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 – 가방 두 개, 9년

1장 미국에 가다

by hellomonkeystar

나는 태어나고 자란 지방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모두 졸업했다.
학창 시절의 나는, 말하자면 그냥 아싸 여학생이었다.
사람들보다는 혼자 노트에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고,
내 안에만 존재하는 세계에 더 익숙했던 아이.

미술을 하고 싶었다.
정말 간절하게.
하지만 집안 형편은 그런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접었다.

어느 날, 다큐멘터리 하나를 보고 온 날이었다.
망해버린 수능 성적표를 들여다보다
속으로 꾹 참고 삼켰다.
그리고는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 하나로,
가까운 지방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생활은 꽤 즐거웠다.
찐따 같던 학창 시절과는 달리,
처음으로 화장품도 써보고, 옷도 골라 입어봤다.
처음 ‘예쁘게 꾸미는 재미’를 알았고,
과대도 맡으면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그게 좋았다.

하지만 집은 여전히 전쟁터였다.
매일 들려오는 부모님의 욕설과 싸움 소리.
나는 결심했다.
이 집을 벗어나야 한다. 무조건.

그 생각 하나로 취업에 올인했고,
운 좋게 서울의 패션 중견 기업에 합격했다.
서울에서의 삶은 고단했지만,
그때 사랑했던 남자친구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에피소드가 쌓이고 쌓이자,
나는 이골이 나버렸고 결국 이별을 선택했다.

잠실 롯데마트 행사장에서,
우리 브랜드 옷을 팔던 중,
데려온 영업부 막내들이 손님과 몸싸움을 벌였다.
결국 우리는 행사장에서 쫓겨났다.

웃으며 중국 출장 기안을 쓰던 상사,
“나 여기서 나가면 뭐하지? 떡볶이? 치킨 장사?”
라고 말하던 그 목소리.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내가 저 자리에 올라가면, 나도 저렇게 될까?’
젊었던 나는, 그게 너무 두려웠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막연하게 생각했다.
‘미국에 가자. 1년만 인턴을 하고 오면
세상이, 아니 내 인생이 달라져 있을 거야.’

역삼역 3번 출구 근처,
나이키 정직원들이 걸고 다니던 직원증 목걸이.
그 반짝이는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그때의 나에겐 무슨 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가방 두 개를 챙겨
미국으로 떠났다. 내가 비행기 티켓을 사기 전까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26살 사랑하던 남자친구도 한국에 놓고 돌아온다는 거짓말을 하며 나는 출국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