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고양이는 자기 이름을 알까?
대부분의 사람이 '나미'라고 알아 듣는 경우가 많아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서 발음하거나 한번 더 알려줘야 한다. 내 이름도 ‘은주'인데, 듣는 이들이 ‘문주', ‘운주', ‘민주' 등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쯤 되면 내 발음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남이의 이름은 고양이 이름치고는 사연이 있어 보여서인가, ‘남이는 왜 남이에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나미나 나비였다면 그런 질문을 듣진 않았을 텐데, ‘남이'라는 이유로 남이는 작명의 이유를 밝혀야 할 때가 종종 발생한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면 지난 연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지난 일이니 꺼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한동안은 이름을 진지하게 바꾸어야 할까 고민했다. 어차피 발음도 헷갈리니까 그냥 오늘부터 ‘나미'라고 하는 게 어떻겠니? 게다 남이는 (중성화수술을 통해 특정 성별을 가진 고양이는 아니나) 엄연히 암컷이었기에 ‘남이'라고 하는 것보단 ‘나미'라고 부르는 쪽이 조금 더 어울리는 이름 같단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몇 년을 ‘남이'라고 불러온 걸 ‘나미'라고 부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어 남이 되어버린 연애지만, 남이만은 그 이름 그대로 내 곁에 남았다.
남이는 처음부터 당연히 남이가 아니었다. 이름 없던 새끼고양이의 이름 후보로는 ‘새절’, ‘감자’, ‘개천', 이 있었는데, 이는 남이를 데리고 온 지역명이 새절이라서, 그 동네에 감자탕 골목이 있어서 감자, 남이를 데리고 온 날이 10월 3일 개천절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촌스러운 이름으로 하면 오래 산다고 하던데, 개천이는 나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남이가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불만을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새절, 감자, 개천으로 지었다면 이 글을 적을 이유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옆으로 샜다. 돌아와서 남이는 왜 남이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사실 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혼자보단 둘이 좋다는 랜선 집사들의 이야기를 어느정도 공감했으니까. 그래서 이름도 오누이 혹은 자매가 될 걸 고려해 연관성 있는 이름으로 고심했다. 남이의 동생은 ‘북이'가 될 예정이었다. 남이와 북이. 합쳐서 ‘남북이'.
자연스레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있다거나, 통일에 대한 염원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떠올리겠지만, 전혀 상관없음을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싶다. 앞에서 말했듯 남이의 이름은 ‘연애'와 관련이 있지, 가족사나 정치적인 견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전 남자친구의 이름에 동과 서가 들어갔을 뿐이다. 그러니까, 남자친구와 반려묘 이름을 조합해 ‘동서남북'을 만들려고 했다.
어디선가 피식하고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지만, 모른 척하고 마저 이야기하자면, 나는 꽤 심각한 방향치다. 지도앱을 켜놓고도 가끔 길을 못 찾을 때가 있고, 원래 타던 전철도 반대로 타면 나갈 출구를 헤맨다. 그렇다 보니 방향치인 내가 ‘동서남북'을 곁에 두면 길을 잘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주술적(?) 의미로 고심 끝에 지은 이름인데, 결국엔 동, 서, 북을 채우지 못하고 오직 남만 남아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다.
모든 방향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언제고 내게 올 동생 고양이의 이름짓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당연히 깔맞춤에 대한 의지는 버리지 못하고 남이와 쿵짝이 맞아 떨어지는 이름으로. 남이섬에서 따와서 ‘남이와 섬이'라든가, 남과여에서 ‘여이'라든가. 남이섬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나 애정이 있는 건 아니라서 일단 섬이는 보류되었고, 여이는 ‘어이~’하고 대충 부르는 느낌이라 탈락했다. 그렇게 계속되던 남이 동생 이름짓기를 그만둔 건 ‘외동묘'에 가까운 남이의 성격 때문이었다. 밖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계속 혼자였던 남이는 낯가림이 심하고, 경계심이 매우 많아서 다른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일이었다.
가끔 남이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3년이 넘는 시간을 같이 지내왔다면 ‘남이'라는 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란 것 정도는 알지 않을까. 실제로 ‘남이야~’라고 부르면 내게 오곤 했으니까. 확인차 글을 쓰다가 남이를 바라보며 ‘개천아~’라고 불렀더니 이내 ‘야옹~’하고 나에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주인의 마음과 달리 남이에겐 제 이름 따위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중요한 건 반려동물 이름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남자친구와 관련한 걸 붙이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초보 집사의 참고 영상>
고양이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 법 / 냥신TV
https://www.youtube.com/watch?v=Qfc6dWGBjrk
고양이 이름은 2자 이내로, 이름을 부를 때마다 특정한 보상을 주면 천재 고양이가 된 것처럼 알아듣는다고 한다. 남이도 간식 줄 때만 유난히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데, 아무래도 그 이유였던 듯하다. 역시 식탐이 지능을 이기는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