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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Jan 06. 2022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았나 보다

초딩 시절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마 5학년 말의 일이다. 당시 전교 학생회장 선거가 열렸다. 무슨 배짱인지, 나도 선거에 출마했다.  내가 나서는 걸 좋아했었나. 아마 그랬나 보다. 보기 좋게 낙선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학기 초에 반장 선거가 열렸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반장 선거에 나갔다. 반장이 되어서 학급을 잘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그냥 나갔다. 이번엔 보기 좋게 '당선' 됐다. 


그 당시 나는 무척 장난스러웠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나를 뽑아 주면 수돗물 대신 '콜라'를 나오게 해 주겠다고 당찬(?) 공약을 내세웠다. 공약을 믿은 친구들은 없었겠지. 근데 나름의 유머가 먹혔는지 정말 우연히도 1학년 2반 1학기 반장에 뽑혔다.


고등학교 2학년 8할 정도가 지났을 때다. 전교 학생회장 선거가 열린단다. 초딩 시절 쓴 맛을 본 바로 그 선거였다. 낙선의 경험이 있어서 그랬는지 후보로 나설 용기가 없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전교 회장과 부회장이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임할 수 있었는데, 회장 욕심이 있던 한 친구가 같이 선거에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 당시 나는 학교 개그 동아리로 활동하면서 나름의 인지도를 쌓은 터였다. 별 고민 없이 함께 선거에 나가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는 초딩 때 미끄러진 바로 그 선거에서 당당히 주인공이 됐다.


대학교 1학년 말의 일이다. 과 학생회장 선거가 코앞이었다. 아무도 회장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전대 회장이었던 한 학년 선배는, 나에게 회장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고민하는 척했지만 곧 알겠다고 답한 것 같다. 단독 입후보한 나는 별안간 과 학생회장이 되었다.


지금 표현대로라면 나는 완전히 '관종'이었다. 21살까진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관심받는 걸 즐긴 듯하다. 어느 무리에서 내가 빠지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어느 무리든 나는 꼭 중심에 있길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나 보다. 


살아온 과정만 보면 나는 참 외향적인 사람 같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주목받고자 나서지 않는다. 그런 게 불편하다고 느껴진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나도 참 이상하다. 그렇게 주목받길 좋아하던 사람이 지금은 소위 '아싸'의 삶이 편하다. 왜 그럴까. 참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의 내가 '나' 아닐까?, 20대 초반까지의 나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온 게 아닐까.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을 숨기고 여태껏 살아온 게 아닐까. 그런 내가 가엾다. 한편으론 장하다. 


또 모르겠다. 서른둘이 된 지금, 내 마음은 어떤지. 지금의 나를 숨기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10년, 20년이 지난 후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또 가엾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헷갈린다. 오늘도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쓴다. 도대체 나는 누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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