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부모님이 보험사에 제출한 서류와 MRI 영상을 받아 오시는 동안 승현이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동완 : 조영증강 영상 상 고음영 부위가 몇몇 점처럼 남아있음. 혈관으로 추정플레어 영상에는 흰 부분이 넓게 남아있음. 뇌부종 추정
승현 : 사진으로 가져다주시오. 너의 말은 거의 우리 부모님이 전달해주시는 수준이네.
동완 : 오늘 당장 CD 들고 갈까요?
승현 : 시간 돼?
동완 : 그럼요. 저야 백수 아닙니까.
승현 : 사진 예전 것부터 다 해달라고 했어?
동완 : 네.
승현 : 그래. 넌 다 알고 있는 건가?
동완 : 무얼요?
승현 : 너의 사진의 변화와 초기 변화과정 등등
동완 : 말해주는 것만 들을 뿐입니다.
승현 : 혹시 병원에서 초기 사진을 너한테 설명을 안했다거나 숨겼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동완 : 초기에는 말 제대로 안하기는 했어요. 대체로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더군요. 맨날 뇌부종이래요. 그게 지금까지 남아있을 리가 없는데. 증상도 없고 말이죠.
승현 : 그럼 나도 두루뭉술하게 해야겠네. 치료의 일관성을 유지해야지.
아버지와 나를 집에 내려다준 어머니는 늦은 출근을 했다. 나도 잠시 쉬었다가 형의 점심시간에 맞추어 고령으로 출발했다. 평소보다 천천히 운전했다. 날뛰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그리고 승현이 형이 들려줄 진실을 조금이라도 늦게 마주하고 싶어서 텅빈 고속도로를 80km/h로 달렸다. 지금 보는 풍경이, 어쩌면 아름다운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일 수 있다 여기며 천천히 돌아돌아 갔다. 분명 좋다는 이야기를 방금 들어놓고 왜 혼자서 종말을 앞둔 사람 마냥 굴고 있는지,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끼며 승현이 형이 근무하는 쌍림보건지소으로 향했다.
승현이 형은 나의 MRI 영상들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더니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다만 사실만 나열할 뿐, 그 말에 담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전망에 대한 예측에는 말을 아꼈다. 답답했다.
그래서 좋다는 거예요? 나쁘다는 거예요?
열심히 청문회를 열어도 끝끝내 답을 피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거였는데 말이다. 계속된 추궁에 형은 ‘지금 살아있음이, 이렇게 멀쩡하게 운전해오며 일상생활 할 수 있다 자체가 기적이며 긍정적인 모습이다. 세부적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감사히 살아라. 이제 관리만 잘하면 된다.’ 대강 이런 말로 진단을 마무리했다. 아침 교수님과의 면담처럼, 나는 형의 마음을 믿기로 했다. 형이 숨기는 게 있다면 그건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모르고 말겠다고.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기 형도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달려왔다. 읍내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동전노래방에 갔다. 그리고 불렀다. 끝나는 날 다시 부르고 싶었던 그 노래. 지금을 위해 준비하고 준비했던 노래. 지난 모임 때 형들과 함께 불렀던 《하나 되어》를.
어려울수록 강해지는 믿음
그래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다시 태어나는 그런 마음으로
우린 해낼 수 있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토록 힘들었던 지난 시련도
우린 하나 되어 이겼어.
2월 29일 진단.
3월 7일 수술.
5월 12일 방사선요법 끝.
11월 1일 화학요법 6cycle 끝.
11월 21일 치료 종료.
이렇게 9달에 걸친 기나긴 치료의 여정이 끝이 났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까지는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았다. 3개월 뒤에 있을 f/u의 결과가 ‘아무 변동 없음.’으로 나와야 비로소 ‘성공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 뒤로도 계속 검사해나가야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겠다.
그리고 그날 이야기 할 것이다.
‘해냈다!’ 라고.
모든 일이 시작된 2월의 마지막 날, ‘지난 1년 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 하며 남 이야기하듯 흘려 넘기듯, 아련히 회상할 수 있기를 살짝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