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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영 Apr 22. 2022

아파트의 품격

사랑하는 나의 조카에게 

여동생과 거의 매일 티타임을 한다. 같은 단지에 살고 둘 다 직장인에 비해서는 시간이 자유로운 일을 하는 터라 점심이 되면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여동생 일터로 가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다. 열한 살배기 조카의 학교 생활을 종종 듣기도 하는데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가 없는 내겐 생경한 대화들이 자주 등장한다. 신도시로 조성된 이곳은 고급 브랜드 아파트부터 민간 분양, 민간 임대 그리고 내가 사는 공공임대까지 다양한 주거 공간이 혼재한다. 아무튼 어느날 아이들의 대화 화제는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 하는 거였고 제법 비싸고 이름 있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와 보통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던 거다.


"엄마 우리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


그날 저녁 조카는 조심스레 물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기죽은 것이다. 더 나아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집은 가난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린 후 엄마에게 사실을 확인하려 한 것이다.


여동생은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조카에게 자주 알려주었다고 했다. 여기는 우리가 빌려쓰는 집이고 언젠가 우리집이 될 거라고. 그런 말들은 비교 대상이 없을 때는 유효했을 것이나 지금은 달라진 것이다.


"엄마 우리는 가난해?"


조카는 한 번 더 물었다고 했다. 여동생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 고모와 작은 고모, 이모의 예를 들며 누군가는 더 가진 게 많고 누군가는 가진 게 적다고 담백하게 설명한 후 '우리는 아주 가난하지도 아주 부자도 아니야'라고 문장의 끝을 맺었고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티 타임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열한 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이나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 이야기, 좋아하는 동물이나 꽃을 노래하기 바라는 것은 헛된 희망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미디어의 탓인가, 잘못된 어른들의 탓인가 원인을 찾기도 했지만 부질없는 일임을 안다.


나는 요즘 아이들을 잘 모른다. 담벼락에 기대어 오래 바라본 선홍빛 노을과 목련 꽃송이의 우아한 낙하와 수세미오이의 외계인 같은 모습을 마음에 담고 산다고 하면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가난과 부유가 존재 가치를 나누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나는 사랑하는 나의 조카가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평가받거나 자동차 크기에 주눅들거나 부모님의 재산에 따라 초라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너라는 존재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무궁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음. 아직 너의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이제부터 네 스스로 차근차근 너의 세계를 만드는 거야."


애써 쓴 입맛을 다지며 기운을 내야할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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