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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Jan 30. 2024

온라인쇼핑 '덕분에'

골목이 살아있는 동네의 저녁 신호등. 해가 많이 길어졌다.

냉동식품 잘 안먹는 우리집 냉동실이 가득 찼고, 찬장에는 똑같은 시리얼이 3봉지나 있으며

휴지 등 위생용품, 샴푸, 바디워시, 칫솔, 치약 모두 5~6개 이상 쟁여져있다. 당장 필요한 건 하나 뿐이지만 꼭 2~3개를 한번에 사게 된다. 온라인에서 주문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으로 주로 물건을 사는 나의 소비패턴, 배송비를 아끼려는 나의 얄팍한 절약정신, 그리고 같은 물건을 3~4개씩 묶어파는 온라인상점의 상술 때문이다. 우리집이 이렿게 물건 천지가 된 건, 다 인터넷쇼핑 때문이다.


온라인쇼핑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다고 한다.(솔직히 나도 그 당시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새로운 쇼핑 패턴을 비웃을 정도로 쇼핑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누가 물건도 받기 전에 돈을 내냐는 이유에서였다. 결제했는데, 물건을 안 보내면 어쩌냐. 세상에 사기꾼이 얼마나 많은데 누가 온라인 같은 데서 물건을 사느냐며 말이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은 급속도로 일반화됐고, 이제는 오프라인마켓이 온라인마켓에 눌리는 시대가 됐다. 무릇, 돈을 벌려는 사람은 많고 그 중엔 똑똑한 사람이 제법 많은 법이다.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갖가지 장치를 채택해 사람들이 '맘놓고' 클릭 한번으로 돈을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발걸음하지 않아도 되는 손쉬운 쇼핑으로 나는 한 봉지만 사도 될 시리얼을 세 봉지씩 사게 됐고, 그다지 필요한 줄 몰랐던 스팀 청소기를 주문해 바다 건너온 청소기로 바닥을 닦으며 산다. 이게 다 온라인쇼핑 때문이다.


결국,

냉장고는 점점 더 커지고, 한 번에 (싸게) 사서 주변에 나누거나 염가로 판매하는 당근마켓이 성행하고 있으며, 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스박스와 택배상자가 쌓여 분리수거품 나르기 바쁘다. 이제 39개월인 아이는 택배가 오면 들여다가 신나게 뜯어본다. 택배는 설렘이자, 기쁨이라는 진리를 너무 어린 나이에 일찍 알아버렸다. 이게 다 이 쇼핑에 중독된 애미탓이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중구에 있는데, 이곳은

골목이 살아있고, 골목 안에는 (개인)빵집, 세탁소, 정육점, 작은 슈퍼마켓 같은 소매점이 '아직' 살아있다. 작은 인쇄소가 주를 이루는 골목인데, 인쇄소와 인쇄소 사이를 상점들에서 장을 볼 수 있다. 클릭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집어 계산을 하는. 진짜 '장보기'가 살아있는 동네다.


나는 퇴근길에 정육점에 들러 '오늘 저녁에 먹을 목살 한 근', '이번 주말에 카레 만들 등심 반 근', '소고기뭇국 끓일 사태 반 근'을 자주 산다. 오늘 먹을 걸 오늘 사고, 내일 먹을 건 내일 산다. 냉장고에 고기를 쟁여두지 않아도 되고, 미리 사서 냉동실에 넣느라 고기 맛이 변하지 않는다. 자가용으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급한 건 편의점에서 때우는 우리 동네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쇼핑의 사치다. 살고 있는 동네는 적당한 '마트'에 가려면 걸어서 15분 이상, 차를 타고 5분을 가야 한다. 원래 동네마트가 여럿 있었는데, 차로 15분 거리에 이마트가 생기더니 하나둘 문을 닫고 이제 우리집 근방 1km  안엔 콩나물 하나 살 곳이 없다. 살아남은 건 편의점 뿐. 다들 차타고 이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장을 봐오니, 이 상권에서 마트가 살아남기 힘든가보다. 


그래서 마트에 매일 가기 힘드니 나는 회사 퇴근 후 이 동네에서 장을 봐 지하철을 탄다. 내 가방 안에는 항상 장바구니가 여분으로 들어있고, 퇴근길 만원지하철에 몸을 욱여 넣을 때면 불룩한 내 가방에서는 비닐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아침마다 먹을 식빵이라도 사는 날엔 더더더 뚱뚱해진 가방을 어쩌지 못해 난감해진다. 승객에게 눌려 찌그러진 식빵을 들고가는 날도 있지만, 하나를 사서 그 하나를 다 먹고. 새로 하나를 사는- 아주 당연한데 우리 동네에선 불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해졌다. 골목이 살아있는 곳으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어렸을 때.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필요한 것-특히 먹을 건 모두 동네에서 사다먹었다. 문방구?는 다이소의 등장과 초등학교 준비물 생략으로 없어진지 한참 됐지만. 과일가게가 있고 채소가게도 있었고, 슈파마켓에서 두부를 3개가 아니라 한 개만 살 수 있었다.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 모, 애호박 하나- 이렇게 살 수 있었다. 배송료가 따로 붙는 - 그래서 3만원 혹은 4만원 이상 장바구니를 채워야 하는 지금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다.


그래서 나중에 이사를 가면 골목이 살아있는 동네에 살고 싶다. 정육점이 있고 동네마트가 있는 곳. 내가 먹을 걸 그날그날 살 수 있는 동네. 현실적으로 애가 크면서 초등학교가 어디있는지, 지하철역은 가까운지를 따져야겠지만, 그 동네에는 이렇게 하루 일상생활을 읽을 수 있는 골목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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