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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133 6cycleⅠ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33 6cycleⅠ






 6cycle도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약 먹는 날까지 평소의 루틴을 지켰다. 하루일과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10시가 되면 목욕재계를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침을 놓았다. 유침하는 20분 간 묵주기도를 드렸다. 침을 빼고 나면 EFT를 실시했다. 시각화를 병행했다. ‘면역세포 군대가 아무리 뇌 곳곳을 수색하지만 종양 빨치산들은 보이지 않는다. 승리 선언을 한다. 그간의 고생에 눈물 흘리며 기뻐한다.’ 이런 장면을 수없이 떠올렸다.


 마지막 약 봉지를 꺼냈다. 흰 알루미늄 포장지에 담긴 Temodal 250mg 캡슐 1개와 100mg 캡슐 2개. 차례차례 꺼내서 물과 함께 삼켰다. 평소에는 3개를 동시에 먹었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 하나씩 하나씩 먹고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잠들었고 고생했다. 마지막으로. 아니 마지막이길 바라며.


 화학 요법이 계속될수록 몸의 부담이 누적되어 더 힘들 것이라는 형석이 형의 말대로 그 끝이 쉽지는 않았다. 그날 밤 내가 남긴 메모이다.




저 밑에서 욕지기가 올라온다.

위(胃)? 아니다. 더 깊다.

창자인가? 아니다. 더 깊다.

그보다 더 밑에서, 더 근원에서 올라온다.

나에게 뿌리라는 게 있다면 그 뿌리가 뽑힐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움켜쥐고 뽑아낼 것처럼 괴롭다.


이걸로는 죽지 않을 텐데 죽을 것 같이 아프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갔을 때,

그래서 결국 죽음을 각오해야 했을 때,

겪어야 할 고통이 이런 수준이라면...

아득하다.

그 길을 가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살고 싶다.


생각한다.

만일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목적은 내가 아니라 나의 병이라고.

그가 뽑고자 하는 건 내 병의 뿌리라고.

지금의 고통은 잔디밭에 난 잡초를 뽑다가

얽혀 같이 뽑혀진 잔디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통과의례 중 하나라고.


마지막이다.

지금의 힘듦이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위해 바쳐질 재물이라면

얼마든지 아낌없이 내놓겠다.

기쁘게, 아주 기쁘게.



 점심때가 돼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제 더 이상 밤의 고난은 없어도 된다는 기쁨이나 더 이상의 치료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올 법했는데 전혀 없었다. 4cycle 마지막 날이나 5cycle의 마지막 날과 별 다를 바 없이 그냥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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