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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Nov 11. 2024

색감 천재가 그린 풍경화, 통영


통영은 마치 색감의 천재가 그려낸 거대한 캔버스 같다. 어디를 가든 각기 다른 매력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어릴 적 자주 쓰던 12색 크레용처럼 통영의 각양각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들을 하나씩 펼쳐보려 한다. 풍경화들이 가득한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도시, 통영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 미륵산 전망대

미륵산 전망대는 통영 여행을 가는 모든 여행자가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장 먼저 추천하는 이유는?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전망대에 오르면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륵산은 1975m 길이의 케이블카가 있어 전망대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거슬리는 소리 없이 올라가는 케이블카 안에서는 높아지는 고도에 따라 점점 넓은 면을 드러내는 바다를 볼 수 있다. 맑고 푸른 풍경화가 완성을 향해 그려지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미륵산 전망대를 향해 올라간다.

전망대에서 비로소 풍경화는 완성된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섬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걸작이다. 맑은 날의 하늘은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푸르고, 그 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청록색으로 빛난다. 다도해의 여러 섬들은 점을 찍어 놓은 것처럼 바다 위에 흩어져 있다. 통영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부를만하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는 세계적인 작품들처럼 미륵산 전망대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를 직접 오르면 알 수 있다.

전망대에서 미륵산 정상까지 갈 수 있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15분이면 정상 비석을 볼 수 있다.


어두워지면 깨어나는 그림, 디피랑

해가 달과 바통터치를 하면 통영에는 새로운 작품이 깨어난다.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통영의 또 다른 작품의 제목은 디피랑이다. 디피랑은 자연과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색 여행지다. 어둠 속에서 빛과 색이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디피랑의 이름은 ‘디지털’과 ‘피랑’을 합쳐 만들어졌다(피랑은 통영에서 언덕을 의미한다). 이름 그대로 통영의 언덕 위에 그려지는 디지털 아트. 그 그림 속을 여행할 수 있는 테마파크가 디피랑이다.

어둠이 깔린 숲속에서 빛의 줄기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장면과 요소들은 한편의 동화를 연상케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읽어도 좋을 이야기가 있다. 빛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통영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을 주제로 삼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단순히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빛 속에 담긴 이야기를 느끼고 상상하게 한다. 디피랑은 단순한 디지털 아트쇼를 넘어, 통영의 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공간이다.

디피랑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동피랑과 서피랑의 벽화가 살아나는 장면이다. 통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이 벽화들은 마치 오래된 이야기가 다시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랫동안 벽에 걸려 정지된 화면으로 있던 그림이 판타지 영화 속 움직이는 그림들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디피랑은 안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어떤 공간이 있는지 모르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통영 여행 계획이 있다면 디피랑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동화책 속 어느 한 장면, 서피랑

서피랑은 통영의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통영의 중심인 세병관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고지대 언덕이라 서피랑이 됐다. 서피랑 초입에는 99계단이 있다. 이름 그대로 99개의 계단을 올라가게 되는데 위로 뻗어 올라가는 계단의 모습 다른 차원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터널 같다. 노랑 파랑 알록달록 칠해진 벽화 사이를 걸어 올라가면 금세 탁 트인 전망이 등 뒤로 펼쳐진다. 통영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통영항의 풍경은 시원한 시야와 함께, 알록달록 지붕들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올망졸망하게 모여 있는 도시는 퍽 귀엽게 느껴진다. 동화책 속에 그려져 있는 어촌 마을처럼 청량한 색감을 갖고 있다. 통영 시민들의 일상과 자연이 공존하는 전망이다.

서피랑은 99계단과 정반대길로 내려갈 수도 있다. 구불구불 난 마을 길로 내려가는 코스로, 세병관 앞에 도달하게 된다. 여행 코스에 참고하자.


색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벽화마을, 동피랑

동피랑은 서피랑과 함께 통영의 대표적인 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다양한 색채로 채워진 벽화들과 가게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통영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이 마을은, 한때 철거 위기에 처했던 낡은 동네였지만, 어느덧 통영을 찾는 여행자들이 꼭 들러야 할 필수 여행지가 되었다.

언덕진 골목길을 따라 키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동피랑을 오르면 느껴지는 즐거움이 형형색색 다양하다. 벽화가, 다채로운 제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소품샵이, 아기자기한 카페와 음식점 외관들이 마을 주민들의 일상과 어우러진다. 그 특별함이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부른다.

동피랑은 통영을 무대 삼고 있는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사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통영의 풍부한 문화적 배경과 어우러져 창작의 영감을 얻기 좋은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다양한 작품 전시 혹은 마켓의 장이 되고 있다. 동피랑의 골목은 예술의 향기로 가득하다.

동피랑은 관광지 그 이상의 사람과 이야기가 살아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여행자는 통영의 따뜻한 정서와 예술가들이 통영을 사랑하는 방식을 느낄 수 있다.


바다 위에 그려진 수채화, 비진도

다도해를 품고 있는 통영을 여행한다면 섬 여행은 필수에 가깝다. 여러 섬 중 몇 년 전만 해도 숨은 보석이었지만, 매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와 매력을 알아가고 있는 곳이 있다. 특히 트래킹 성지로 유명한 그 섬은 ‘비진도’다.

비진도는 자연이 빚어낸 도자기다. 곱고 하얀 백사장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그 너머로 펼쳐진 청량한 색감의 바다. 한국 전통 도자기의 아름다운 선과 푸른색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바다 풍경은 깨끗한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맑다. 자연의 순수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모습이다.

비진도를 가려면 통영항에서 소매물도행 여객선을 타고 중간 정박지인 비진도 외항 혹은 내항에서 내리면 된다. 비진도의 주요 명소가 외항에 모여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외항에서 내리지만 경험상 비진도의 여러 면을 보기에는 내항에서 내려서 외항 방향으로 걷는 것이 더 많은 풍경을 담기에 좋다. 걸을수록 많은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이 비진도다.

비진도의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파란 하늘과 맑은 바다, 그리고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관광지에서 파는 엽서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대표할 만한 구도라고 연신 생각하며 걷는다.

등산에 관심이 있다면 비진도 외항에 있는 선유봉에 도전하는 것도 섬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특히 외항에서 내항 방향의 전망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선유봉 등산로 중간중간 등장하는 전망대들이 가장 구도가 아름답다. 초입 코스가 울퉁불퉁 바위 사이사이를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있는 편이지만, 그 길을 통과해 땀을 쏟아내면 탁 트인 비진도 일대의 바다를 볼 수 있다. 바다가 끝도 없이 넓어서 내려다보이는 비진도가 귀엽게 느껴진다. 전망대에서는 내항과 외항을 잇고 있는 자연이 만든 다리도 볼 수 있다. 내항에서 트레킹 해서 외항으로 걸어왔다면 반드시 걷게 되는 길이다.

그 길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에게 놀기 좋은 해수욕장이 된다. 구름보다 하늘색이 더 많이 보이는 날의 비진도 바다는 하염없이 잔잔해 아이들에게 적당한 놀이터다.



* 본 내용은 매거진 <SWITE> 10월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 에디터 윤슬이 운영하고 있는 국내외 여행 뉴스레터 <뚜벅이는 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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