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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Feb 13. 2024

우리는 착한 걸까, 어리숙한 걸까.(上)

여기는 경기전. 전동성당 끄트머리가 곁들여진 하늘이 예뻤다.

명절이었다. 명절이 지나갔다. 연휴 전날 연차까지 해서 총 5일을 쉬었지만, 야심차게 계획한 전주여행 때문에 감기에 걸리고 기력이 쇠해 쉰 것 같지도 않다. 몸이 아픈 것보다는, 내가 연휴동안 겪은 일을 통해 '내가 멍청한 건지, 착한 건지' 구분할 수 없는 갈등에 마음이 더 힘들었다. 아. 이래서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개인적인 일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 동의와 조언을 구하는구나. 나도 그런 심정이 되어서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자 그 많은 게시판 사연들 뒤에, 글쓴이는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고민하고, 갈등했을까-비로소 그 등나무같이 얽힌 감정들이 보인다.


시댁은 전북의 어느 작은 마을이고, 남편의 친척들은 전주에 산다. 남편과 같이 자란 친척동생이 전주에 사는데, 딸이 많고 화목해 항상 '애기랑 같이 놀러오라'고 권했으나 한번 제대로 갈 기회가 없었다. 남편에게도 귀한 친척이지만, 우리 아이에게도 양가 다 통털어 유일한 '6촌 형제들'이기에, 난 이번 명절에 연차를 내 하루 일찍 전주를 들러 남편 친척들을 만나고 시댁에 들러 추석을 쇠고 오자 계획했다.


그리고서는 '우리집에서 주무시라'는 남편 친척동생의 권유를 사양하고 전주에 한옥펜션을 잡았다. 아이에게 한옥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족 외의 손님이-아무리 친척이라 해도- 오면 청소에 끼니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듯 해 아직 친하다 할 수 없는 동서에게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왜 돈들여 방을 잡냐는 타박을 이기고 13만원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방을 예약했다. 사진으로는 고즈넉하고 마당도 있고, 무엇보다 조식이 포함된 조건이 맘에 들었다. 결혼 후 처음 가는 전주여행에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이 때까진 우리 모두 좋다고 뛰어다녔지. 삐걱삐걱 소리나는 마룻바닥마저 운치있었다.

전주에 도착하니 아무리 온화한 날씨라 해도 겨울인지라 바람이 쌀쌀했다. 5시간 넘게 걸려 겨우 도착해 펜션을 보니 참. 좋았다. 객실 중에 우리만 예약을 해 다른 방들이 다 비어있어 '한옥은 방음에 취약하다'는 리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젊은 여사장님은 인상도 좋고, 친절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며 "바닥에 불 넣었으니 곧 뜨거워질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린 따뜻해질 방을 기대하며 전주 시내 구경에 나섰다. 경기전도 가고 친척동생네를 만나 갈빗집에서 맛있게 고기도 먹고. 아이가 친척 또래들을 만나 신나게 노는 게 보기 좋았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한 건 밤 10시.


방바닥이 뜨거웠는데도 이상하게 방 공기는 찼다. 벽이 차갑고 우풍이 심해 그렇구나, 하며 얼른 씻고 이불에 들어갔다. 그런데 딱 2인용 요와 이불이 두 사람이 같이 덮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아이 이불은 낮잠이불을 따로 싸온터라 추가금액 2만5천원을 내야 하는 이불추가를 하지 않았었다. 아이는 낮잠이불에 재우고 우리는 뜨거운 방바닥에 그냥 누워 한 사람은 요를, 한 사람은 아이와 함께 이불을 덮었다. 등이 몹시 배겼지만 오랜만에 뜨거운 방바닥에 눕는 것도 (그때까진) 좋았다. 그리고 불을 끄니 사위가 깜깜 분간이 되지 않았다.


"따따따따ㅏ따ㄸ따따ㅏ따따따따따가까따까따ㅏㄲ"

불을 끈지 10분이 지났을까- 쇠를 가는 듯한 모터소리가 심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방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는 얇은 창호지를 타고 그대로 들렸다. 멈추겠지? 하며 기다렸지만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계속되는 소리에 나는 사장님에게 문자를 넣었다. 확인하지 않기에 전화까지 했다. 그러자 답장이 왔다. 확인해보겠습니다.


피곤에 절어 막 자려던 아이가 "엄마 무서워"하며 품에 파고들고, 이렇게는 도저히 못자겠다 싶어 기다리니, 창호지 바른 창문 바로 앞에 보일러실인듯? 사장님이 보일러실 문을 열고 들어와 살피는 기척이 들었다. 두어번을 그러면서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쇠를 가는듯한 보일러 모터소리에 미칠 지경이었다. 좀 있다 도착한 문자 한 통 "보일러가 과부화돼서 그런가봐요. 온도를 낮춰놨으니 기다려주세요." 그러고선 좀 있다 다행히 소리는 멈추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신속하게 잠이들었다. 그러나, 곧 또 깼다.


"따따따따ㅏ따ㄸ따따ㅏ따따따따따가까따까따ㅏㄲㅏ따ㄸ따따ㅏ따따따따따가까따까따ㅏㄲ"


뭐야, 또.


시계를 보니 3시 25분. 소리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고 바닥은 냉골이었다. 감기에 걸린 남편은 추위에 몸을 잔뜩 움추리고 있었고 나도 몸에 냉기가 들 것 같이 추웠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보일러는 30분 간격으로 10분 간 소리를 내다 20분간 멈췄다. 보일러가 돌면 바닥이 조금씩 따뜻해졌지만, 소리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소리가 멈추면 살 것 같다 했지만 바닥이 빠르게 식어갔다. 아....나 뭐 잘못했나. 고문 당하는건가. 이 밤이 악몽 같았다. 저 미친 보일러 소리가 잠시 멈춘 동안 빨리 잠들어야 이 밤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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