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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Jan 23. 2024

우리가 많이 쓰는 비문. '비문 모둠'

한글인데 읽고도 왜 뜻을 모르니.... 이상하게 오늘은, 운수가 좋더만.

일하며 무수히 많은 글을 접한다. 하루종일 읽고, 읽고, 또 읽고, 읽은 걸 명료하고 간단한 문장으로 고친다. 때로는 내가 보고 들을 걸 쓴다. 쓰고 나서는 읽고, 또 읽으며 마찬가지로 보다 명료하고 간단한 문장으로 고친다. 글과 오타는 운명인가. 교정을 보고, 퇴고를 하고 또 보고 또 봐도 오탈자는 언제나 한두개씩 꼭 얼굴을 내민다. 아니, 내가 이전에 이걸 못봤다고? 귀신에 홀린듯한 기분이 수시로 든다. 그럴 정도로 아주 어이없는 위치에, 때론 너무나 구석진 곳이나 너무나 잘 보이는 곳에 오탈자가 버젓이 자리한다. 오탈자는 신이 내린 거-라는 어떤 작가님의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그런데 오탈자는 명백한 오류이기에,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오히려 '내가 찾았어!!'하는 희열도 있다. 그런데 골치아픈 건 명백하지 않으나 아주 거슬리는 비문과 지나치게 꾸민 문장이다. 그것도 회사에서 '글 꽤나 쓴다'하는 분들이 만든 자료들인데, 한두곳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자료에서 멋내고 있어보이게 하느라 거추장스러워진 문장이 왕왕 나온다. 담백하고 간결한 자료를 내는 곳은 100군데 중 세 군데 정도. 이 '오염된' 문장들은 유행인가 싶을 정도로 일반화,일상화돼있다. 이걸 고치느라 하루를 소비하며, 또 이런 글이 많으니 내가 밥벌어먹고 사는구나 싶다.


그러다, 이런 문장들의 유형을 기록해놓자 싶었다. 시대의 기록--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매일 하는 일의 기록이고, 또 지금 현시점의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으레 쓰는 문장들의 기록이다. 누군가, 업무로써 문서를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이 어쩌다 이 글을 보면 한 문장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다. 정말 많은 유형들이 있는데, 최근 이틀간 모은 사례만 이만큼이다. 발견 족족 업데이트해야지.


1. "~~하는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요즘 참 '부분'이라는 말을 남발한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하는 분야가 부족한 부분입니다' 등이다. 뭔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거나, 문장을 끝내기 애매할 때 뭉뚱그리는 느낌이다. '부분'이란 말 없이 '생각합니다.', '~~하는 분야가 부족합니다.'라고 확신하기 어려워서일까 싶기도 하다.


2. 및


-마찬가지로 남발, 남용되는 단어 중 하나다. 'ㅇㅇ와 ㅁㅁ', 'ㅇㅇ랑 ㅁㅁ'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데, 굳이 있어보이고 싶어서일까. 권위나 무게감이 필요해서일까. 'ㅇㅇ 및 ㅁㅁ 및 ㅎㅎ' 등으로 지나치게 많이 끌어다 쓴다. 직접인용을 할 때조차 "제품A 및 B를 구매했습니다."라고 쓴다. 아니, 말할 때 '및'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나. 문어체로는 '~와'로, 구어체로는 '~랑'이면 충분하다. '및'을 쓰고싶다면 두가지를 열거할 때 딱 한번만 쓰는 게 가독성을 망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3. 노력해 나가겠다.


-뭔가를 다짐하거나, 미래의 계획을 말할 때 '나가겠다'를 많이 쓴다. 그런데 이것도 내가 보기엔 불필요하다. '노력해서, 나아가겠다'라는 두가지 의미를 표현하는 건 좋지만, 보통은 '노력하겠다' 만으로 그 다짐이 충분히 전달된다. '나가겠다'를 붙이면 좀 더 건설적으로 보여서일까. 읽는 데 방해가 된다. '노력하겠다', '실천하겠다', '실행하겠다'만으로 족하다.


