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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n 12. 2019

하늘이시여!

 처음부터 나이트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단 하루만이라도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6년 동안, 성진의 몸과 마음은 너무나 피폐해져 있었다. 집에서 보내주는 돈은 끊긴지 오래였고, 생활비는 이미 바닥이 났다. 친구들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래도 성진은 꿋꿋하게 버텨왔다. 하지만 오늘같이 합격자 발표가 난 날은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말 갈 거야? 입장료도 있을 거 아니야. 너 돈 얼마 있는데?” 같은 고시원에 사는 상민이 말했다. 그는 성진의 처지를 이해하는 유일한 말동무였다.

“이만원. 너는?” 성진이 대답했다.

“나는 만구천원. 기본 테이블 비가 3만 5천원이라니까 가능은 하겠지만... 근데 어떻게 가? 택시비는?”

“자전거 타고 가면 되지. 아까 전단지 보니까 매일 자정에 하늘이 2번 열리면서 풍선이 쏟아지는데, 거기에 선물도 잔뜩 들어있대. 순금 한 돈, 현금 100만원, 양주 1병, 맥주 무제한...”

 물론 성진도 선물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 건 대부분 호객행위를 위한 업주의 술수였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고 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합격증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성진과 상민은 전 재산을 걸어 하루를 즐기기로 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화려한 문을 열자 다른 세상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백열등을 벗어나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빛을 느꼈다. 육감적인 차림의 아름다운 여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남성이 아직 살아있음을 느꼈다. 스테이지로 나가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며 그들의 심장이 아직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 스테이지 나가자. 나가서 신나게 춤추자!”

“그래. 신나게 추자! 우리도 신나게 살아보자!”    


 성진과 상민은 신 내린 사람처럼 춤을 추었다. 중앙 스테이지에서 굿판을 벌이듯 팔딱거리기도 하고, 리드미컬한 음악에 맞춰 여성과의 접촉을 시도하기도 했다. 매력적인 여성과 함께 테이블에 가서 맥주라도 마시고 싶었지만 이 값비싼 음료를 불확실한 여성에게 나눠 주는 건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그저 행복한 상상을 하며 그들은 맥주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껴 마시며 리듬을 탔다.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레트로풍 노래가 추억을 달콤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행복했던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나이트 DJ의 구령에 맞춰 충실하게 함성을 질렀다. DJ가 그들의 흥을 이끌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지금부터 오늘 밤 메인 행사! 돔 오픈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하늘을 바라봐 주십시오! 하늘에서 내려오는 풍선에 담신 선물은, 오늘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돔 나이트! 뚜껑을 오픈합니다!”    


 메인이벤트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갔다. 사이렌이 울리고 레이저가 하늘을 향해 현란한 빛을 쏘아댔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마치 구원을 갈구하는 신도들 같았다. 이윽고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뚜껑이 서서히 열리고, 알 수 없는 곳에서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풍선이 민들레 꽃잎처럼 춤을 추듯 나풀나풀 떨어졌다. 일찌감치 포기한 사람도 있었고, 필사적으로 풍선을 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풍선은 어떤 힘에 이끌리는 듯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 조금씩 성진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 안착하려는 것 같았다. 성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사력을 다한 점프로 풍선을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풍선을 뺏으려 좀비처럼 달려들었다. 성진은 필사적으로 풍선을 가슴 깊숙이 안고, 어금니를 이용해 날렵하게 그것을 터트렸다.     


빵!     


 밀폐된 공간 안에 풍선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성진과 상민은 잠시 눈이 휘둥그레 해져 서로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금 백만 원이 든 수표였다. 그 순간 그들은 나이트 모든 손님이 놀랄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우리 양주 마시자! 이 돈이면 충분히 먹고도 남을 거야!"


 상민은 그 돈이면 컵밥 300그릇은 거뜬히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좀처럼 오지 않는 이 기적같은 행운을 생활에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큼은 남들처럼 즐기고 싶었다.

“그래! 마시자! 우리도 양주도 한번 먹어보고! 음악도 듣고! 춤도 추고! 여기 양주 주세요!”   

 

 흥겨운 일렉트로닉 반주에 맞춰 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몽롱함이 그들을 한껏 채웠다. 그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먹었다. 부킹 온 여성들에게 맥주도 잔뜩 따라 주었다. 그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셨다. 취하도록 마셨다. 세상의 모든 불안을 씻겨내듯이 마셨다. 취기가 한껏 오른 성진이 맥주를 더 시키기 위해 웨이터를 호출했다.  

“맥주! 맥주 더 주세요! 우리 오늘은 배 터지게 먹을 겁니다! 과일도 먹고, 술도 먹고!”

“네. 손님." 웨이터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그런데 중간 정산을 한번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중간 정산이요? 저희 돈 많아요! 얼마 주면 돼요?” 성진이 호기롭게 말했다.

“백오십만 원입니다. 손님.”

“배, 백오십만 원이요?”     


 성진과 상민은 서로의 눈빛만 마주 볼 뿐 아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동안 퍼부은 술이 싹 깬 것 같았다. 머릿속에 여러 갈래의 길이 스쳐갔다. 도망가야 하나? 무릎 꿇어야 하나? 주방에서 설거지라도 해야 하나? 떡대들한테 죽도록 맞는 건 아닐까? 급작스러운 체력 소모와 알코올의 흡수로 인해 몸이 더욱 무거워지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껍데기만 앙상하게 남은 과일과 빈 술잔만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화려한 빛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들은 흥겨워 보이지 않았다. 퀴퀴한 담배 연기가 폐 속으로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그때 나이트 DJ가 다시 한번 마이크를 잡았다.    

“자, 오늘의 마지막 이벤트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돔이, 다시 한번 열립니다!”    


 그 순간 성진의 눈빛이 되살아났다. 그는 균형을 잡기 위해 양말을 벗어던졌다. 비틀거리는 몸을 세워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지붕을 뚫고 날아갈 것 같은 자세로 하늘을 향해 힘껏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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