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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우주 Nov 06. 2024

알을 깨고, 날아보자~ 카페 산으로!

[단양]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는 자를 향한 응원

인생에서는 쉽게 얻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스물네 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지독하게 쓴 경험을 했다. 자존감이 무너져 내가 마치 벼랑 끝으로 내리꽂아진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나의 추락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모른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벗어나면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기대했었다. 그래서 6개월의 인턴 생활을 마치면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월급을 유럽에서 다 써버리기로 각오했다. 제자리로 돌아와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여야지만 진정한 새 출발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홀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디라도 좋으니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해 보는 것이었다.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까지 이어지는 경로로 여행루트를 짰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세계지도를 펼쳐 나의 여행 루트를 점으로 표시하고, 그 점을 하나씩 이어보니 숫자 7 모양이 그려졌다. 여행에서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는 좋은 징조임에 기대감은 커졌다. 서유럽부터 동유럽 6개국 10개 도시를 탐험을 시작했다. 그 당시 유로 환율이 좋아서 한화를 유로로 환전하기에 유리함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물가가 높은 나라 '스위스'도 경유해야 했기 때문에, 한화 400만 원으로 유럽에서 한 달을 여행하기 위해서 예산이 빠듯했다.


적정한 예산으로 스카이다이빙을 시도하기 적합한 나라는 '체코'라고 결론을 내렸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 도착한 뒤, 현지 여행업체를 통해 바로 다음 날의 날짜로 '프라하 스카이워커스(PRAGUE-SKYWALKERS)' 스카이다이빙프로그램을 예약했다. 미팅포인트는 틴 성모 마리아 교회와 프라하 천문 시계가 있는 '구시가 광장' 뒤편의 작은 사거리였다. 당일 오전 9시, 드로우하 6길에 서 있는데, 주황색 낙하산을 메고 있는 졸라맨 그림이 붙어 있는 흰색 승합차가 다가왔다. 나와 일행 8명이 버스에 올라탔다. 도착한 차량의 브랜드가 무려 '벤츠'였다. 여행업체가 운영하는 스카이다이빙 방식이나 안전도에 대한 신뢰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팅포인트에서 외곽으로 30분가량을 달려온 끝에, 푸릇한 산으로 둘러싸인 공터에 도착했다. 경비행기 3~4대가 이륙과 착륙을 동시에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크기였다. 전문 스카이다이빙 장비를 착용한 외국인 가이드가 나와 우리에게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의 자세 잡는 방법 등 간단한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가이드는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한 바닥 가득 영어로 적혀 있었는데,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자신에게 심장 관련 질환이 없고 여행 중 심장마비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본인이 이를 인지하고 있고 업체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동의 각서였다.


덧붙여서, 그는 각서에 사인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여기서 포기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순간! 내가 부모님에게 오늘 체코에서 무엇을 한다고 얘기했었나 기억을 더듬었다. 딸 혼자 떠난 유럽 여행에 노심초사하고 있을 부모님은 보나마나 "하지 마라"고 할 것이 뻔했다. 스카이다이빙에 '스' 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인생 최고로 심박수가 높아진 순간이었다. 가슴이 쿵쾅대고, 입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이십 대를 돌아보면서 나의 능력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서 무작정 달려들어  된통 깨졌던 지난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던 것 같다. 모든 일의 '처음'은 원래가 어려운 것이다. 나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동의서의 서명란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전문 다이버 장비라고 하기엔 다소 초라했다. 내 몸보다 바지통이 여유로운 국방색 비행슈트와 고글, 단 두 가지 장비가 전부였다. 주황색 경비행기가 하나둘씩 이륙하는 것을 보면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동안 나는 잘 묶여 있는 머리를 풀어서 다시 묶는 행동을 반복했다. 자꾸 소변이 마려운 것 같아서 화장실도 여러 번 갔다. 내 차례가 다가오기 직전, 진짜 마지막으로 세면대에서 손을 닦으며 거울을 보았다. 하얀 얼굴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 나는 커져가는 걱정과 불안을 스스로 잠재우려는 듯이, 두 손에 물을 묻혀서 옆으로 삐져나오는 머리카락을 바짝 붙이기 위해 이마를 매만졌다.


드디어 나와 일행 한 명의 이름이 불렸다. 우리는 조종사 1명과 전문 다이버 2명과 함께 주황색 경비행기에 올라탔다. 5인이 탑승하고 경비행기 머리 앞에 달린 프로펠러가 탈탈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돌아갔다. 확실히 경비행기라서 그런지 대형 여객기보다 상공으로 날아 올라가는 속도가 빨랐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이 예뻤지만, 그런 아름다움에 감탄할 새가 없었다.


'미친 짓이다. 이걸 대체 왜 했지? 지금 와서 못한다고 할 순 없나?' 마음의 소리가 어찌나 시끄럽던지! 거기에다가 프로펠러 소리까지 더해져서 가이드가 내게 하는 말소리가 이따금씩 묻혀버리곤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낙하 이후에 멀쩡한 신체와 정신으로 지상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까 배웠던 자세를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Are you nervous?(긴장돼요?)"

