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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May 29. 2019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

 B의 장례식은 조촐하게 진행됐다. 보육원 원장님, 함께 자란 친구와 어린 동생들, 몇 명의 회사 동료들, 그리고 그 척박한 환경에서 남몰래 사랑을 키운, 이제는 젊은 미망인이 된 그의 아내가 전부였다.

 조문객들은 넋두리처럼, 그렇게 쉽게 갈 거였으면, 왜 그렇게 열심히 산 거냐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온 거냐고 말했다. 미망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B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친구들이 소리 내어 우는 동안에도, 회사 동료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릴 때도,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혹은 고행을 수행하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상복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B는 갓난아이 때 경찰서 앞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매서운 강풍이 부는 겨울이었다. 경찰서로 걸려온 다급한 공중전화 목소리는 그곳이 아이가 있으니 꼭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미에게 버림받아 경찰서에 옮겨진 그는 꼬박 하루 동안 ‘보관’되다가 내가 있는 보육원으로 인도되었고, 그곳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더 이상 합법적으로 보육원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을 때까지 보육원에서 살았다.


 B는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는 또래 보육원 친구들이 그러는 것처럼, 삶을 회의적으로 단정 짓거나, 부정하는 대신,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방향을 택했다. 방과 후에 몇 시간씩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했고, 일거리가 부족하면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일반인이 받는 급여의 반 밖에 받지 못했지만, 그는 불평 한마디 하는 적이 없었다. 돈이 모이면 일부는 보육원에 기증했고, 일부는 아이들을 위한 생일 선물을 샀다. 우리같은 사람들도 하루쯤은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는 날이 있어야 한다며,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축하받는 날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새하얀 생크림 케잌을 들고 기뻐하는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것은 버림받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위로이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생에 대한 애정이었다.


 B는 성인이 되자 곧장 공장에 취업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의 손톱은 늘 검은색 기름기가 베어 있었다. 코에는 항상 시커먼 이물질이 나왔다. 얼굴의 주름, 그러니까 이마와 눈가에도 거무스름한 빛이 감돌았다. 그는 그곳에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모든 잔업을 채우고, 모든 근무를 자처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작은 빌라에 전셋집을 얻었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는 자신이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검은 때가 낀 얼굴로, 새하얀 미소를 보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평범하고 행복했던 그는 어느 날 공장 컨베이너 벨트에 끼었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B의 영정사진 앞에는, 보육원의 어린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그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장난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놀고 있다. 젊은 미망인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표정 없이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녀는 그가 남긴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리라. 사람들의 말처럼, B의 삶은, 그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태어난 것조차, 살아온 것조차 전부 무의미한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가 한 명 한 명에게 부여한 의미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영원처럼 새겨질 것이다. 그가 남긴 삶에 대한 애정은 누군가에 의해 다시 계승될 것이다. 그는 사라졌으나, 그가 남긴  흔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미망인은 검은 상복을 여미었다.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흰 쌀밥을 수저에 가득 담아 입 안으로 욱여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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