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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Apr 19. 2024

[책] 미리 배우지 않아도 좋아요

Miseducation Preschoolers at Risk

데이빗 엘킨드 지음, 이지연 옮김/ 미지북스


전국 각지에서 2,3개월 된 아기들까지 체육 수업에 등록한다. 짐보리나 플레이오라마, 엑서사이즈 플러스, 그레이트 셰이프스 같은 아동 전용 스포츠센터들이 성업 중이다. 부모들은 이들 프로그램이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는다. '수지 프루든의 유아용 운동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른 시기의 운동은 흉근을 부드럽게 당겨서 가슴을 확장시켜주고 폐가 호흡할 있는 공간을 훨씬 넓혀준다. 혈액순환이 증가하여 많은 산소를 뇌로 공급하며 근력이 개선된다.- 위 설명이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아는 그저 바닥을 기거나 물건에 손을 뻗거나 침대를 짚고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위에 설명한 운동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중략)

'일주일 만에 아기에게 수영 가르치기'의 저자 다누타 릴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일같이 어린아이가 자기 집 뒷마당에 있는 풀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린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려온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비극과 고통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있는 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아이가 어떤 물에서도 목숨을 건질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과정이다. … 4개월밖에 안 된 아기에게도 풀장에 빠진 후 숨을 참았다가 수면까지 올라오도록 가르칠 수 있으며 등을 뒤집어서 편안하게 호흡하면서 … 무한정 … 필요하다면 누군가 도와줄 때까지 몇 시간이라도 … 떠 있도록 가르칠 수 있다.


개인 풀장이 많은 지역이라면 이런 식의 호소가 어느 정도 일리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스턴(뒷마당에 풀장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에 사는 9개월 된 아기 엄마의 경우라면 사정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많은 친구들이 아기를 수영 수업에 보내고 있고, 이 엄마에게도 빨리 보내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이 아기 엄마는 위에 언급한 몇 가지 위험 때문에 그런 충고를 따르지 않았는데, 흥분한 친구는 이렇게 따졌다고 한다. "네 아이가 물에 빠져 죽기를 바라는 거야?" 이 발언이 정말로 경악스러운 이유는 부모의 책임이 아이로 하여금 절대로 물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게 아니라 영아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인 양 생각한다는 점이다. 대체 어떻게 물에 빠져 죽지 않는 게 아이의 책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그럴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책임 있는 성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자극이 부족한 저소득층 아동을 위해 도입된 유능한 아이 이미지는 이제 중산층 아동의 과잉 자극에 대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게 왜 잘못된 교육인지는 이렇게 비유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키와 몸무게가 정상치에 미달하는 영양실조 상태의 아이들이 있다고 치자. 이 아이들에게 영양가 많고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한다면 아이들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될 것이다. 즉 키와 몸무게가 상당히 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영양 상태가 훌륭한 아이들이라면? 지금도 건강한 아이들에게 현재 먹고 있는 것에 더해 영양가 많고 균형 잡힌 식단을 추가로 제공한다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것이다.

나는 유아기가 이후의 지적 능력이나 학업 성적에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유능한 아이 이미지가 유아에게 무엇이 건강한 교육인지에 관해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자와 부모들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 밖에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현실과 자녀에게는 유아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말이지 이 두 가지는 완전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린데 밖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면, 혹은 그러고 싶다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과 자녀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유아들은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으며 오히려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이 점을 받아들인다면 아이들의 IQ를 높여주겠다거나 일찍 시작해서 공부를 잘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등의 거짓 약속으로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의 필요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제공하도록 독려하는 데 총력을 쏟을 수 있을 것이다.

유아기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유아기에 아이들은 일상 세계에 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운다. 또한 앞으로 평생 유지될 자신과 타인 그리고 배움에 대한 태도를 습득한다. 그러나 유아기는 정식 공부를 가르치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 ‘유아기 능력’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낸 여러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이유를 마음 한 켠에 담아둔 채 유아기를 바라본다면 이런 진실이 제대로 보일 리 없다. 진실을 보러면 유아기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아이의 질문에 답할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점은 어휘와 구문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어린아이의 언어 능력은 아이가 알고 있는 개념의 수준보다 훨씬 앞선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유아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많이 아는 것처럼 말한다. 그 때문에 그 부모나 조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를 천재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질문이 매우 성숙하고 수준 높게 들리는 까닭에 우리는 아이의 이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추상적인 답변들을 내놓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알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다섯 살배기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내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진짜 정체가 뭐예요?” 나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충격이 살짝 가시고 나자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이 연령대 아이들의 정신 수준을 잘못 판단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약간의 죄책감도 들었다. 나는 표면상 연구를 핑계로 그곳에 있었지만 실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내 정체가 탄로난거지?’ 이번에도 심리학자로서 받았던 훈련(‘어려운 질문에는 항상 질문으로 답하라’)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이야? 내 ‘진짜 정체’라니?” 아이는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응, 어젯밤에 ‘슈퍼맨’을 봤는데요, 슈퍼맨의 진짜 정체는 클라크 켄트예요.”

아이의 질문은 다른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들이 유치원 나이대였던 어느 날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해는 왜 빛나요?” 순간 나는 열과 빛의 관계에 관한 과학적 설명을 늘어놓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피아제가 이 시기의 아동에 관해 말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유아들은 사물의 원리보다는 ‘목적’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려고 그러지. 그리고 풀이랑 꽃들이 자라게 해주려고.” 이런 대답도 틀린 답은 아니며 오히려 아이가 정말로 묻고 있는 것에 대한 답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접근법을 ‘응석받이’로 치부하며, 아이가 이해를 못할지라도 과학적인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최소한 아이가 옳은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서, 끙끙대며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나중에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이다. 이런 부모들은 과학적으로 정확한 대답이 아이의 지능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키워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거야말로 내가 말하는 잘못된 교육이라고 답하고 싶다.




유아의 놀이가 갖는 기능을 오해하는 바람에 종종 잘못된 교육이 나타나기도 한다. 놀이가 아이릐 '일'로 간주된다면 놀이는 수업 계획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상점 놀이를 하는 아이는 물건에 가격표를 붙이고 판매액을 합산해보라는 요구를 받을 지도 모른다. 또한 놀이가 아이의 창의적 충동의 표현이라고 간주된다면 아이는 자신이 그린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혹은 하늘과 풀을 좀 더 전통적인 색으로 칠하라는 요구를 받을 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아이의 놀이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면 자신감은 촉진되지 않는다. 정반대로 무력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중략)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가 놀이로 만든 작품들은 아이의 자신감을 보호하고, 방어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보아야 하며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에 관한 한 우리는 ‘좋은 말을 못하겠거든 입을 다물어라’라는 격언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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