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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l 08. 2019

어느 날, 고택을 나서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낡고 어두컴컴한 저녁이었다. 나는 유명 고택을 개조해서 만든 고급 식당에 초대받아, 아니, 정확하게는 소환되어 앉아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었다. 그곳은 참석자들의 사회적 위치를 반영하듯 완벽한 고풍스러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유영하듯 뻗은 곡선의 건축물과, 동양화가 그려진 백색 옹기에 담긴 술, 선홍빛 한복을 걸친 여인이 들려주는 가야금 음색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살렸고, 거기에 어린 송아지의 핏기 어린 생살과, 대지의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특용작물의 뿌리, 망망대해를 건너온 등푸른 생명체가 각종 현대적 조리기술을 만나 맛깔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부유한 환경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환경,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와 맞지 않는 것이었고, 이 상황 또한, 내 소유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극찬하는 음식 맛과, 수려한 고택의 경치와, 열변을 토하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예술 문제는 나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었고, 나는 그 순간에도 당장 치러야 할 전세 값, 노모의 병원비, 자녀 교육문제와 불투명한 직장생활 같은 고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경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 애당초 다른 세계의 틈에 끼어있다는 현실 자체에 괴리감을 느꼈다. 나는 그 형형색색의 음식에 젓가락질 한번 하지 못하고, 안락한 의자에 등 한번 기대지 못한 채 그저 풍경처럼 앉아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굼벵이처럼 흐르는 동안, 대화의 주제는 산불처럼 사업, 자녀교육, 교회, 골프 등으로 옮겨갔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서 기계적으로 그것들을 들으며, 때때로 그들과 눈빛이 마주칠 때 맞장구를 치는 지루한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눈꺼풀은 느슨하게 떠밀리고 있었다.


 권태와 한창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나를 깨운 건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어떤 시선 때문이었다. 그것은 술과 음식을 와구와구 섭취하는 높으신 분들도 아니었고, 곁에서 비위를 맞추는 고운 한복의 종업원도, 환하게 웃으며 머릿속으로 오늘의 매출을 계산하는 주인장의 것도 아니었다. 나와 마주한 벽, 그러니까 목재의 미세한 균열 속에 갈라진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미지의 공간에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것은 분명 살아 움직이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타래처럼 길고 가는 것은 마치 염탐이라도 하듯, 벽 안에 숨겨놓은 물건을 꺼내듯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숨죽이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결국 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한 커다란 풍채와 뿔처럼 솟아난 더듬이, 맥주병보다 진한 갈색 빛깔이 소름 끼치도록 적나라한 그것은 이 고풍스러운 고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바퀴벌레였다. 나는 순식간에 몸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분위기상 바퀴벌레의 존재 여부를 알릴 수는 없었다. 주인장에게 달려갈 수도 없었다.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모든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순간에도 그것은 노골적으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어둠의 공간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더듬이를 이리저리 흔들며 먹이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순식간에 주방으로, 홀로, 그리고 음식으로 향했다. 바퀴벌레는 분명 온 집안을 휩쓸며 자신의 자취를 남겼을 것이었다. 음식을 먼저 맛보았을 수도 있고, 전통 옹기속에 자신의 알을 까놓았을 수도 있었다. 한 마리뿐일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수십, 아니 수백 마리가 이 고택 구석구석에서, 발밑에서, 천장에서, 음식물 속에서, 어쩌면 이미 식도를 타고 넘어가 꿈틀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술에 취한 이들은 와그작와그작 안주를 씹어대며 멍청하게 턱 근육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온몸에 닭살이 뻗었다.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 상황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의자를 완벽하게 차지하지 못하고 귀퉁이에 걸쳐 앉아 있었으며, 음식을 손에 대지지 못했음은 물론,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 바퀴벌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자 고풍스러운 풍경과, 화려한 불빛과, 곱디 고운 한복과, 나를 불행하게 만들던 모든 감정이 안정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퀴벌레의 역동적인 꿈틀거림은 이윽고 기쁨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것은 좋은 음식과 더러운 음식,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계의 붕괴이자, 이 무기력하고 허무한 삶에 대한 하찮은 위로였다.

 나는 그 커다란 생명체의 동선을 오랫동안 눈으로 쫒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 작은 세계의 여행을 마치고 유유히 귀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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