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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바인 Jan 12. 2017

재판이 끝났다

그는 무죄였다

 비극은 순식간에 찾아와, 영원히 봉합하지 못할 상처를 입힌다. 비극을 일으킨 가해자와 고통받게 된 피해자는 법의 심판으로 인해 처벌받고 위로받는다. 법은 '공정'이라는 기치를 세우고 사회를 '정의'의 테두리 안에서 작동하게끔 한다. 또한 법은 그 기준 아래서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이 모두 납득하고 인정할 만한 방향으로 판결을 내리려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법이라는 것은 사회를 가로지르는 엄중한 규범이지만, 상처받은 피해자의 마음을 제대로 어루만져 주지 못하기도 한다.

 

 벌써 엿새 전 1월 6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렸다. 보도에 따르면 판결문의 분량이 무려 300페이지를 넘어섰다고 한다. 가해자들이 살균제에 넣어선 안 될 것을 넣었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해자들의 기만과 정부의 안일함, 피해자들의 고통이 그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상처로 얼룩진 5년의 시간을 300페이지의 종이로 읽어나가는 재판관을 보며 느꼈을 피해자들의 심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재판부가 양형 하며 거듭 강조했던 표현은 법의 허용범위에서 내릴 수 있는 ‘최대 형량’이었다. 그리하여 신현우 전 옥시 대표와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가 받게 된 징벌은 각각 징역 7년과 금고 4년이었다. 그리고 존 리 전 옥시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애초 검찰이 구형했던 형량에  비하면 가볍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주요 죄목은 ‘업무상 과실치사’였다. 검찰은 여기에 ‘가습기 살균제가 안전하다’는 거짓 광고를 실었던 것을 두고 ‘사기’ 혐의를 적용했지만, 이는 선고 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한 데다 존 리 전 대표는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검찰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현행법의 기준에 의하면 ‘업무상 과실치사’의 형량 범위는 ‘징역 5년’이며, 공소 시효 기간은 7년이다. 재판관들은 법이 정한 그 척도를 가지고 그에 맞게 형을 내렸다. 물론 피해자들은 그 형량에 납득할 수 없다. 실형을 선고받은 가해자들은 한정된 시간 동안 감옥에 갇혀있겠지만, 수많은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은 영겁에 가깝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징역을 선고받은 가해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특히 담담하게 재판장을 빠져나가던 존 리는 공판 결과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들의 허물에 비해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 것이 개탄스럽다. 하나 내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무죄 혹은 가벼운 형량을 받은 것을 두고, 스스로의 잘못을 축소시키고 합리화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존 리는 세간의 비난과 맞닥뜨렸을 때, 공판의 결과를 들먹일지 모른다. ‘나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없으며, 고로 나는 죄가 없다. 가장 공정한 잣대인 법이 그렇게 판단했다. 나를 비난할 합법적인 근거는 없다.’ 7년 형을 받은 신현우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피해자들의 심정에 대한 일말의 공감도 없이, 그저 ‘법’에 의한 응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마저 지나치다 여길지 모른다. 그동안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하면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혹들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던 것을 보면 이를 짐작할 만하다.   

 

 법에 의한 판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억울하게 처벌받는 이가 생기지 않도록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 혐의와 증거들을 검토한다. 법리적으로 보면, 물론 가습기 참사 가해자들의 입장은 합당하다. 그들은 국가가 정한 법의 너비 안에서 판결을 받았고 재판관들은 그들의 소임을 다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이 정작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더 납득할만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우리는 종종 흉악한 가해자들에게 내려지는 솜방망이 처벌을 목격하고서 이를 비판한다. 그런 사례들을 지켜보면서 법의 판결이라는 것이 가해자와 피해자, 각각에게 과연 어떻게 다가가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글머리에서 언급했지만, 양측을 모두 온전히 납득시킬만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실은 매우 어려운 일일 테다. 그러나 많은 법의 판단들이 가해자 측으로 치우쳐 있다는 느낌은 역시 지울 수 없다. 처벌에 대한 가해자의 양심과 피해자의 원통함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못한다. 

 

 선고공판이 끝나고 사흘 후 1월 9일, 세월호 참사 천일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비극은 세월호뿐이 아니다. 많은 엄마와 아기가 목숨을 잃었다. 폐를 잃은 한 아이는 기약도 없이 산소통에 의지해 숨 쉬어야 한다. 이토록 기억해야 할 비극이 늘어난다는 것은 필경 또 하나의 비극이다. 

 가습기 참사의 가해자들이 중한 벌을 받는다고 해서, 유가족들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될리는 없다. 그러나 피해자가 납득할만한 판결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그들의 상처가 더욱 벌어지리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할 테다. 


      




- 기사 참조 -

http://news1.kr/articles/?2878809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183051&code=611213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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