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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유 Sep 01. 2022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찍어 남이

#02. 고양이는 자기 이름을 알까?


남이의 이름은 '남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나미'라고 알아 듣는 경우가 많아서     꾹꾹 눌러서 발음하거나 한번  알려줘야 한다.  이름도 ‘은주'인데, 듣는 이들이 ‘문주', ‘운주', ‘민주' 등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쯤 되면  발음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남이의 이름은 고양이 이름치고는 사연이 있어 보여서인가, ‘남이는  남이에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나미나 나비였다면 그런 질문을 듣진 않았을 텐데, ‘남이'라는 이유로 남이는 작명의 이유를 밝혀야  때가 종종 발생한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면 지난 연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지난 일이니 꺼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한동안은 이름을 진지하게 바꾸어야 할까 고민했다. 어차피 발음도 헷갈리니까 그냥 오늘부터 ‘나미'라고 하는 게 어떻겠니? 게다 남이는 (중성화수술을 통해 특정 성별을 가진 고양이는 아니나) 엄연히 암컷이었기에 ‘남이'라고 하는 것보단 ‘나미'라고 부르는 쪽이 조금 더 어울리는 이름 같단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몇 년을 ‘남이'라고 불러온 걸 ‘나미'라고 부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어 남이 되어버린 연애지만, 남이만은 그 이름 그대로 내 곁에 남았다.


남이는 처음부터 당연히 남이가 아니었다. 이름 없던 새끼고양이의 이름 후보로는 ‘새절’, ‘감자’, ‘개천',  있었는데, 이는 남이를 데리고  지역명이 새절이라서,  동네에 감자탕 골목이 있어서 감자, 남이를 데리고  날이 10 3 개천절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촌스러운 이름으로 하면 오래 산다고 하던데, 개천이는 나쁘지 않았을  같기도 하다.) 남이가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불만을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새절, 감자, 개천으로 지었다면  글을 적을 이유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옆으로 샜다. 돌아와서 남이는 왜 남이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사실 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혼자보단 둘이 좋다는 랜선 집사들의 이야기를  어느정도 공감했으니까. 그래서 이름도 오누이 혹은 자매가 될 걸 고려해 연관성 있는 이름으로 고심했다. 남이의 동생은 ‘북이'가 될 예정이었다. 남이와 북이. 합쳐서 ‘남북이'.


자연스레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있다거나, 통일에 대한 염원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떠올리겠지만, 전혀 상관없음을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싶다. 앞에서 말했듯 남이의 이름은 ‘연애'와 관련이 있지, 가족사나 정치적인 견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전 남자친구의 이름에 동과 서가 들어갔을 뿐이다. 그러니까, 남자친구와 반려묘 이름을 조합해 ‘동서남북'을 만들려고 했다.


어디선가 피식하고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지만, 모른 척하고 마저 이야기하자면, 나는  심각한 방향치다. 지도앱을 켜놓고도 가끔 길을  찾을 때가 있고, 원래 타던 전철도 반대로 타면 나갈 출구를 헤맨다. 그렇다 보니 방향치인 내가 ‘동서남북' 곁에 두면 길을  찾을  있을  같은 주술적(?) 의미로 고심 끝에 지은 이름인데, 결국엔 , , 북을 채우지 못하고 오직 남만 남아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다.



모든 방향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언제고 내게 올 동생 고양이의 이름짓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당연히 깔맞춤에 대한 의지는 버리지 못하고 남이와 쿵짝이 맞아 떨어지는 이름으로. 남이섬에서 따와서 ‘남이와 섬이'라든가, 남과여에서 ‘여이'라든가. 남이섬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나 애정이 있는 건 아니라서 일단 섬이는 보류되었고, 여이는 ‘어이~’하고 대충 부르는 느낌이라 탈락했다. 그렇게 계속되던 남이 동생 이름짓기를 그만둔 건 ‘외동묘'에 가까운 남이의 성격 때문이었다. 밖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혼자였던 남이는 낯가림이 심하고, 경계심이 매우 많아서 다른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일이었다.




가끔 남이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3년이 넘는 시간을 같이 지내왔다면 ‘남이'라는 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란 것 정도는 알지 않을까. 실제로 ‘남이야~’라고 부르면 내게 오곤 했으니까. 확인차 글을 쓰다가 남이를 바라보며 ‘개천아~’라고 불렀더니 이내 ‘야옹~’하고 나에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주인의 마음과 달리 남이에겐 제 이름 따위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중요한 건 반려동물 이름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남자친구와 관련한 걸 붙이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초보 집사의 참고 영상>

고양이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 법 / 냥신TV

https://www.youtube.com/watch?v=Qfc6dWGBjrk


고양이 이름은 2자 이내로, 이름을 부를  때마다 특정한 보상을 주면 천재 고양이가 된 것처럼 알아듣는다고 한다. 남이도 간식 줄 때만 유난히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데, 아무래도 그 이유였던 듯하다. 역시 식탐이 지능을 이기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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