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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Apr 28. 2024

4월 월급 받기 참 힘들다.

나는 봄을 좋아한다. 봄에 태어나서이기도 하고, 나른한 햇살과 따스하게 스치는 봄바람은 아무 이유도 노력도 없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매화부터 벚꽃, 목련, 철쭉... 릴레이로 피어나는 꽃들에 온 세상이 축제 분위기로 들떠 생동감이 넘친다. 하지만 나는 봄을 힘들어한다. 미치도록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봄꽃이 막 피기 시작했을 때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동료가 말했다.

“나는 봄이 제일 좋더라~”

“저는 봄이 제일 힘들어요. 무기력하고 우울해요.”

“왜? 날씨도 좋고, 꽃도 피고 생동감 있고 좋잖아!”

“꽃이 만발해서 너무 예쁘고 좋은데 그게 가장 절정이라는 것을 알아서 슬퍼요. 제대로 그 절정의 순간을 맘껏 느끼지 못하는 것에도 슬프고, 이제 질 일만 남았다는 게 서글프게 느껴져요.”


동료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말하고 보니 나는 봄을 너무도 좋아해서 힘든 거였구나.




대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넘쳐나는 디자인 과제물들. 그런데 내 몸과 마음은 너무 무기력했다. 자취방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놓고, 땅속 깊이 파고들 것만 같은 우울하고 비장한 노래를 들으며 흠뻑 우울함에 젖어 있었다. 손도 까딱하기 싫었지만 해내야 하는 것이기에 미루고 미루다 과제 제출 전날 밤 꾸역꾸역 밤을 새우곤 했다.


40대가 되니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렇다. 특히 4월엔 다른 때에 비해 집중과 정성을 쏟기 힘들다.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만 해도 그렇다. 작년엔 매주 한편씩 발행하던 글을 이번 달엔 1번밖에 쓰지 못했다. 4월 중순에 생일이었건만 이번처럼 아무 감흥도 없는 생일은 난생처음이었다. 예전처럼 설레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4월은 가장 힘든 달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도 평소보다 힘겨운데 일도 많은 달이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니 기업들이 1분기 동안 세운 사업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라서 그런지 일이 많다. 공휴일도 없다. 이번엔 선거 때문에 하루 쉬는 날이 있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해엔 꼬박 매주 5일을 꽉 채워 출근해야 한다. 매일 꾸역꾸역 흘러간다. 그래서 ‘4월 월급 받기 참 힘들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메인 디자인 업무 요청이 2건이나 같은 시기에 겹쳐서 들어왔다. 가뜩이나 무기력한 시기에 나는 카페인과 에너지 드링크를 때려 부으며 아무 열정도 느껴지지 않는 디자인을 하느라 자괴감이 들었다. 오픈일은 다가오는데 현업 피드백은 너무 더디고, 가까스로 진행하던 중 갑자기 현업이 다른 시안으로 바꾼다고 하더니 며칠 홀딩을 했다가 다시 원래 시안으로 진행을 한다고 했다. 그사이에 또 다른 업무 시안을 디자인하고… 결국 오픈일은 며칠 미뤄졌지만, 담당 현업은 앞으로 2주 동안 휴가라 자리에 없을 예정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팀장과 차장이 사이가 좋지 않아 코딱지만 한 사무실 안에서 뭣 같은 감정싸움이 매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3월 초에 시작한 치아교정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광염까지 걸려서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해야 했고, 항생제를 복용하느라 술로도 위로받지 못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일이 많으면 시간이라도 빨리 가야 하는데 지난 2주는 어찌나 시간이 더디게 가는지 0.5배속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 지나간 주말…


어제는 정말 날씨가 좋은 토요일이었는데, 누워서 창밖 푸른 하늘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 누워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너무 밖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나가기 귀찮았다.

‘나갈까? 아 귀찮아. 그런데 너무 날씨가 좋잖아. 아 근데 귀찮아...’

나는 오후 3시까지 이 빌어먹을 자신과의 싸움을 하다가 결국 집구석에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보낸 4월이 이틀 남았다. 남은 이틀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온 지가 반년이 넘었는데도 매번 기억을 못 하고 처음 하는 것처럼 일을 하는 팀장은 이미 정신을 못 차리고 버벅대고 있는데 대대적인 월말 작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음 주를 시작하기 전 다짐이 있다면 '부디 내가 폭발하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다.


다가오는 5월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꽉 막힌 목을 뻥 뚫어줄 사이다 같은 일을 뭐든 하나는 만들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어둡고 긴 터널 같은 4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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