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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126 5cycle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26 5cycleⅡ






 ‘무엇을 치료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는 이처럼 중요한 문제이나 일반인에게는 무척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나는 앞서 나온 내용들을 한 마디로 ‘불편하면 병이고, 치료의 대상이다.’라 요약하겠다. 치료는 바로 ‘불편함의 제거’이고. 그래서 나는 보건소에 와서 자신의 증상을 머뭇머뭇 풀어놓으면서 치료가 필요한 건지 묻는 환자에게 항상 이렇게 물었다.


 “불편해요? 아니면 그냥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때 불편하다는 답이 돌아오면 ‘온도 재서 정상이라고 나와도 손발이 시리다고 느껴지면 병이고, 내시경에서 별 이상 없다고 나와도 속이 더부룩해서 불편하면 병이에요. 침 놓아드릴게요.’ 하며 치료해드렸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의문이 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불편의 범주로 볼 것인가?’ 크게 두 가지를 말해 볼 수 있다.


 ① 자체가 주는 불편
 ② 2차적 영향까지 감안한 불편


 이빨의 배열이 가지런하지 못한 부정교합이 있다고 해보자. 뒤틀린 치열로 인해 발음이 샌다, 더 넓게는 부정교합이 부끄러워 이빨을 드러내고 웃기가 힘들다 등의 불편은 ①번으로 볼 수 있다. ②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부정교합을 치료하기 위해 교정기를 입에 설치했다고 하자. 그러면 씹을 때마다 통증이 발생하고, 음식이 자주 끼어 충치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교정 치료가 끝날 때까지 주기적으로 시간을 내 치과에 방문해야 한다. 이 때의 불편은 ②번이다. 나는 ②번 또한 불편함을 주는 요소이며 결국 해결되어야할 문제이므로 ②의 해소 또한 치료 경과에 있어 중요한 척도라 본다. 삶의 질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이발이 있었던 9/7, 되짚어 보면 6/6, 범위를 넓게 잡으면 7/13까지. 모두 나의 치료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던 날이었다.



 6월 6일,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수술하고 90일 째 되는 날이었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사실 이런 날이 오기는 할까 생각한 적이 더 많았다. 병원에서 꿈꿔왔던 일상생활, 그 당시 내가 바랐던 것에는 운전이 빠져있었다. 너무나 과분한 욕심을 부리다가는 벌 받을 것만 같아서였다. 점점 몸이 좋아짐에 따라 욕심도 같이 커나가면서 운전도 벼르고 되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모든 게 꿈만 같다는 진부한 표현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자리에 앉았다. 너무 오래 세워두면 차가 상한다며 간간히 어머니께서 운전하시느라, 자리가 비좁았다. 억지로 몸을 구겨놓고 자리 간격을 조정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사이드 미러, 룸 미러 각도를 조정한 뒤 기어를 P에서 D로 옮겼다. 떨리는 마음으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었다. 조심스레 차를 빼서 주차장 한 바퀴를 돌았다. 적당한 시점에서 핸들을 돌리고, 적당한 힘으로 브레이크와 엑셀은 밟고 있는지 확인했다. 누가 쫄보 아니랄까봐 겁에 잔뜩 질려 핸들도, 엑셀도 살살 돌리고 밟던 내가 적당하다 싶은 지점에 도달하기 까지는 3바퀴 정도가 소요되었다.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쯤 된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터졌었다. 게다가 집에서 근무지까지 신호등이 하나 밖에 없고, 차는 별로 없는데 또 도로는 잘 닦인 시골길로 출퇴근하느라 별로 축적된 운전 실력도 없는 상태였다. 평행주차는 물론 전진주차도 할 일이 없어 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운전을 다시 배워야 하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주차장 밖으로 나갈까 고민하다 관두었다. 감각이 크게 무뎌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했다. 이미 긴장을 너무 하여 옷은 땀범벅이었다. 그 후로 며칠 적응 기간을 더 거친 후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성당은 2.5km, 도보 2~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었다. 걸어서 가기에 나쁘지 않은 거리였다. 걷다보면 아파트 화단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볼 수 있고, 조금만 돌아가면 향기가 가득한 장미공원을 지날 수 있어 때로는 미사 마치고 돌아올 때 잠시 옆길로 새기도 했다. 그러나 큰 흠이 하나 있었으니, 지하차도를 두 번이나 지나야했다. 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는 그곳은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공기도 탁하고 약간 휘어진 구조와 으슥한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니기를 꺼리는 길이었다. 언제까지고 걸어서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차가 필요했다.


 집에 앉아 별 일 없이 지낸다는 것. 누군가에겐 하고 싶어도 못 하는 호강이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히 벗어나고 싶은 수렁이다. 늘 마주하는 가족, 골프연습장 사람들 말고는 교류가 없는 삶. 심심하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그러나 반쪽만 남은 머리가 영 신경 쓰인다. 챙모자로는 날아간 뒷머리를 가릴 수 없다. 결국 비니 밖에 쓸 수 없는데, 그거 쓰고 대중교통을 이동하기엔 주위의 시선이 영 신경 쓰인다. 게다가 애초에 내가 보고자 하는 사람은 대구에 잘 없고 고령에 있다. 역시 차가 필요했다. 이런 나에게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있었다. 나의 행동력에 걸려있던 제약이 사라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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