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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금 Jul 01. 2021

엄마가 하루를 망치는 소소한 이유

망한 하루가 모여 생이 되지요


1.

준비하고 있는 원고의 목차를 재정비하겠다고 결심한 날이었다. 오늘은 꼭 해버리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나니 설레기까지 했다. 아이의 등교를 도우며 속으로 '어서 나가라 이놈아' 되뇌었다. 이 집에 나 혼자 남게 될 순간을 재촉했다.


어제 하루 잠깐 입었을 뿐인데 아이 옷에서 퀘퀘한 냄새가 났다. 다시 입힐 수가 없어서 다른 티셔츠를 찾다보니 어째 입힐 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티셔츠가 이렇게 없었나. 이건 언제 이렇게 작아졌나.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단조롭고 조금 유행이 지난 듯도 하고 어딘가 재미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을 사주어야겠다, 아니 옷을 사주어야 한다는 확신이 꽂혔다.


등교 시간이 임박해 탐탁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오늘 하루 버틸 만한 옷을 입혀 내보내고 나는 한동안 거실을 서성였다. 할 일이 있었지만 또 그 할 일을 꼭 하고 싶은 오늘이었지만 나는 또 바보같이 한정된 시간을 나 말고 아이를 돕는 데 쓰고 싶어진다.


그게 진짜 도와주는 일인지 알 수도 없으면서.



2.

옷을 사고 집에 돌아와서.


그래도 아이가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쯤 남아서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열었다. 충전기를 연결해두지 않아 노트북 전원이 곧 꺼진다는 경고 메세지가 뜬다. 콘센트에 전원을 연결하려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더니 바닥에 소복이 쌓인 먼지가 보인다. 우리 첫째, 집먼지 알레르기 있는데.


청소기로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이고 물걸레로 닦는다. 치우는 김에 주변에 어지러이 널부러져 있는 책들과 옷가지를 정리한다. 깨끗하다. 이제 20분 뒤면 아이가 돌아온다.


됐어.

내 일은

내일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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