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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Dec 25. 2023

늦잠

[단편소설]

어렴풋이 정신이 든 미영은 감은 눈꺼풀을 관통하는 밝은 빛에 눈이 부셨다. 가슴팍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눈을 뜨자 하얗고 긴 털을 가진 그녀의 고양이가 푸른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천장을 응시하며 눈을 두어 번 껌뻑거렸다. 이내 불안한 개운함이 그녀를 엄습했다.


베개 옆을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았지만 없었다. 그때 등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이질감. 미영은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고양이를 침대에서 내려보내고 등에 깔려있던 휴대폰을 힘겹게 빼내어 이리저리 눌렀지만 까만 화면은 바뀔 줄을 몰랐다. 지난밤 게임을 하다가 잠든 탓에 방전이 되고 만 것이다. 눈을 찌푸려 벽시계를 보았다.

“10시…… 5분?”

그녀의 출근 시간은 9시까지다. 


혼비백산한 미영은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호들갑을 떨며 침대에서 내려오다 다리에 이불이 감겨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악!”

얼얼한 왼쪽 뺨과 뻐근한 뒷 목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부리나케 향했다. 그녀의 고양이보다도 성의 없는 세수를 하고 밤새 빗자루처럼 뻗쳐버린 앞머리에 물을 묻혀 가다듬고, 뒷머리는 검정 고무줄로 질끈 묶었다. 행거에서 가장 익숙한 옷을 꺼내 팔다리를 후다닥 끼워 넣고 롱패딩 지퍼를 올리며 정신없이 집을 나섰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에 머리까지 동시에 욱신욱신 거렸다. 미영은 자신이 더 싫어졌다. 가뜩이나 계약직이라고 사람 취급도 못 받는데 지각까지 하다니 그런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매일 출근 인파로 분주하던 거리는 쾌적하리만큼 한산했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미영은 지각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촉하던 발걸음을 늦췄다. 휴대폰 충전을 하지 못하고 나온 탓에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회사에서 올 전화도 받지 못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미영은 알고 있었다. 아무도 전화하지 않을 것을… 그녀에겐 친한 동료가 없었다. 밥도 항상 혼자 먹었다. 그들에게 미영은 팀 내에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 복사기 옆 계약직 직원일 뿐이었다.


멀찍이 미영이 타야 하는 파란색 버스가 오고 있었다. 그녀가 도로 쪽으로 다가서며 버스를 탈 것이라는 적극적인 표현을 했지만, 버스는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쌩하니 정류장을 지나쳐 달려갔다. 금세 멀어진 버스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영은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


버스 운행 안내 전광판을 보았다. 암담하게도 다음 버스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택시마저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회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버스로 20분 거리이니 걸어서 가볼 만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게다가 햇살이 너무도 좋은 날이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는 것을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 깡마른 나뭇가지에 작은 연둣빛 새싹들이 움트고 있었다. 미영은 자신의 검은 롱패딩이 멋쩍게 느껴져 목까지 올렸던 지퍼를 열어젖혔다. 지방에서 혼자 상경한 탓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주말엔 여지없이 그녀가 살고 있는 원룸에서 고양이와 틀어박혀 지냈다. 땡땡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던 그녀는 꽉 막힌 인생에서 일탈의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한참을 걸어 그녀의 고관절이 뻐근하게 느껴졌을 때쯤, 멀찍이 거대한 회사건물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지나던 가게 안 시계를 흘깃 보았다. 점심시간이었다.




“금요일인데 다 같이 점심 어때?”

부장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사람들의 달갑지 않은 눈빛이 분주하게 파티션을 넘나들었다.

“아~ 좋죠! 부장님!”

“그럼, 요 앞 김치찌갯집으로 가자구”

부장 입 안의 혀처럼 구는 김 차장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마치 끌려가는 죄인들처럼 떫은 얼굴로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새콤얼큰한 김치찌개 냄새와 후끈한 습기로 가득 찬 왁자지껄한 식당 안. 김 차장은 부장 옆자리에 후다닥 앉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부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지 않으려고 보이지않는 눈치 게임을 했다. 4인 테이블 세 개면 딱 맞는데 어쩐지 부장 앞자리만 빈자리였다.


“근데 왜 11명이야? 우리 팀 12명 아닌가?”

김 차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들갑을 떨며 인원수를 셌다.

