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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곤 Nov 05. 2017

주말 신문

ⓒStougard, Wikimedia Commons


   주말 신문 보는 일을 좋아한다. 군대에 오고 나서는 각 부서로 배달되던 신문들이 휴일이면 생활관으로 몽땅 배달되는 덕분에 매주 토요일은 신문 보는 날이 되었다. 평일의 신문이 딱딱한 정치면과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살벌한 사설로 뒤덮여 있다면, 주말의 신문은 모처럼 휴일을 얻어 낮잠을 자는 아버지처럼 느긋하다. 평소라면 기삿거리도 안 되었을 <2030 '감주'에 빠지다>, <고물을 보물 만든 '중고나라 대통령'>, <농부 된 前농식품부 장관> 같은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주말 신문의 한 면 한 면을 채운다. 평일 신문이 엄선된 상품을 진열하는 백화점이라면 주말 신문은 '뭐 이런 것도 다 파네' 하면서도 몇 시간이고 둘러보게 되는 7일장이라 하겠다.


   주말 신문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가 있다면 인물 인터뷰 꼭지다. 우리가 아는 유명인이라면 대부분 나름의 인생 역정이 있고 성공한 사람이니 여기에 등장할 법 하지만, 너무 유명해도 주말 신문 표지를 장식할 수 없다. 얼굴만 보면 누구든지 이름을 댈만한 사람의 인터뷰 기사는 평일 신문에 실리거나 아예 월간지 특집 기사로 실리기 마련이다. 아니면 <뉴스룸>에 출연한다거나. 주말 신문의 인터뷰 대상은 대개 '이름은 들어봤는데 얼굴은 모르겠다', '얼굴은 본 적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그 단체의 대표가 바로 이 사람이었구나', '일반인은 잘 몰라도 그 분야에선 잘 알려져 있다' 쯤의 인지도를 지닌 인물이다. TV로 따져보면 <무한도전>보다는 <아침마당>에 어울릴 것 같은 그분들.


   언제인가부터 "주말 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실릴만한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해본다. 의미 있는 일을 해서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고 싶지만, 그렇다고 유재석이나 김연아처럼 유명세 때문에 고생하고 싶진 않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언젠가 <무한도전>에서 나온 것처럼 산간벽지에 사는 90대 할머니쯤 되어야 자신을 몰라보는 유명인의 삶은 고단할 것 같다. 언젠가 있을 주말 신문 인터뷰를 위해 뭐라고 말해야 할 지도 생각해보곤 한다. 샤워할 때마다 샴푸통을 들고 수상소감을 연습하는 무명배우 같이.


   매주 나는 과거형의 문장으로 미래를 그려보면서 제법 동기부여도 받고, '부끄러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조용히 해본다. 누군가 짜장면 먹으려고 신문지를 깔았다가 내 인터뷰가 너무 흥미로워서 면발 부는 것도 모르고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무쓸모한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보통은 수상소감을 연습할 시간에 연기를 갈고닦고 대본을 연구한 배우가 실제로 상을 받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토요일 오후면 나는 주말 신문을 펼쳐 들고 가상의 인터뷰를 상상하는 것이다.

(여러분 중에 몇몇도 이런 상상 해봤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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