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크림 빠진 크림 티

마카오

by 나예

차와 그에 곁들이는 3단 트레이 위의 화려한 주전부리들을 통틀어 '에프터눈 티 '라고 한다. 에프터눈 티보다 조금 단촐한 찻상은 '크림 티'로 볼 수 있다. 크림 티는 차와 스콘, 과일 잼과 우유로 만든 클로티드 크림으로 구성되는데 우리 집 냉장고에 클로티드 크림 같은 것이 있을리 없으므로 오늘은 크림 빠진 크림 티 타임을 가졌다. 크림 빠진 크림 티는 소스 없는 돈가스, 식초 없는 냉면에 비유되고는 하지만 본래 홈 카페란 그런 것이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대체품을 사용하거나, 그마저도 없으면 그저 없는대로 꾸린다. 그렇게 상을 차린다고 해서 감자가 이게 뭐냐며 이의를 제기할 것도 아니고 못해먹겠다고 스콘을 집어던질 것도 아니니 아무 상관 없다. 내 입에 충분히 맛있고 이 시간이 행복하면 됐지, 대충 사는게 뭐 어때서!


18~19세기 즈음, 영국의 한 공작부인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차에 빵 등을 곁들여 먹기 시작했고 이 티 타임에 지인들을 초대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에프터눈 티. 그 시절에 차에 달다구리들을 곁들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끼만을 먹었기 떄문에 당연히 중간 쯤에 미친 듯이 배가 고팠을 것이고 그 허기를 달래기 위해 에프터눈 티든 크림 티든 뭐라도 먹어야만 했을 테니까. 때문에 지금 우리가 하루 세끼를 또박 다 챙겨먹으면서 그 중간에 이런 간식 타임을 가지는 것은 투 머치일 수도 있다. 이런 티 타임은 영국 상류층 귀족들 사이의 세련된 사교 모임 이미지가 강하지만 귀족이든 아니든 배고픔 앞에서 우린 다 똑같은 인간. 허겁지겁 우걱우걱하고 싶은 본능을 억누른채 고상한 척 하하호호하며 우아한 몸짓으로 한 조각씩 깨작깨작 먹었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영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홍콩에도 한번쯤 경험해보고픈 에프터눈 티들이 많다. 격식을 갖춘 에프터눈 티는 주로 대형 호텔에서 운영하기에 가격대도 만만찮고 그나마도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 입 속에 후딱 털어넣고 일어설 만한 메뉴도 아니기 때문에 자리가 날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할는지도 알 수 없다. 홍콩과 붙은 마카오가 약간 상황은 나은 편. 그렇게 나는 마카오에서 에프터눈 티를 겨우 맛봤다.


에프터눈 티는 보통 담백한 베이커리류(스콘, 마들렌 등)와 짭조름한 샌드위치류, 달달한 디저트류(마카롱, 조각 케익 등)로 구성되는데 이 순서대로 맛 보는 것이 즐거움을 극대화한다고 알려져있다. 가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용도라면 3단 구성의 에프터눈 티를 준비하는 것이 폼나긴 하겠지만 일상적으로 누리기엔 너무나도 사치스럽다. 사치란 꼭 돈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고 매번 이만큼씩이나 종류별로 구비하여 뱃 속에 넣는다는 사실 자체도 포함이다. 부담없이 시시 때때로 즐기기엔 역시 크림 티가 제격. 스콘은 시중에 판매하는 핫케익 믹스를 활용하면 에어 프라이어로 뚝딱 구워낼 수 있으니 간편하기 그지 없다. 최대한 간단하게 약식으로 준비하여 최대의 즐거움을 누린다. 라미감자카페 만세!


그래도 한 번쯤은 클로티드 크림을 구해볼까 싶기도 하고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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