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이발소엔 꼭 '모범업소' 간판이 있었다. 별모양의 표식에 명조체로 '모범업소'라고 쓴 나무간판을 단 곳이 많았다. 어릴 땐 그게 무슨 뜻인지, 많은 상점들 중 왜 꼭 이발소만 유독 '모범적'이라고 강조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점점 모범업소 간판은 사라졌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런 간판에, 왜 그런지 이유에 관심이 없었다. 이제는 왜 굳이 이발소들이 자기는 모범적이라고 주장하는지 배경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 뿐이었다. 딱히 써먹을 데 없는 정보는 쉬이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실로 몇십년 만에 맞딱뜨리니 그렇게 반갑고 정겨울 수 없었다. '모범업소' 간판을 유지하는 오래되고 오래된 이발소를 다시 뒤돌아볼 만큼 인상깊었다. 이야...아직도 서울 시내에 이런 간판이 남아있네.
만약 조선시대에 만든 간판이라면 학자들이 몰려와 보물이라며 모셔갔겠지만, 그보다 최근인 100년 이내에 만들어진 최근 물건들은 쉽게 버리고 폐기한다. 귀중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귀하다. 70,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만들어진 것들은 요즘 찾아봐도 보기 어렵다. '모범업소' 간판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난장판이 되어가는 집안을 보면, 나 역시 근래 것들을 버리지 못해 안달난 '여느 한국사람'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를 기억할 만한 것들은 고이 싸서 높은 곳, 깊은 곳에 숨기다시피 모셔놓고선 최근에 아이가 그려놓은, 만들어놓은- 나로서는 어떻게 다 간수하거나 전시할 수 없는-조형물들은 보기좋은 곳에 두다 쌓이고 쌓이면 어느날 한꺼번에 휘몰아 폐기처분한다. 그러고선 조금은 말끔해진 거실을 보며 '그래,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네' 싶다. 뭐 하나 묵은 걸 처리하고 나면 그렇게 속이 시원하다. 한평 또는 반평 정도 넓어진 공간에서 축구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해방감을 느낀다. 말끔해진 거실을 보면서, 우리 집은 원래가 이런 집이었다는 묘한 착각도 따라온다. '우리집은 어질러진 게 비정상'이라는 착각에서 나의 오만함, 자만심을 확인한다.
깨끗하고 넓은, 아주 정돈된 공간에 전망까지 좋은 곳에 사는 위정자들은 도심의 '모범업소' 간판을 단 옛 것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싶다. 얼른 밀어버리고 저길 재개발해야 할텐데. 저거저거 다 쓸어버려야 서울 조경이 깨끗해질텐데. 하지만 내가 버린 아이의 종이접기엔 그 시간, 아이의 감정이 녹아있듯 옛날부터 있어왔던 골목, 공간, 간판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걸 그대로 모두 살려둘 순 없을 거다. 어쨋든 도시는 계속해서 옛 것을 치우고 새 것을 지어내며 개발되고 변해왔으니까. 우리가 아무리 '유럽은 옛날 건물을 잘 살려 문화재같은 도시를 만들었는데, 왜 우린 그러지 못하냐'고 푸념하지만, 에어컨과 엘리베이터 없이 불편을 감수하며 옛 건물 그대로 생활하는 데 만족하는 유럽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모두 깨끗하고, 편리하고, 에어컨과 엘리베이터가 당연히 설치된 새 아파트에서 살길 바란다. 그런 욕망을 버리지도 않으면서, 옛날 건물들 그대로 보존해주세요! 하는 건, 보지도 않으면서 시청률이 낮은 공익프로그램을 폐지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시청자와 같은 태도다.
내가 지켜주지 못할 옛날 건물들, 옛 간판, 보는 것 만으로 옛 향수가 기억나는 아이템들, 내가 어쩌지 못하니 오늘도 그저 사진을 찍고 마음껏 눈에 담아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