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가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바라기 Apr 06. 2021

부부에서 부모로

아이를 기르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결혼한 지 5년 차. 우리 부부는 지금 막 신생아 딱지를 뗀 아이를 기르고 있다.


뚜렷한 소신이나 어떤 가치관이 명확해 '아이를 낳을 거다' vs '낳지 않을 거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확신이 있게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둘 중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전자에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막연히 궁금했다. 우리를 닮은 아이는 어떨지. 10년 연애와 4년의 결혼 생활을 함께한 우리의 합작품(?)이 어떨지 궁금했다. 우리 부부는 '더 늦어지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계획하고 임신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부부에서 부모라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진입했다.




어느새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 사회에서 말하는 '어른'이 되어있지만 나는 아직도 신랑을 보면 어렸을 때의 모습이 선하다. 재수생이었던, 대학생이었던,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풋풋한 철부지의 그를 기억한다. 그도 그 시절들의 나를 기억할 것이다. 나이 때에 맞게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 둘 다 겉은 어른이지만 아직 안은 아이 같은 철부지들이라는 것을. 이런 철부지들이 지금 고군분투하며 갓난아이를 기르고 있다.

그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무언가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어떤 건지 잘 감을 잡지 못한다. 막연하게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야 하나. '뭐 얼마나 힘들겠어?'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다가 직접 경험해본 뒤, 항상 '어?! 이거 생각보다 많이 힘든데?' 하며 고개를 내두른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책임과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몰랐던 것이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와 무게를.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이전까지 지내왔던 나와 완전히 다른 내가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선, 세상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로 이동한다.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 채워지던 시간들이 거의 없어진다. 내 시간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아이의 먹놀잠(먹기, 놀기, 잠자기)에 의해 내 스케줄이 정해진다.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온전히 아이에게 메여있기에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양만큼의 일을 할 수 없다. 모닝 루틴도, 독서도, 유튜브 기획 및 편집 등 기존의 내가 해오던 것들을 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식사도, 샤워도 심지어 화장실도 마음 편히 못 간다. 새벽에도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여러 번 깨야해서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생활의 중심도 우리 '부부'에서 '아이'로 이동한다. 이전에는 너무 귀찮아 그렇게 하기 싫어했던 설거지를 밥 먹자마자 하게 되었다. 설거지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여서 설거지를 깔아 놓으면 집안일이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젖병도 닦아야 하고 열탕 소독도 해야 하고 가제 손수건도 빨아야 하고 또 개서 정리하는 등 아이를 위한 루틴이 하루에도 몇 사이클이나 돌아야 한다. 저녁 먹고 소파나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거나 주말에 늦잠 자고 일어나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던 불과 몇 달 전의 그 시간들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이렇듯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제껏 살아온 삶의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건 거의 지각변동의 수준이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많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 모든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며칠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나는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아무것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몇 달 전의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를 채우던 그 시간들과 일상들이 그리웠다. (물론, 그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그렇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울적한 마음이 문득 올라왔다. 약간의 적응기를 거친 지금의 내 마음은 좀 덤덤하다. 이제 부모가 되는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이렇게 천천히 자유로웠던 이전의 나와 조금씩 작별하고 있다.


아이는 그냥 크지 않는다. 누군가의 사랑과 희생을 먹고 자란다. 내가 그냥 크지 않고 우리 엄마, 아빠의 젊음과 희생을 먹고 자랐듯 우리 아이도 우리 부부의 희생과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4시간 중 24시간 근무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