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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PD Jul 08. 2015

키덜트 전시회를 둘러 봅시다

더욱 재미있는 키덜트 행사를 위해

왜 우리나라는 볼만한 키덜트 전시가 없을까?



한창 키덜트 관련된 일을 할 때 정말 자주 듣던 말이다.


일본의 '원더 페스티벌'이나 '도쿄 토이쇼', 또는 미국의 '코믹콘 (Comic Con)' 과 같이 서브컬쳐 문화 또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에너지를 내는 이벤트가 사실 상 한국에는 없었다.


물론 매년 열리는 '건프라 엑스포'나 '하비페어'나 간헐적으로 열리는 취미 관련 행사가 있긴 하지만 다루는 범위나 규모에서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조금씩 키덜트를 위한 행사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 포문을 연 것은 동대문 DDP에서 열린 '아트토이 컬쳐'이다


컨텐츠 기반이 아닌 토이 자체의 매력을 무기로 하는 '아트토이'가 홍대의 쿨한 느낌과 힙합 컬처를 가득 품고 급속한 인기를 끌자 2014년에 처음으로 이를 테마로 하는 전시회가 열리게 됐다.

해외의 유명 작가까지 초빙한 이 전시회는 5일 간 4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성황을 이루면서  2015년에도 두번째 행사가 이어서 열릴 수 있게 되었다.

복면의 아티스트가 직접 싸인
우리 모두 아트토이 보러 왔습네다

'아트토이 컬처'의 성공에 이어 2014년 8월에는 최초의 본격적 키덜트 테마 전시회  '키덜트 페어 2014'가 개최됐다


필자는 이 행사의 준비 위원회로 참여하기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처음으로 "키덜트"라는 테마를 잡다 보니 그 정의와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성인용 피규어는 '키덜트 제품' 일까? 피규어도 제작이 가능한 3D 프린터 업체가 포함되는 것이 맞을까? 업체는 어떤 업체를 앞 쪽에 배치하는 것이 좋을까? 등등 키덜트 특유의 감성에 부합하는 전시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논의를 거쳤다.


뭐 간단히 결과적으로 진행된 것을 이야기 하면 전면에는 모두가 혹할 수 있도록 콜렉터의 대부 손원경 토이키노 대표님의 1:1 버스트 스태츄 등을 전시했으며 한켠에는 손쉽게 볼 수 없는 베어브릭 전시, 또 한편에는 건프라 동호회의 창작품 등을 배치했다.


또 다양한 업체들이 참여해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공간도 다수 마련해 놓았다.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배치와 볼거리가 준비된 꽤 괜찮은 전시회 였다고 자평한다. 물론 첫 행사인 만큼 깊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키덜트를 위해 준비한 잔치'의 느낌은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문제는 이 이후에 생겨난 각종 전시회 들이다


"이거 돈이 된다더라" 또는 "일단 간을 보자"라는 생각으로 진행된 전시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전체적인 퀄리티가 급속도로 떨어지게 된다.


전시가 가능한 수준의 인력 또는 업체가 한정된 상황에서 전시회가 많아지다 보니 업체나 단체의 참여율이 떨어지게 되고 주최 측은 이를 키덜트와 전혀 상관 없는 소재로 메꾸기 시작했다.


핸드 메이드 악세서리까지는 어떻게 연관성을 찾더라도 금융, 보험, 헬스 케어는 그야말로 도대체 무슨 행사인가 의심하게 만들 수준의 애미없는 기획이였다.

과하게 지른 뒤 파산 상담을 하라는 것인가요?
원피스가 그 원피스가 아닐텐데....

주최 측의 비전문성도 문제가 되었겠지만 일부 업체는 영악하게 '완구업'이라고 등록하고 보험 상품에 가입하면 장난감을 주는 것입니다...식의 꼼수를 부려 참가권을 따내기도 한단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관객 외면과 질적 저하가 발생한 원인을 나름 분석해본 결과 아래와 같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남는 게 없어요.. (41, 피규어샵 운영)


아는 샵주인분께서 말씀하시길 아주 예전에는 행사에 참가하면 부스값은 충분히 뽑고 넉넉히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온라인 구매의 발달, 해외 직구의 발달로 즉석에서 지르는 자들이 많지 않아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안그래도 먹고 살기 빠듯한데 굳이 물건을 빼서 이러한 행사에 참가하기엔 매력이 없다, 라는 인식이 생기다 보니 샵들이 소극적이 되고 이는 준비 자체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져온다.


결국 수수료나 부스값을 깎아주는 형태로 모셔오게 되는데 이는 주최 측의 이익률을 떨어 뜨려 홍보 등에 소극적이 되는 악순환을 만들어 버린다.




신제품 없는 창고 대방출


사실 이것이 가장 크리티컬한 부분인데, 게임쇼던 토이쇼던 결국 가장 기사가 많이 나가고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신작 공개이다.

