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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May 05. 2019

어느 고등어의 고백 2 - 그 녀석에게


 이렇게 허무하게 어생을 마감하게 된 건 모두 다 그 정신 나간 고등어 때문입니다. 고등어 주제에 아름다움이니, 신비함이니 떠들어 대며 온 바다를 들쑤시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요. 제가 조금 더 영민했더라면 그때 알아차렸을 텐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후회가 됩니다.     


 나는 처음부터 아름다움 같은 건 관심도 없었어요. 그저 플랑크톤이나 배부르게 먹다가, 가끔 운이 좋으면 오징어도 먹고, 여기저기 산호초나 들쑤시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 자리 잡고 며칠 지내고, 그러다 날씨가 따듯해지면 슬슬 북쪽으로 올라가 알 낳고 살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한 어생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던 그 녀석이 나타난 겁니다. 태평양을 돌아 대서양을 거쳐 북극해 근처 심해까지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본인 말로는 여행이라나요.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던 녀석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넋이 나가 있었으니까요. 허공을 향한 초점 없는 눈. 뭍바람에 한참 동안 말린 동태 눈깔이었죠. 근데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글쎄 그놈이 틈만 나면 젊은 고등어들을 선동하지 뭡니까. 바다는 넓다느니, 어생은 짧다느니, 상어로부터 자유를 찾아야 한다느니 하면서요. 물론 나도 궁금하긴 했습니다. 정말 거기에 다른 세상이 있을까 하고. 하지만 모두가 자유를 찾아 떠난다면, 산호초는 누가 지키고, 황새치한테 새끼 고등어들을 어떻게 지키냔 말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큰 생선 외에도 인간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잡아가는 판국인걸요. 신선하게 처먹겠다고 아직 죽지도 않은 우리 뱃대지를 갈라서 생으로 처먹지를 않나, 매워 죽겠는데 고춧물에 쪼리지를 않나. 얼마 전에는 고래보다 큰 배가 와서 아주 친구들을 싹쓸이해 갔어요. 오메가 쓰린지 지랄인지 추출한다고 아주 싹을 말리더군요. 뭐라더라. 니하오? 셰셰? 아무튼 그 놈들은 진짜 무서운 인간들이에요.

 어쨌든 다른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결국 마음을 접었죠. 스쳐지나가는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모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을 품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그 날, 평소처럼 해안을 여행하던 놈이 결국 낚시꾼이 던진 미끼를 먹고 뭍으로 빨려 올라간 날, 나는 내 생각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녀석은 뾰족한 바늘에 아가미가 뚫린 채 몸통이 휘어져라 발버둥치고 있더군요. 그 모습은 너무나 처참해서 차마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도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산 고등어는 살아야 하기에, 나는 서둘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건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의 이면에 존재하는 책임을 얕잡아 본 업보요. 서둘러 돌아온 나는 이제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남은 어생 산호초 인테리어나 하면서 편안하게 노후를 맞이하려고 했습니다. 가족이나 돌보면서 살려고 했죠.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새끼가 기적처럼 다시 나타난 겁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예요. 녀석은 분명 바늘에 찔려서 뭍으로 빨려 올라갔거든요. 뭍으로 올라간 물고기는 대부분 살아 돌아올 수 없어요. 게다가 우리 고등어들은 성격이 급해서 대부분 1분 안에 뒤진단 말입니다. 근데 그 새끼는 그러고도 안 뒤졌다구요!!    


 돌아온 녀석은 전보다 몇 배는 더 뒤집힌 눈깔로 멍 때리기 일수였어요. 그리고는 아름다움, 아름다움 하고 중얼거렸죠. 맑고, 아름다운 눈과, 사랑이 가득한 표정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미친 듯이 웅얼거렸습니다. 전보다 몇 배는 더 흥분해 있었죠. 당연히 젊은 고등어들은 난리가 났어요. 뭍에서 살아 돌아온 그의 모든 걸 맹신했죠. 그래서 결국 이 사단이 난 겁니다. 그 녀석은 어린 전갱이까지 꼬드겨 기어이 다시 낚시꾼이 던진 새우를 처먹었어요. 나는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고등어가 별 힘이 있나요? 미끌거리기만 하지. 그 새끼는 다시 낚싯줄에 꼬여 빨려 올라갔고, 따라나섰던 옆집 고등어도, 뒷집 쥐노래미도, 앞집 볼락도, 전부 다 덩달아 빨려 올라갔어요.

 아, 저는 어쩌다 잡혔냐구요? 사실 저는 그냥 녀석들을 말리려고 따라간 건데, 그 와중에 본능적으로 새우를 덥석 물고 말았어요. 너무 고소해 보여서 그만. 괜히 사람들이 어두라고 하는 게 아닌가 봐요. 헤헤.


 아직 할 말이 많은데 벌써 의식이 희미해지네요. 지금쯤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지글지글 익어가거나, 노릇노릇 구워지거나, 바삭바삭 튀겨지고 있겠죠? 그것도 다른 세상이라면 다른 세상일까요? 혹시라도 나중에 인간의 변이 되어 바다로 다시 흘러오게 된다면 꼭 묻고 싶어요. 후회하지는 않냐고. 정말 행복했냐고.

 앗, 따가워. 인간들이 제 몸에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네요. 잠깐만! 눈에는 뿌리지 마. 머리 좀 조심히 토막 내. 이런 젠장. 아무래도 이제 정말 죽어야 할 시간인가 봅니다. 오래오래 살고 싶었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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