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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n 23. 2019

사람을 찾습니다

 나는 라디오 DJ다. 전국에서 도착하는 수없이 많은 사연 중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를 골라 소개하고, 간단한 조언을 덧붙이고, 돈을 받는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점쟁이나 해결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 내게 전화를 건 사연의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소개팅 어플을 통해서였어요. 토요일 새벽 1시였죠. 오래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여러모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어요. 이 시간에 딱히 연락할 친구도, 만날 사람도 없어서 한번 들어가 봤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하룻밤 보낼 상대를 찾거나, 바람 쐴 친구를 찾거나, 혹은 저처럼 그냥 외로워서 들어온 사람도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럼 그녀도, 그러니까 상대방도 그 시간에 접속해 있던 거군요.”

“아마 그 친구도 저처럼 외로웠나 봐요. 남자친구와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사랑이란 무엇이고, 상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많은 부분이 통했어요. 다른 사람 앞에서 할 수 없었던 진솔한 이야기도 어쩐지 술술 하게 됐어요."

“좋은 친구를 만나셨네요. 만나서 차라도 한 잔 하지 그러셨어요?”

“네 정말 그러려고 했어요.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혹시 내일 시간 괜찮냐고,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물었죠. 그녀도 흔쾌히 수락했어요. 마침 내일이 일요일이니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시간과 장소를 잡았죠. 그리고 제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두었어요.”

“그래서 만나게 됐나요?”      


 나는 최대한 밝은 말투로 묻는다. 물론 그들이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사연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아뇨. 약속장소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오지 않았어요. 다급한 마음에 어플에도 들어가 보고, 채팅 기록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죠. 회원정보까지 모두 사라져 있더군요. 마치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요.”

“그럼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는 건가요?”

“네. 저는 심지어 그 사람 이름도 아직 몰라요.”

“라디오를 통해 보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예전에 여자 친구랑 자주 듣던 프로거든요. 문득 사연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군요. 그럼 방송을 통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저, 그때 그 어플에서 만난 남잔데요. 만약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꼭 연락주세요. 꼭이요!”    


 나는 얼마 전 한 여성으로부터 온 익숙한 사연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린다. 어플을 통해 어떤 남자와 연결된 이야기. 새벽 늦은 시간까지 서로 공감하고 상처를 보듬어준 이야기. 그가 남긴 익숙한 이름과 연락처에 놀랐던 이야기. 하지만 그녀도 당신만큼 외로웠다고, 새벽에 잠 못 들어 뒤척이고 있었다고, 그녀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애써 말하지 않는다. 그건 당신이 찾아야 할 몫이니까. 나는 다만, 조금은 건조한 목소리로, 잘 찾아보면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인연이라면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고 응원한다. 적막한 스튜디오 안으로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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