뉴욕 토이 페어 역시 새로운 라인업 공개로 큰 이목을 끈다

해외 토이쇼에서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신상, 행사장에서만 파는 한정판, 추후 발매 계획 등의 떡밥을 미리 던져 덕후가 행사장을 성지 순례하게 만드는 동시에 관련 포털을 새로운 소식으로 도배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국은 매우 협소한 시장일 뿐더러 정식으로 들어온 업체가 몇 안되기 때문에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반다이 코리아 같은 정식 업체가 아니라면 한정판 제품으로 아침부터 줄세우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건프라, 아니 반다이코리아의 힘! (출처 : suvlaki님 블로그)

결국 일개 수입상에 불과한 참가 업체는 기존에 보유한 제품을 들고 나올 수 밖에 없고 그나마 이익이 남으려면 재고 상품들을 대거 포함시키게 된다.


그럼 유저 입장에서는 결국 "아니 매장가면 공짜로 보고 살 수 있는데 왜 입장료 내고 여기서 봐야함?"이 되버리는 것이다.




볼거리가 없쪄염


만약 전시회로서의 화려한 볼거리가 있다면 신상 쯤(?) 없더라도 가볼만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없다.


일전에 성황리에 개최됐던 <원피스 메모리얼 로그> 전시회는 판매하는 엑스포가 아닌 '보는 전시회'였지만 원피스 팬들은 평소에 볼 수 없던 실물 크기 조형물을 볼 수 있다는 얘기에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했다. 뭐 사실 대부분의 전시회가 그렇긴 하지만.

요론 걸 하고 놀 수가 있었다

그러나 키덜트 관련된 행사에는 유독 이런 것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 이유는 분명하다.


유통상들이 주가 되는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본사에서 홍보를 위해 거대한 조형물을 제공하지 않는 한 유통 상인들이 이를 만들어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혹 임팩트 넘치는 큰 전시물이 등장하기도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소장품이며 유통되는 상품일 뿐이다.

이런 게 있으면 안가보고 배기겠는가?! (토쿄 토이쇼)
일본 원더페스티벌을 지켜보는 진격의 거인

이러한 이유로 키덜트 관련 행사는 김빠지는 모양새가 되면서 흐지부지 되버릴 가능성이 높다...사실 이미 지금도 조금씩 덕후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입소문이 나있는 상태이다.



그럼 진짜 우리나라에서는 꽝인가?


아니다, 아닐 수 있다.

최근에 필자는 <하비페스티벌>에서 오덕들이 쏘아올린 희망의 작은 공을 보았다.


이번에 두번째로 진행된 <하비페스티벌> (주최 : 숨코리아)은 기존의 행사와는 다르게 '개인 자격'의 참가가 메인이다. 이름과 같이 '취미'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피규어, 레고, 건담 뿐 아니라 핸드메이드 악세서리나 서적 등도 포함된다.

이곳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소규모 업체나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작은 테이블에 자신의 콜렉션 또는 취향이 묻어나는 제품을 올려놓고 나름의 가격을 매겨서 판매한다.


그런데 이 제품들이 상당히 알짜배기이다.


일반 샵에서는 보기 힘든 해피밀 헬로키티, <빅히어로> 베이맥스 USB 램프, 세븐일레븐 한정 건담프라모델 등 꽤 덕력있는 사람이 일본이나 미국에서 직접 구매한 듯한 상품들이 즐비해있다.


어떻게 보면 대량 유통하기에는 안팔릴 수도 있는 소량의 제품들이 가득가득 공간을 메꾸고 있는 것이다.

흐엉 이거 뭔가 다 레어레어하잖아...

피규어 등의 상품 뿐 아니라 한 아티스트 분은 본인이 그동안 모아놓은 애니메이션 / 게임 원화집 수백권을 가져와 판매하고 있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몇만원 씩 줘야 하는 책들을 손쉽게 살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콜렉션을 뒤적뒤적하는 느낌 역시 굉장히 좋았다.

한 가득한 디자인 관련 서적들

키덜트 상품은 아니지만 꼼꼼하게 만들어진 수제 캔들이나 모형 명품백 등도 보는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저작권이 살짝 우려되긴 하나 직접 만든 캐릭터 상품들도 매우 탐이 났다.

샤넬샤넬스러운 미니어쳐 명품백

앞서 열거한 이유 때문이라도 우리나라에서 해외 수준의 키덜트 행사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한국에서 키덜트 문화가 뿌리내리진 못했다고 하나 개별 콜렉터들의 열정은 어느나라 못지 않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있는 형태가 훨씬 더 풍성한 행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서브컬쳐 문화 중에서 가장 활성화된 곳은 '코믹월드'라고 본다.  이 행사에는 만화와 애니팬들이 코스프레를 하고 자신들이 만든 동인지 또는 캐릭터 상품을 판매한다.

부산 코믹월드 (출처 : 아이러브디카님 블로그)

이 행사는 부산과 서울에서 거의 매달 열릴 정도로 열기가 뜨거운데, 나는 그 인기의 비결을 '확실한 테마'와 '유저 중심의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약간 낮게 보는 이러한 문화를 한 곳에서 터놓고 소비할 수 있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이다.


이런 에너지가 적절히 연결된다면 사실 위에 열거한 신제품이나 거대 조형물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에도 모양만 키덜트가 아닌, 진짜 덕심이 넘치고 즐거운 행사가 성황리에 해를 이어 개최될 수 있도록 기원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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