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랐네 오늘을 그리워할 내일이 있을 줄
대학 3학년 때인가 친한 언니의 성화에 언니가 가입한 요들송 모임에 따라갔다. 신기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라이브로 듣는 요들송은 아름다웠다. 모임 뒷정리를 하면서도 뒤풀이 장소인 막걸릿집으로 걸어가면서도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요들을 불렀다.
"조그만 가방 둘러매고 집을 나서면~~~"
누군가 첫 소절을 시작하면 누군가 화음을 넣었고 누군가 현란한(?) 요들 추임새를 더했다. 살면서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술자리 풍경이었다.
"네 목소리는 요들을 위해 태어난 거야"
나를 잘 키워보겠다며 회원가입을 종용하던 음악부장 오빠는 그렇게 말했다. 신기했다. 살면서 부모님 외 나를 키워보겠다는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음악부장 오빠가 유일하다. 하지만 나를 키워보겠다던 음악부장 오빠의 결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드문드문 모임에 나타나고, 연습이라곤 해 오지 않는 나는 태도에서 이미 낙제였던 것.
하지만 잊을만하면 모임에 나갔다. 요들을 듣는 것이 좋았고, 그걸 부르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곳에서 정 언니를 만났다. 당시 누구나 이름만 말하면 아는 유명 그룹의 보컬이 언니의 오빠라고 모임 아이들이 알려줬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피아노. 언니가 집에서 실어왔다는 피아노였다. 세상에 어느 누가 동아리에 피아노가 필요하다고 자기 집 피아노를 실어 옮겨온다는 발상을 할까.
부잣집 딸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그렇다고 해도 피아노를? 아무나 못 그러지. 그때부터 나는 눈으로 언니를 좇았다.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언니는 아름답고 신기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언니와 어이 친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 연락하는 횟수, 만나는 정도로 가늠한다면 우린 친한 사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힘든 순간 생각나는 한 사람이고, 울고 싶은 순간 술 한잔 하자 할 수 있는 사이고 "있잖아, 이건 비밀인데..." 같은 구차한 단서 붙여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는 걸 보면 가까운 사이가 맞긴 하다.
얼마 전 불쑥 언니가 카톡을 보냈다. 아마 3년 만인 듯.
"보내주고 싶은 동화책이 있어. 주소 좀 알려주라."
아침 설거지 마치고 식탁을 말끔하게 치운 후, 어젯밤 도착한 우편물의 포장을 뜯었다. 하얀 눈 같은 그림책이 나온다. 한 장 한 장 펼쳐 책을 읽으며 '언니 뭐야. 뭐람. 포근하고 따뜻한데 한편으로 울컥하는 이 기분은 뭐야.' 했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칠 때면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이 생각났다. 책에는 책으로 답해야지 싶어 언니에게 보낼 답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마흔이 되면 마흔만큼 생각은 자라고 젊음은 시들거라 믿었다. 오십이 되면 오십만큼 생각은 깊어지고 열정은 덜하겠지 했는데... 40대가 되어보니 알겠다. 생각의 성숙도는 나이와 무관하고 젊음에 대한 열정은 나이와 무관하게 여전한데, 몸과 상황이 따라주질 않으니 자주 속상하고 간간히 짜증이 난다.
요들송 모임을 마치고 의자를 정리할 때 언니가 피아노를 치며 요들을 선창 하던 어느 날의 풍경이 아득하게 가물거린다. 언니가 집에서 실어왔다는 그 피아노는 아직도 동아리실에 그대로 있을까? 제기랄. 그때 더 열심히 배울 걸. 온전하게 부를 수 있는 요들이 딱 한 곡뿐이라 아쉽다. 이제는 40대 후반에 가까울 음악부장 오빠를 찾아내 "여전히 나를 키워볼 생각이 있냐" 물으면 오빠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어디 가는 것도 귀찮고, 물건 사는 재미도 시들하면... 결정적으로 지나간 것들을 자꾸 돌아보고 그리워하면 늙는 거라고 울 할머니 그랬었는데. 진짜로 늙는 건지 아님 빨래며 청소하기 싫어 꾀가 나는 건지 만사 귀찮고 이유 없이 맥 빠지는 12월을 보내는 중이다.
그래도 오늘은 정 언니 선물 덕에 '얼른 해치우고 언니한테 편지 써야지'하며 청소도 하고 빨래도 했다.
유튜브에 <요들 기초> 같은 영상도 찾아봐야지. 내년 12월에는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요들을 12개 만들어야지. 그래 돌아보면 뭐 할 거야. 어차피 지나간 시간. 오늘을 살아야지. 내일도 모레도 말고 오늘을 살아야지.
40대에도 20대처럼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여전히 살아갈 날이 막막하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배 째' 하고 싶어 진다는 걸 왜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아마 오늘을 그리워하고 후회하겠지. 스물엔 가지지 못했던 마흔의 지혜란 건 어쩌면 '별 볼 일 없는 오늘이 미래의 어느 날 미치도록 그리운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때 제대로 배워둘 걸, 아쉽고 후회스럽다. 제일 좋아했던 제일 배우고 싶어 했던 요들을 찾아 듣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 달랜다. 동아리 MT에서 제일 앞에 섰던 선배가 이 노래를 시작하자 줄줄이 따라불렀었지.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흘깃흘깃 신기하게 쳐다보다 함께 흥얼거리기도 박수를 쳐주기도 했던 생각이 난다. 징하게 그리운 날들이다. 미치도록 아쉬운 가버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