“열, 열하나… 아! 미영 씨! 미영 씨가 없네요. 근데 맨날 따로 먹지 않나? 미리 혼자 나갔나 봅니다.”

“자, 먹자구”

탐탁지 않은 표정의 부장 앞에 놓인 김치찌개가 부글부글 끓어 넘치고 있었다.




드디어 회사 앞에 도착한 미영은 배가 고팠다. 매일 점심때마다 가는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이라도 욱여넣고 가기로 했다. 매번 고르는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딸기우유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단발머리에 편의점 조끼를 입은 알바생이 과자 코너에서 색색깔의 과자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저기요!”

알바생은 진열에 진심인듯 열중하고 있었다. 미영은 다시 한번 있는 힘을 끌어모아 점원을 불렀다.

“저기요! 여기 계산이요!”

그럼에도 알바생은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는 듯 했다.

“여기……”

다시 한번 알바생을 부르려던 미영의 명치에서부터 묵직한 뜨거움이 올라오더니 목구멍을 조여왔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삼각김밥과 우유를 덩그러니 계산대에 남겨둔 채 편의점을 떠났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그녀에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아들을 낳는 것이 목표였던 집의 넷째딸로 태어났고, 다섯째에서 부모님은 드디어 아들을 얻었다. 성공 직전의 실패로 여겨져 늘 남동생의 그림자에 가려져 살았다. 심지어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던데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로 ‘흐릿할 미(迷), 그림자 영()’ 자를 쓰게 된 그녀의 이름 ‘미영’처럼 흐릿한 그림자로 존재감 없이 살아왔다. 학창 시절 내내, 담임 선생님들은 어려울 것 하나 없는 그녀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했고, 심지어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미영을 빼놓고 출발해 버린 적도 있었다. 병원이나 은행에선 그녀의 차례를 건너뛰어 버린다던가, 카페나 식당에서 주문한 메뉴가 누락되는 일은 신기할 만큼 비일비재했다. 계속된 소소한 불행들과 작은 수치심에 오죽하면 자신이 투명 인간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 미영에게 자신을 지나쳐 버린 버스와 불러도 오지 않는 편의점 알바생쯤이야 그렇다 할 타격감을 주지 않았다. 미영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사무실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패딩점퍼를 벗어 양팔에 안았다. 언제든 허리를 굽힐 수 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살금살금 사무실로 들어섰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뿐, 모두 모니터를 응시한 채 정신이 팔려있었다. 부장에게 한 소리 들을 각오를 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너무도 평화로웠다.


‘설마 내가 늦게 온 줄도 모르는 거야?’

차라리 꾸짖어 주길 바랐다. 미영은 복사기 옆 자신의 자리에서 아무 문서나 열어놓고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업무가 한 건도 없었다.


출근이 늦었던 탓에 퇴근 시간은 금방 돌아왔다. 6시가 가까워지자, 사무실은 이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금요일 퇴근길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은 들떠있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일어나 퇴근하기 바빴다. 누구도 미영에게 지각을 했다고 뭐라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는 사무실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그제야 생각났다. 아침에 그 난리를 피우느라 고양이의 밥과 물을 채워주고 나오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을.

 



“미야~옹! 미야~~옹!!!”

헐레벌떡 집 앞에 도착한 미영은 당황했다. 평소 잘 울지 않는 그녀의 고양이가 복도까지 들릴 정도로 목 놓아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굶고 있었을 고양이를 생각하니 죄책감까지 들었다. 미영은 그녀의 방에 들어서며 고양이를 향해 말했다.

“언니가 빨리 밥 줄게! 깜빡했어. 미안해”


평소와 다르게 고양이는 그녀를 반기러 문 앞까지 나오지 않았다. 미영이 아침에 대충 바닥에 뭉개고 온 이불 뭉텅이 앞을 맴돌며 울고만 있었다. 고양이 뒤로 살짝살짝 보이는 형체를 유심히 본 미영은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소라빵처럼 둘둘 감긴 이불 끝엔 침대에서 고꾸라져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목이 꺾여 있는 자신이 창백한 얼굴로 마네킹처럼 굳어있었기 때문이다.


미영의 방문이 열린 것은 그로부터 3일 후였다. 쉬지 않고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누군가 고양이를 유기한 것 같다는 이웃의 신고 덕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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