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Dec 29. 2020

체스하는 여자

<퀸스 갬빗>로 보는 체스와 여성

체스하는 사람

영화 <체스플레이어> 중 (출처: 다음영화)

   '체스 플레이어'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기물들이 놓인 체스판 위를 누비고 다니는 정갈한 손, 정돈된 의상, 가지런한 자세, 귀족적인 분위기. 지금 당신이 그린 이미지 속 체스 플레이어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흔히들 '체스하는 사람'하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자세로 체스를 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세계 체스연맹에 따르면 전 세계 체 선수 중 여성은 15%에 그친다고 하니 체스가 그동안 남성의 스포츠로 여겨져 온 것은 사실이다.



넷플릭스 <퀸스갬빗> 중 (출처:Netflix 유투브)

 <퀸스 갬빗>이 가져온 체스 열풍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체스계의 현실을 제대로 뒤집은 작품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퀸스 갬빗>이다. 80년대 출간된 윌터 테비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1950년대 말 고아원에 맡겨진 베스 하먼(안야 테일러조이)이 관리인 아저씨를 통해 체스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약물중독 등 온갖 풍파를 견디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공개 직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퀸스 갬빗>은 전 세계 92개국에서 6200만 명이 시청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용자들이 시청했는데, 실제로 <퀸스 갬빗>이 공개된 이후 체스보드 업체 주문량이 50% 증가했다고 한다. 전 세계 넷플릭스 사용자들을 사로잡은 <퀸스 갬빗>의 매력은 무엇일까.



<퀸스 갬빗>이 매력적인 이유 세 가지: 여성 서사, 남성 조력자, 미장센

    <퀸스 갬빗>은  현실의 편견을 과감히 뒤집는 여성 서사다. 1950년대, 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체스계에서 젊은 여성이 남성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언더독의 반란이다. 현재까지도 체스 플레이어들은 남성이 다수고, 상위 랭크에도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성 천재 체스 플레이어를 내세운 <퀸스 갬빗>의 스토리는 가히 파격적이다. 더욱이 주인공 베스는 버려진 고아였고, 입양을 간 집에서도 부모님의 이혼으로 양어머니와만 살게 된다. 고아출신,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았던 소녀의 체스계 정복기.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베스가 체스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운 수많은 남성 조력자들과의 에피소드도 크나큰 볼거리다. 고아원에 있을 때 베스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봐 준 관리인 아저씨부터, 고비고비 마다 베스의 훈련상대가 되어 실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준 남자 친구들까지. 남성 조력자들은 때때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고마운 존재들이었으며 사랑과 우정을 넘나드는 남자친구들과의 관계는 전체 서사에 긴장감을 더한다.

넷플릭스 <퀸스갬빗> 중 (출처:Netflix 유튜브채널)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미장센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1950~60년대 미국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영상미는, 나로 하여금 베스가 얼른 대회에서 우승해  다른 도시의 대회도 가게끔 응원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국외 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는 멕시코, 파리, 모스크바의 모습도 비춰지는데 각 도시의 풍경과 호텔 인테리어, 체스 경기장의 고급스러우면서도 빈티지한 감성은 작품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또 점점 세련되어지는 베스의 의상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울렛에서 산 저렴한 옷 때문에 촌스럽다고 놀림받았던 소녀가 우아한 원피스를 차려입고 정장 차림의 사내들 틈에 등장하는 모습을 볼 때의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화 <신의한수-귀수편> 중 (출처: 다음영화)

'바둑 하는 여자 이야기'를 기대하며

서양에 체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바둑이 있다. 체스처럼 바둑계 역시 남성 기사들이 세계 무대를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신의 한 수>, 드라마 <미생> 등은 모두 남성이 주인공이었다('미생'의 경우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던 청년의 짠한 회사생활이 주된 스토리라인이었지만). 현실에 가깝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하지만 체급이나 체격으로 급을 나누는 것도 아닌 두뇌 스포츠에서 성별을 구분 지을 필요가 있을까(실제로 우리나라 여성 기사 랭킹 1위 최정 기사는 세계 60위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때론 현실을 보란 듯이 뒤집고 편견을 깨부순 이야기가 관객을 더욱 즐겁게 한다. 그리고 시대를 앞선 콘텐츠는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앞당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 콘텐츠의 힘 아니겠는가. 그러니 넷플릭스는 <퀸스 갬빗>의 후속작으로 동양의 바둑 여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내놓길 촉구한다. 인공지능과의 맞대결에서 살아남는 여성 바둑기사의 두뇌전쟁 이야기는 어떤가. 원더우먼과 블랙위도우를 뛰어넘는 21세기 여성 히어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지 않을까.

    


*참고문헌 : 중앙선데이 [남>여 기울어진 체스판... '퀸스 갬빗'서 날려 버렸다] (2020. 12. 19)




작가의 이전글 뒷산을 오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