나 영상이거나 사진이다. 혹은 그 사람의 표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영감이나 가치를 뒤흔들 어떤 것이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에 너무나 많은 정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쩌면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조차 지금엔 구시대적이다. 홍수로 이루어진 바다에서 자라난 Z세대(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란 세대)에게 홍수쯤이야 장마철의 안개비나 같을 테니. 저자는 그 모두가 메시지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온라인을 가득 메운 소음의 먼지를 뚫고 빛을 발하는 1%의 신호가 곧 메시지라는 것이다.   

  

#4 우리의 삶이 메시지고, 메시지가 미디어다.     

오늘날 메시지의 힘은 미디어를 압도한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기존 미디어의 역할이 축소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소문의 확장 속도는 제로를 향해 수렴되고 소문의 확산 범위는 무한대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므로 특종은 등장과 동시에 더 이상 특종이 아니게 된다. (…) 네이버 창에 뜬 뉴스 리스트 가운데 관심 있는 것을 클릭해 들어가서 내용을 확인할 때 사람들은 미디어 브랜드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어서 메신저(메시지 전달자)로서 개인의 역할이 커질 거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메시지는 메신저(메시지 전달자)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 메시지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것이라면 그 진실한 경험과 보편적 가치가 만나야 영향력을 갖는다. (…) 지금은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시대이고, 누구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대이다. 미디어나 반응 자체는 이미 주어가 아니다. 메신저의 삶이 가치 있고, 그것이 메시지로 만들어진다면 그 자체로 강력한 미디어가 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들의 메시지는 곧 미디어가 된다. (…) 나의 정의는 단순하다. 스마트폰 시대에 메시지가 주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메시지가 미디어다.”

수많은 메시지 전달자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하나의 메시지를 소리치기 시작한 순간, 그 메시지는 곧 미디어가 되었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메시지라는 꼬리 하나가 미디어라는 몸통을 뒤흔들 힘을 가진다.     


#5 304명의 미디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 윤민석,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에 관해 수많은 방송사와 신문사가 왜곡 보도를 쏟아냈다. 이에 질세라 유족들과 시위대는 위와 같은 아름다운 가사와 춤 그리고 “진실을 인양하라!”와 같은 거센 구호로 맞섰다.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프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다행히 진실은 조금씩 인양되고 있다. 전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료, 국가정보기관, 언론사 등이 힘을 합쳐 진실을 숨기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들의 숱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만큼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을까?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후쿠시마 지진 피해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는 사람들이 지진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에 주목하길 바랐을 것이다. 우리도 세월호 참사를 ‘304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 대신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304번 일어난 것’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책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모두 적힌 페이스북 글을 통째로 실은 뒤 이렇게 썼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개인의 생명이 갖는 우주적 존엄에 관한 각성을 안겨주었다. 하나하나 희생자 이름을 적는 것은 하나하나 자신의 미디어를 가질 수 있는 시대에 가장 강력한 헌사다. 나의 이야기가 곧 우주의 이야기라는 자각, 우리는 지금 그 자각의 문 앞에 당도해 있는지도 모른다.

희생자의 이름 하나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1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거대 언론사의 영향력만큼이나 강력해진 시대의 도래는 이와 같은 개개인의 ‘우주적 존엄’을 우리에게 증명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힌 빛은 개개인의 진실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304인의 희생은 곧 304개 우주의 소멸이나 다름없었다. 304개의 이야기가 일시에 사라지면서 이 세상에 일으킨 균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된 희생자의 문자메시지 내용이나 마지막 영상통화의 내용, 남겨진 희생자의 방과 물건들, 이미 사라진 그들에게 전달된 우편들.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낳고 그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아우성이 되어 우리 사회를 진실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기득권 언론도 이처럼 거대한 아우성을 모두 틀어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 아우성에 정면으로 맞섰다가는 기득권 언론도 무사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젠 메시지가 미디어를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가 강력한 미디어 권력을 장악한다 한들,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라는 하나의 사건은 조작하고 은폐할 수 있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나는 304명의 희생자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숨길 수는 없었듯이 말이다.     


#6 메시지의 주인이 되자!     

이 책의 마지막 장의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한 사회에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많아져야 한다.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의 이야기가 많아져야 하고,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의 이야기가 많아져야 하며,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애인의 이야기가 많아져야 한다.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과 공적 가치가 만나는 지점에서 강력해지며 그 자체로 미디어가 된다.

많은 이야기가 강력하게 연대하면 플랫폼이 되고 시민단체가 되며 그들이 권력을 지향할 때 새로운 정당이 된다. (…)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강력한 기득권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강력한 메시지를 가진 더 많은 개인들의 연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세상은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리 강한 기득권의 장벽도 스마트폰의 전염성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해시태그(hash tag), 주인 없는 미디어.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정보들은 여기저기 흩뿌려진다. 해시태그는 이를 주제별로 한 데 모아두는 역할을 한다. 뉴욕시립대학 언론학과 교수 제프 자비스는 “해시태그는 주인도 계급도 없고 신념이나 규율도 없다. 이것은 누군가가 좌절, 불평, 요구, 소원 등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빈 공간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해시태그는 사람들의 연대와 행동을 촉진시킨다. 트위터가 짧은 연설문이라면 해시태그는 슬로건과 같다. 해시태그는 소셜 미디어 시대가 낳은 강력한 메시지이며 나아가 기존의 미디어 울타리를 뛰어넘는 또 하나의 (주인 없는)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다음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유행했던 해시태그들이다.
‘좋은 메시지를 만들기 위한 9가지 원칙’

1. 메시지는 진실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2. 메시지는 구체적인 것을 포함해야 한다.
3. 메시지는 유권자에게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4. 메시지는 명확하며 가슴을 움직여야 한다.
5. 메시지는 대조를 이루어야 한다.
6. 메시지는 짧아야 한다.
7. 메시지는 반복되어야 한다.
8. 메시지는 행동과 연결되어야 한다.
9. 메시지는 겨냥되어야 한다.

글_ 이준기 유레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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