"Yes! It's my first time.(네! 처음이라서요.)"

"You can do it. Trust me.(할 수 있을 거예요. 날 믿어요.)"

"Pardon? I can't hear your voice.(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Lets' go! Our turn.(갑시다. 우리 차례예요.)"


체코 프라하에서 경비행기에 탄 일행의 스카이다이빙 직전 (좌), 뒤로 돌아 봉을 붙자고 내리기 싫어하는 나(우)


상공 4,000M에 도달했는지 경비행기 문이 열렸다. 나는 나보다 덩치가 한참은 큰 외국인 다이버의 가슴 앞에 등을 대고 같은 방향을 향해 앉아 있었다. 우리 둘은 하나의 하네스에 연결되어 낙하산을 펼치는 탠덤 점프(Tandem Jump)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문이 열리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경비행기 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뒤에서 다이버가 나를 조종하는 힘이 엄청났다. 저 멀리 구름 밑에 구름이 또 보이고, 구름층으로 뿌옇지만 저 멀리 대지가 보였다.


다이버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Three. Two. One." 그의 카운트에 맞춰 나는 몸의 자세를 바꾸며 낙하 준비를 시작했다. 엄청난 중력과 바람 저항을 동시에 받기 때문에, 머리와 다리를 뒤로 꺾어 개구리 또는 바나나를 닮은 사물 모양으로 자세를 취해야 한다. "Jump!" 드디어 뛰어내렸다. 비행기에서 엉덩이가 떨어지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를 탈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게 될 줄 알았는데, 내 목소리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압도되어 버렸다.


엄청난 공기가 내 입 안으로 훅 하고 들어왔다. 하늘로 치올라간 볼살은 기압 때문에 좌우로 주체 없이 떨렸다. 눈을 감고 싶어도 너무 놀란 나머지 감기지 않았다. 찔끔 흘렸던 눈물도 어느새 다 마르고 없었다. 10초? 20초? 한참을 떨어지고 있는데 다이버는 낙하산을 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빙글빙글 하늘을 돌다 보니 옆에 먼저 낙하했던 일행이 낙하산을 펼쳐 다시 더 높은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나와 동행한 다이버가 내 얼굴 앞에다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내가 수신호를 알아차리자 그제야 '펑'하고 낙하산이 펼쳐졌다.


드디어 자유 낙하 다이빙에서 패러글라이딩 모드로 전환되었다. 그제야 완만한 비행 곡선이 만들어졌고, 나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내 인생 느낄 수 있는 아드레날린의 최대치를 경신하고 난 뒤여서인지 정신이 몽롱하고 졸린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감정은 명확하게 떠올랐다. 높은 하늘에서 먼 땅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아주 작고 사소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유명한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고, 멀리서 보면 비극인 것 같았다. 기쁨과 슬픔이 서로 뒤섞이는 게 인생이라면…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차올랐다.


단양 '카페 산(SAAN)'에 나와서 보이는 풍경(좌), 알록달록한 산악용품 판매 진열장(중), 카페 산 외관과 정문 입구(우)


왜 인생은 쉽지 않을까? 입시, 취업, 연애, 결혼, 출산. 특정한 시기여서 혹은 사춘기의 나이여서가 아니라 인생은 그저 허들의 연속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저질렀던 이십 대 때의 무모한 스카이다이빙 경험을 떠올리며 힘을 내본다. 그리고 국내 여행지에서도 프라하에서의 좋은 기억을 대체해 줄 만한 곳을 찾아냈다.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 자신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 찰 때,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마다 충청북도의 '단양'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굽이굽이 단양강 물줄기를 따라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카페 산(SANN)'이 있다.


이곳에 가려면 버스터미널이나 호텔 숙소와도 거리가 있어 차로 20~30분 정도 되는 거리를 산골짜기로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S자로 이어지는 단양강 물줄기로 봤을 때 허리 쪽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심지어 대형 SUV로도 엄청난 엔진의 힘을 써야지만 올라갈 수 있는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찾아가기 쉬운 곳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까지 3번이나 이곳을 방문했다. 처음은 나 혼자, 두 번째는 남편이랑, 세 번째는 엄마랑 함께했다. 이곳은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할 수 있는 곳이다.


우연하게도 프라하와 단양의 두 장소에서는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곳을 대표하는 색상이 '주황색'이라는 점이다. 스카이다이빙에 성공하고 나서부터 주황색은 정열과 희망, 자신감과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않고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나, 패러글라이딩을 이미 하고 내려온 사람이나, 이제 막 비상을 준비하는 사람까지도 첫 도전자에 대하여 응원의 함성과 박수를 보내준다. 저마다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마음은 하나로 통하는 기분이다. ‘우리는 잘 해낼 거라고!‘


지금까지 도전했던 일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선택은 두 가지였다. 깔끔하게 포기하거나, 다시 도전하거나! 포기가 되었든지, 도전이 되었든지 처음 선택은 어렵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선택은 점점 더 쉬워진다. 그래서 첫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처음과 같이 앞으로도 ‘도전’을 선택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좋은 여행지를 요청받는다면, ‘단양'에 가보라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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