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wHereUs Apr 09. 2022

메시지 vs 톤앤매너 <월든>

일단은 완독,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싶다.

<월든> 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알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신기한 건, 존재를 알게 되자 소로의 삶과 사상에 대한 얘기를 하는 책이 많았다. <월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캐릭터가 되어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궁금증이 생겼다.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마음으로 사두었다. 그런데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앞쪽을 넘겨보다가 포기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얼마 전 국문 번역본을 산책길이나 정원일, 설거지를 하는 시간동안 오디오북으로 들어보기로 했다. 14시간이 조금 넘는, 대장정이었다.


한줄평: 소로에게 마음챙김을 권하고 싶다.

Non-judgemental mind  주는 자유로움이 얼마나 큰데. 듣는 내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극찬한 , 호수 광경 묘사는 감명받을 포인트가 어디인지 찾다가 포기했다.


피그미족, 마오리족 언급하며 본인이 알고, 배운 것이 전부인양 타인의 문화적 취향을 평가하려는 것도, 자신의 오두막 살이가 모든 사람이 지향해야  삶의 자세인양, 혼자 깨달은 사람인양 구는 태도정말 별로였다. 이런 생각에 입각해 토착민들의 삶의 형식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미국 교육사조들이 떠올랐고, 지방을 살리겠다며 여기저기 난잡하게 지어놓은 흉물스러운 개발 계획의 산물들 역시 떠올랐다.


어떤면에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온 조던과 겹쳐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우생학적 사고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배운 자로서 너희의 안타까운 삶을 구원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랄까?


베이커 농장의 아일랜드 이민자나 캐나다 목수와의 만남을 그린 부분에서는 이런 비뚤어진 엘리트의식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화가 날 뻔 했다. 요즘 이런 글을 썼다면 고소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에서 예찬하는 가치들, 소박한 삶, 직접 노동해서 일구는 먹을 거리, 채식, 자연 보호, 등등의 방법이 얼마나 가치로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읽으면서 내가 마치 지구를 망치기 위해, 허울뿐인 돈과 집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먹고 쌓아두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같아서 읽는/듣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통속적인 가쉽거리는 읽을 필요가 없고 고전만이 가치있는 텍스트라는 주장에도 동의할  없다. 글자를 읽고 쓰는 것과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의 차이점과  중요성을 피력한  좋은데, 나라면 소로에게 내가  글을 보여줄  없을  같다. 생각이 틀려먹었다고, 교육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혼자 생각하는 걸로 모자라  다른 글을 싸질러 나의 무지함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과, 그 사상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책의 여러 부분에 나타난 자기모순, 몇몇 지적 포인트에 대한 과도한 합리화도 눈쌀이 찌푸려졌다. 에어팟을 귀에 끼고 설거지를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반박할 거리를 찾느라 짜증이 올라오는 느낌을 여러번 느끼기도 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재단당하는 타인의 입장을 간과하고 나의 '뇌피셜' 판단 결과를 굳이 당사자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내게  긍정적 영향을 꼽아보자면,

The way of conveying message is important as the content.


사람의 자기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어조/논조는 내가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표현방법이다. 자기보호본능은 때때로 심한 공격성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많은 경우 갈등의 씨앗, 혐오의 비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나의 바운더리 밖으로 밀어내 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고전에 기대는 시간>에 <월든>이 언급된 부분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월든> 대한 관점에서 몇발자국 움직일  있는지,  있는 자리를 바꾸면 달리 보이는  을지가 궁금하다.


번역 퀄리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번역 과정을 거쳤기에 이해를 가로막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원문의 문장이 주는 다른 매력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놓치고 있는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까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 진짜 사랑이 그래서 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