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례한 자들을 만난다. 비사무직으로 일하면서 무례한 자들이 이렇게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저들은 과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 소위 '일생가' 일상생활 가능한가 묻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저들의 직장에서 나도 깽판 치고 싶다. 어린 학생들의 반말, 기본적인 태도가 상스러운 어른들, 모두가 지키자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회적 약속들을 깨부수려는 주취자들. 전에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무례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많을 수가 없다.
어제는 상대에게 잘못된 것이 나가면서 모든 일이 꼬였다. (여기서 상대란 소위 말하는 고객, 하지만 그 뒤의 일을 생각하면 고객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당한 일은 아니다. 나도 출근 후에 들었다. 잘못 받은 상대는 기존에 하지 않는 서비스까지 해달라고 하면서 소위 말하는 땡강을 피우길래 관리자가 직접 해주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건 욕. 전화로 고래고래 상스럽게 대했다고 한다. 사실, 잘못 받았다고 하는 것도 상대가 모두 소비해 버렸기에 잘못 나간 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자신이 해달라고 한 것이 못마땅했냐며 하지도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해 준 관리자의 태도를 지적했다. 더불어 유상 보상을 원했다. 화가 난 매니저는 너무 분하여 눈물을 쏟은 것 같다.
관리자는 정말 강인한 사람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모든 예민러들을 만났다. 주취자든 아저씨들이든 아줌마들이든 상관없다. 모두가 예민한 2년이었다. 그들에게 우리는 많은 고성과 욕을 받았다. 많은 우리들은 그럴 때면 분노와 모욕감으로 뒤돌아 눈물을 쏟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관리자는 끄떡없던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강인한 우리의 관리자가 눈물을 쏟은 것에 대해 매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잘못 나갈 수 있고 그로 인해 기분이 당연히 상할 수 있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을 때 기분 나쁨,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의 기본방침은 잘못 나갔을 경우 고객이 원하면 다시 제공, 더불어 결제 취소까지 가능. 그것도 원치 않으면 유상 보상도 가능하다. 처음에 이 모든 것을 제시하였지만 거부. 자신이 있는 곳까지 직접 와서 다시 제공. 안된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바쁜 시간까지 계속 전화하며 끊지 않아 직접 방문 재제공 원하였고 어쩔 수 없이 매니저가 직접 가서 재제공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재제공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유상보상을 해달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게 가능한 사회라는 것이 말이 되나.
난 우리 사회가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식한 상황이 되고 이 상황들을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상황이 과연 똑똑한 사회인가 회의감이 든다. 그들은 또 자신들의 영역에서는 정상인 인척 살아가겠지. 자기가 얼마나 무식한지 모르고 말이다.
오늘은 굉장한 한 풀이 한마당.
우리들은 그냥 우리보다 못 배운 사람들인가 보다 하며 자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