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봄 Nov 26. 2023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

가을이 겨울에게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고 믿었어요.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 약해 보여선 안된다는 강박이었는지도 모르죠. 어쩌면 첫째 아이다운 애어른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일까요?





살다 보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 엉망이 되어버린 계획 앞에서 좌절했을 때. 40도까지 열이 올라 어지러워도. '우는소리 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어. 그럴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자'라고 스스로를 다잡았죠.


그것은 이성적으로 올바른 선택이었어요.


그렇잖아요. 실제로 힘들다, 괴롭다, 한탄을 늘어놓아봐야 상황은 변하지 않고 기분만 더 나빠질 테니까요. 누군가에게 털어놓았기 때문에 속이 시원해질지는 모르지만, 상대가 해주는 위로의 말들이 무언가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힘든 순간에도, 기어이 혼자 버텼어요. 고독과 슬픔이 가득 담긴, 찰랑이는 우물을 가슴에 품고. 가만가만 앞을 향해 걸었죠. 그것이 그 시간을, 가장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누군가에게 기대어 우는 것,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위로받는 것 따위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죠. 어쩌면, 해본 적 없었기에, 할 줄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그토록 단호한,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한다'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누군가는 추진력, 독립심, 자기 확신이라고 말해주었던 그것의 다른 표현은, 타인에 대한 의심, 폐를 끼치는 것도 끼침을 당하는 것도 피하고 싶은 이기심, 내가 가장 옳다고 믿는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죠.



맞아요. 세계는 전부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단 하루도 완전한 혼자로 살아갈 수 없어요. 어릴 적,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왜였을까.


아마도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아이'로 칭찬받았던 기억들이,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근거가 되어 주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만큼, 애를 쓰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죠. 완벽한 혼자가 되어 살아가는 삶은, 이 세계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랜 친구와 나누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타인이 건네는 유난스럽지 않은 안부. 연인의 어깨에 잠시 기대어 내려놓는 걱정. 소중한 이들의 손을 먼저 잡아주려는 노력.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이 있다는 사실.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것...


당장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 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지.





어젠 오랜 지인과 짧은 통화를 하며 안부를 나눴어요. 요즘하고 있는 고민들을 털어놓고 상대방의 근황도 물었죠. 바쁜 일정 사이의 틈을 맞춰 곧 만나자는 약속을 했어요. '우리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라며.


오늘 아침은 베프와 잠시 메시지를 주고받았죠. 언제든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고, 네가 있어줘서 든든하다고.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며 아주 커다란 하트 이모티콘을 남겼어요.


그것만으로도, 부산스러웠던 마음의 거품이 슬며시 잦아들어요.


지금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어줘요. 지나온 시간 속에서,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온 일들이 증거가 되어줘요.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계속해서 자신을 믿어도 좋다고.



가을이 겨울에게. 일상 에세이 편지


당신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종종, 가장 중요한 것에 서투른 우리니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믿는 것, 그리고 '우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계속 성장하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