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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Aug 27. 2020

영화 '소공녀', 그리고 나의 작은 방

고시원 살이를 끝내며


미소는 가사도우미 일을 한다. 그녀에겐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미소. 하지만 집세가 오르고 더이상 월세를 내지 못할 상황에 이르면서 그녀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순 없으니까. 세상이 뭐라하건 자신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미소의 떠돌이 생활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위트있게 그려낸 영화 <소공녀>다. 영화를 보고 나의 지난 방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미소처럼 떠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공녀>.. 그리고 나의 작은 방

대학 시절 의정부에 살았다. 학교는 신촌이었다. 우리 집 현관문을 나와 강의실 문을 들어갈 때까지 딱 두 시간이었다. 출퇴근길 만원 버스에서는 손잡이보다 다른 사람의 몸통에 의지해 갔다. 지하철 1호선도 많이 이용했는데 1호선 특유의 오래된 냄새가 싫었다. 그 때 생각했다. 아, 서울 살아야 겠다.

대학교 삼학년 때쯤. 고시를 준비한다고 학교 앞 고시텔에 들어갔다. 무보증금에 32만원.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내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학교 정문까지 1분 거리. 나는 매달 32만원에 하루 4시간을 샀다. 하지만 햇빛 없는 방에서 지내느라 우울감을 얻었다. 3만원을 더 내고 외창이 있는 방으로 갔다. 매달 3만원에 햇빛과 바깥공기를 샀다. 남는 장사였다고 생각한다.



고시를 때려 치우고 취업을 준비했다. 제주도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 입사했다. 작은 공공기관 소속이라 그런지 사택 지원이 없었다. 기껏 있는 사택이라고는 육지에서 발령받아  기존 직원분들이 이미 살고 계셨다. 게다가 본사에서는 제주도 집값이 많이 올라 다른 지역에서     있는 돈으로 제주도에선  채밖에 사택을 구할 수가 없단다. 셰어하우스에 들어갔다. 2인실이었는데 나는 먼저 들어온 언니보다 삼일 늦게 들어와 이층 침대 윗층을 썼다. 매달 30만원이었다.


회사 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회사와 가까운 제주 시내 오피스텔을 얻었다. 보증금 150만원에 월세 48만원. 관리비가 7만원 정도 나왔다. 그 때 내 기본급이 180만원. 주말 당직을 이틀 하면 총 200만원 정도 받았다. 때마다 성과급이 얼마씩 있다고 했는데 신입이라 그것도 얼마 안됐다. 당시 나에겐 학자금 대출 일부가 남아있었고, 취업준비하면서 쓴 아나운서 학원비 할부가 있었다. 그 땐 지금보다 세상 물정을 더 몰라 ‘내가 이 돈 받자고 제주까지 내려와서 고생하나’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연기를 시작했다. 다시 그 고시텔로 왔다. 연기학원을 다녔고, 대학원을 한학기 다녔다. 카드빚이 생겼고, 학자금 대출이 생겼다. 연극을 했고, 또 다시 연기학원을 다녔다. 카드 한도가 늘었고 빚은 더 늘었다. 알바를 여러 개 했다. 하고싶은 일을 하니까 이 정도는 감수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 나아지겠지 싶었다. 빚은 더 늘었다.


알바를 하는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을 무렵, 코로나가 왔다. 하기로 했던 아르바이트들이 취소됐다. 잠시 쉬고 싶었다. 빚고 갚고, 조금이나마 돈도 모으고 싶었다. 의정부 본가로 돌아왔다. 내 방에 누웠다. 따뜻하고, 넓고, 아늑했다. 무엇보다 방에서 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무보증금에 월세 0원. 부모님의 눈치라는 정신적 고통만 지불하면 되는 공간. 물론 첫 한 달은 엄마와의 마찰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나 이 혹독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없는 내가 지불 해야 할 일종의 정신적 페이였으리라. 그래도 나는 집밥과 햇빛을 얻었고, 이제 서울까지 가는 두 시간도, 1호선의 냄새도 견딜만 하다.



하지만 낭만으로 시작했던 내 20대가 끝이 나고 30대가 되어 견디기 힘든 것이 있다면 사회적 시간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수치감이다. 취업을 하고, 돈을 모으고, 가정을 이루고, 여가생활을 하고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드는 부끄러움. 나는 배우일까. 프리랜서일까. 알바생일까. 대학원 휴학생일까. 이 중 어느 것으로 답을 해도 내 마음은 항상 무겁고 쑥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미소가 대답한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다’고. ‘떠도는 게 아니라 여행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 일단 이 지구상에 태어난 이상 잘 서식해 보자. 조금 늦더라도 이 도시에 내 몸을 안전하게 누일 수 있는 작은 방도 하나 마련해 보자. 그러는 와중에도 혼자 영화관에서 조조 영화를 보는 것과, 달달한 바닐라 라떼는 지켜줘야지. 그리고 나에게 햇빛이 들어오고 환기도 잘되는 방을 내어준 나의 부모님께 ‘따봉’을 날려드리는 존중과 예의도 잊지 말아야겠다. 집은 없어도 누구보다 예의있고 친절하고 자기를 소개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 미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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