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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잠 Apr 03. 2024

누가 죄인인가





얼마 전에 신규 공무원이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비극적인 소식은 처음 접하는 게 아니었기에, 내가 시험을 준비하기 전부터 그리고 준비하면서도 합격하고 나서도 종종 들었기에 나는 이런 슬픔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상태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또, 그리고 수일이 지나서 또 신규 공무원의 죽음을 기사로 접하게 되었다. 2024년이 된 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이제는 그 비극을 한 손으로도 세기가 어렵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지만 들려오는 비극의 이유도 여러 가지다. 어떤 이는 악성 민원인들에게 시달려서, 어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친 업무가 너무 버거워서, 또 어떤 이는 누군가가 괴롭혀서. 이유가 하나였다면 그래도 이것만 고치면 되니까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 비극의 이유마저 다양해서 어디서부터, 어디를 먼저 고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럴 자격도 없고, 능동이 아니라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하겠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힘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차라리 그만두지.

나 역시 이런 의미 없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쉽지가 않다.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업무를 보다가 시끄러워진다 거나 좀처럼 해결이 되지 않으면 주변 동료들이나 팀장급이 나와서 돕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일을 해결하고 나면 일단 고마우면서도 내가 해결하지 못했다는 양가적 감정이 들게 되거든. 아무것도 아닐 것 같지? 내가 무능력해 보이는 게 얼마나 비참한 줄 알까. 동기에게 이런 생각을 말했더니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라고 하던데 성장통이 너무 아프면 그저 고통일 뿐인걸.

그만두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나는 이해가 안 되는 게 그렇게 인터넷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공무원 무시하면서 그만둔다고 하면 다들 뜯어말린다.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는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공무원이 최고인가 보다. 내가 합격했을 때 울컥했던 이유는 드디어 합격했다는 기쁨에서 오는 울컥 때문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좀처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니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이런 기뻐하는 모습을 너무 늦게 선물해 드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슬퍼서 울컥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부모의 행복이라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도 그만둘 수가 있다고? 그렇게 말을 쉽게 한다고?


그들이 떠났다는 기사에는 죽음을 추모하는 화환들 뒤로 업적을 자랑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이 모순적인 사진 한 장이 공직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내가 일하는 곳 앞에도 무언가를 신청하라는 현수막과 자랑할 거리로 가득 채운 현수막들이 뒤섞여서 걸려있다. 나는 자랑스럽지가 않다 저 업적을 드러내는 현수막들이. 이 죽음들이 공직의 위기를 알리는 경종이 되었으면 좋겠건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고쳐야 할 것들 하나하나 고치다 보면 이 조직은 아마 살아남지 못할 거야. 

공직에 대한 안 좋은 얘기가 흘러나오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급여 얘기다. 그래, 이것도 공직의 큰 문제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나는 이 적은 급여가 이 조직의 문제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돈을 많이 주면 사람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나? 돈을 많이 주면 죽음이 참아지나? 뭐가 문제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고치지 못하는 거지.


이 문장을 쓰면서도 죄책감이 들지만 정말 다행히도 나는 그럭저럭 버틸만한 공직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 되게 웃기지 않아? 정말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럭저럭 버틸만한 일이 다행이라고 여긴다는 게. 공직은 러시안룰렛인가 봐. 나만 아니면 된다며, 내가 아니길 바라며 하루하루 방아쇠를 당기곤 하니까.


누구의 잘못일까. 이런 비극들의 책임져야 할 사람을 하나 콕 집다 보면 그 누구 하나 빠져나가기 힘들 것 같은데 말이지. 모두가 죄인이라면 죗값을 치를 필요도 없는 걸까.

누가 죄인이 아닌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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