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미국의 친척들
고모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엘에이 한인타운 외곽, 다소 낡고 어두운 동네의 작은 집이었지만
그 집 안엔 내 방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비해준 공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시절의 나는 마음이 꽤 뭉클했던 것 같다.
그 일이 벌써 십 년이 훌쩍 지났다는 게 우습다.
시간은 참 잔인하게도 빠르다.
그때는 모든 것이 눈부셨다.
하늘도 다르고, 길가에 놓인 쓰레기통마저 신기했으며
불빛 하나에도 마음이 설렜다.
나는 아직 세상에 상처받지 않은 20대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일자리를 정해놓고 갔던 터라,
출근을 기다리던 며칠은 그야말로 축제 같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고모네 반려견 러스티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던 어느 날,
우리 집 앞 골목에서 흑인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당시 나는 여기가 우범지역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남자는 웃으며 내게 다가오더니
어느새 포옹을 하며 자신이 바로 앞집에 산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아, 미국에서 친구가 생겼구나’ 하고 좋아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고, 웃기고, 또 안타깝다.
그만큼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처음 내 첫 미국 집은 한인타운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거리와, 익숙하지 않은 간판들,
길거리에서 들리는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그 소리들.
그 낯선 혼란 속에서, 나는 나의 새 삶을 시작했다.
영어는 거의 못했다.
기초적인 인사말조차도 제대로 못 하던 나는,
입국심사대에서 "헬로우"라고 말하는 심사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우물쭈물했다.
떨리는 손으로 여권을 건네고,
비자를 겨우 보여주며 간신히 입국했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겁도 없었고,
말도 안 되는 자신감 하나로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처음으로 랜초 쿠카몽가에 사는 사촌 언니 집에 갔을 때,
팔뚝만 한 신생아를 품에 안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니는 그림처럼 예쁜 집에 살고 있었고,
사랑이 넘치는 사촌 형부와 함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 막연한 동경이, 나를 미국에 더 머물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이민자의 삶이란,
특히 똑똑하지도 않고, 건강하지도 않고,
배경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모한 모험을 선택한 나는,
왜 그런 자신감이 있었을까?
이제 와 생각하면, 그것조차 신기하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몰랐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