4. 하나의 뜻을 두개 이상의 어휘로 표현 : (예시) '운영이 이뤄지고 있으며'


-요즘 부쩍 많이 보이는 비문이다.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행형을 표현할 때 자주 보인다. '운영이 이뤄지고 있으며', '준비하는 과정 중에 있으며' --어제 실제로 내가 고친 문장이다. '운영되고(하고) 있으며', '준비하고 있으며'로 족하다. 단순한 어휘를 두가지, 세가지 어휘로 늘려 표현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문장이 하나만 봤을 때는 그럴수도 있지 싶지만, 둘, 셋, 넷, 점점 많아져 한 페이지 안에 저런 문장이 대여섯 개만 있어도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게 아주 힘들어진다. 간단하게, 심플하게 쓰자. 그래야 내 일도 좀 줄어들지... 특히 ㅈㅇㄷㅂㅇ에서 보도자료 쓰시는 분, 제발. 제발 이런 문장 좀 쓰지 마세요. 자료 세 번, 네 번 읽어야 이해가 된다고요.


5. ~가 가능하다.


-전혀 틀린 표현이 아니지만, 이게 문장 안에 여러번 등장하면 읽는 동안 턱턱 걸리는 속도방지턱이 된다. '표식 사용이 가능하다'라는 문장을 '표식을 사용할 수 있다'로 고쳐쓰면 어떨까. '할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하다'는 한자어보다 직관적이고, 쉽다. 우리는 문어체보다 구어체를 들었을 때 훨씬 잘, 빨리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그래서 글을 쓸 때도 보고를 올리는 자료 아니면 가능한 구어체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선택한다. 내가 읽기 쉽기 때문이다. 내가 읽기 좋아야 남도 읽기 좋으니까. 보고나 결제 자료에서도 전체 문맥을 망치지 않는 수준이라면 구어체가 좋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는 어디에나 쓸 수 있는, '가능하다'보다 쉽고 직관적인 말이다.

실제 내가 어제 받은 자료에서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일상 회복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은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일상을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쓰는 게 훨씬 좋다.


6. ~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난 주말에 TV를 켰는데, 소녀들이 걸그룹 멤버 선발을 겨루는 장면이 나왔다. 마침 처음으로 '데뷔 확정' 멤버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그 멤버는 눈물을 머금고 한 마디를 겨우 했다. "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구여." 그리고 아쉽게 2위에 머문, 그러나 다음에 데뷔 기회가 남아있는 멤버도 말했다. "투표해주신 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이건 또 무슨 유행인가. 감사합니다-에서 끝날 걸 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하는 거지. 말하고 싶다는 건, 지금은 아직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 언제 말할 건데? 그러고 나서 어린 친구들이 방송에 나와 하는 말을 보니, 십중팔구 '말하고 싶다'고 끝을 맺었다.

한동안? 특히 90년대에 '~인 것 같아요.'라고 말끝을 흐리는 어투가 문제라고 지적된 적 있다. 자기 감정이나 의견에 확신이 없는 젊은 세대들이 '좋다'가 아니라 '좋은 것 같아요', '기뻐요'가 아니라 '기쁜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었다. 그저 유행이라고 보면 될 일을 뭐 저리 죽자고 꼬투리를 잡나 했는데, 이제 나도 꼬투리 잡는 꼰대가 된걸까. 이 시대에, 방송 카메라 앞에서 데뷔할 수 있게 투표한 팬들에게 "감사합니다!!!"하고 씩씩하게 말 할 소녀는 없는걸까.


7. 동사의 명사化


-한자어를 기반으로 한 동사를 명사화해서 쓰는 문장도 많다. 이렇게 되면 명사+동사로 간단히 끝날 문장을 명사+명사+동사 -- 로 문장이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최근 내가 받은 자료에는 '환경 구축으로 더 좋은 사회 조성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심지어 직접인용 " "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환경을 구축해 더 좋은 사회를 조성하겠다"만으로 충분하다. '노력해 나가겠다' 하나 생략한다고 전체 문맥이 망가지거나 의미가 흐려지지 않는다. 노력하겠다는 '의지'는 이미 줄어든 문장 안에서도 충분히 느껴지니까.


8. ~에 대해


-쓰다보니, 전부 비슷한 유형의 비문들이구나 싶다. 중복, 불필요한 첨언이 주를 이룬다. '~에 대해'도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표현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문장을 모아 이 중 '에 대해'라는 부분만 골라보면, 그중 90% 이상은 안 써도 되는 표현이지 싶을 정도다. 어제는 어떤 간행물에서 이런 문장을 봤다.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저항하겠다' 그냥,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겠다'고 하면 된다. 공권력이 '행사'됐으니 누군가 선의의 피해를 보았고, 저 말은 그래서 나온 말 아니겠는가. 그냥, 공권력에 저항하면 된다. 공권력에 대해 저항하지 않아도 된다.



(일하다 비문 발견 시, 계속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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