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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곤 Nov 20. 2017

돈과 꿈: 일에 대한 우리의 고민

알랭 드 보통,<일의 기쁨과 슬픔> (2)

커버 : Jacques Bodin, De dos XXXXV


분량 상 나누어진 (1)편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소비하는 상품들의 이면에 숨겨진 노동의 세계를 다뤄 보았다. 우리가 외면하던 "노동하는 세계"에도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 아름다움을 찾아 가꾸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몫이라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1)편 보러 가기 → "노동하는 세계"의 아름다움




   "여러분의 장래희망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만큼 유년기부터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기까지 줄기차게 듣는 질문이 있을까. 처음에는 유치원 선생님의 친절한 목소리에 실려온 이 질문은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대체 뭘 해서 먹고살 것인가"라는 사뭇 심오한 형태로 바뀌어 우리 모두를 괴롭힌다.(한국의 경우 추석, 설 등 명절에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 2세, 로또 당첨, 아빠가 국회의원...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평생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고민한다. 할 일을 정하는 문제가 단순히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라면 간단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직업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계속 배워왔고 직업을 통해 꿈을 이루고자 한다. 그런데...


   만약 내 꿈이 돈을 잘 못 버는 직업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면?

   반대로 경제적으로 풍족한 직업에 종사하는 와중에 회의감에 빠진다면?


   머리가 아파진다.


   <일의 기쁨과 슬픔 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의 반 정도가 일상에 숨겨진 "노동하는 세계" 이야기였다면, 나머지 반은 직업과 일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고민을 대변한다.




매달 입금되는 급여가 있기에


   위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사람이 일을 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는 경제 활동이고, 둘째는 자아실현이다. 먼저 경제 활동이란 목표를 살펴보자.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현실적으로 돈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직업에 대한 호불호를 뒤로 제쳐두고라도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보낸다. 노동에 있어서 '돈'이라는 가치는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노동자는 친절함, 성실함, 믿음직함 같은 질적 가치가 아닌 실적과 급여 액수라는 양적 잣대로 평가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요구와 관계가 없는 산업"이라도 그곳에서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그 일에 종사한다. 때로는 자신의 감정과 욕망, 가능성을 죽여가기도 하면서 말이다.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에 막처럼 덮인 이슬이 증발하듯이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다. (pg.267)


Cubicles, 2009  ⓒMichael Lokner

   3장 <비스킷 공장>에서 저자는 우리를 '유나이티드 비스킷'의 본사와 공장으로 데려가 노동의 이러한 측면을 직접 보여준다. '스위트 비스킷 브랜드 감독 코디네이터' 로렌스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비스킷 회사에서는 로렌스를 비롯해 비스킷 굽는 법을 모르는 직원 수천 명이 고도로 분업화된 작업을 매일 수행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근무 시간 중 비스킷 부스러기도 구경하지 못한다. 하지만 매달 입금되는 급여가 있기에 일의 목적과 의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가치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돈이 주어지는 한 그들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수많은 회의와 검토와 결재를 반복하는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공감할만한 내용일 것 같다.


   로렌스는 슬라우에 있는 한 호텔에 설문 대상자 몇 명을 모아놓고 이 비스킷을 만들었다. 그는 일주일에 걸쳐 그들의 생활에 관해 질문했다. 그들에게서 감정적인 갈망들을 끄집어내, 새로운 제품의 조직 원리로 통합해내려는 것이었다. (pg.80)
   그 뒤 반년 동안 동료들과 포장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단순하게 비스킷 아홉 개를 검은 플라스틱 트레이에 넣은 다음 광택이 나는 24센티미터 길이의 판지 상자에 담기로 결론을 내렸다. (pg.82)
   이들은 창고에서 지게차 트럭들을 관리하거나, 소금을 친 견과를 담는 전형적인 포장지의 옆면에 적힌 80여 단어를 꼼꼼하게 살핀다. 어떤 사람들은 슈퍼마켓으로부터 판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에 특별한 전문성을 갖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매일 운송 중에 웨이퍼 사이에 일어나는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pg.84)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일하는 것의 또 다른 목표는 자아실현이다. 우리는 일을 통해 꿈을 실현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한다. 사생활이나 취미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무언가를 노동에서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이러한 믿음은 18세기 부르주아가 사회 주도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점차 확산되었다.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는 아이디어는 현대인에게는 당연하지만,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현상이란 것이다.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있는 것이다. (pg.116)


   이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바로 예술가들이다. 많은 예술가가 변변한 수입 없이, 경제 활동으로서의 일을 포기한 채 예술을 추구한다. 5장 <그림>에 등장하는 화가 테일러(떡갈나무 그림 전문)가 바로 그중 한 명이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테일러는 변변치 못한 배관공의 1년 수입 정도를 벌어들였다. 평소의 우리 모습보다 더 우아하고 지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인간 본성의 비실용적 측면을 보는 듯하다. (pg.214)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인간 본성의 비실용적 측면"은 우리 가까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몇 해 전 경남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십계(十誡)'가 화제가 됐었다. 이 학교의 설립자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직업 선택의 철학을 10개의 계명으로 정리한 것인데, 십계의 첫째와 여덟째는 다음과 같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요컨대 일에는 경제 활동보다 더 큰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좇으라는 것이다. 언뜻 바보처럼 보일 수 있는 직업 선택 기준이다. 하지만 '직업 선택의 십계'에 사회적 관심이 쏠린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비실용적이지만 가치 있는 일을 갈구하는 내적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과 꿈, 꿈과 돈


   지금까지 살펴본 일의 두 가지 목표와 그 사이의 갈등이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의 실체가 아닐까 싶다. 돈과 꿈, 그리고 꿈과 돈. 어느 쪽을 위해 일할 것인가? 어느 쪽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유명한 작가라면 왠지 당연히 '꿈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외쳐야 할 것 같다. 책 많이 판 어른들은 보통 '아프니까 청춘'이니 '천 번을 흔들려도' 꿈을 따라가라고, 돈은 못 벌어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고 얘기하니까.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오히려 돈을 위한 노동을 변호하며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에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우리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유치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과 절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pg.114)


   누구나 의미 있는 일을 원하고, "진부한" 산업에 종사하면서도 기회만 있다면 더 고차원의 가치를 좇을 수 있는 일자리로 옮기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면, 누군가 의미 있고 고상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생존과 풍요를 위한 일을 그의 몪만큼 다른 누군가가 떠맡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물질적 풍요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과연 우리는 비스킷 회사의 마케팅 전문가를 "진부함"과 "속물"이라는 단어로 비난할 수 있을까?



   한편,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은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영어 성적이 어떻든, 성격이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비행기를 타봤든 말든 간에 모든 학생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해야 된다고 우기던 초중고 시절의 교장 선생님들을 떠올려 보자. 운동회 때 '몸도 튼튼한 글로벌 리더' 운운하는 것의 우스꽝스러움은 둘째 치더라도, 전교생 수백 명이 죄다 세계적 지도자면 그 지도자는 누가 따르고 도와주나? 개개인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글로벌 리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강요이며 폭력이다.

(그래도 훈화 말씀을 1분 안에 끝냈던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좋아했지만)


   직업 선택에 대한 교육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는 당연히 '직업은 자아실현의 창'이라 배우고 누구나 직업을 통해 꿈을 이룰 것이라고 믿게 되지만, 사실 직업에서 꿈을 이루고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당연한 기대는 수년 후 우리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애초에 자신의 꿈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욕구 피라미드'로 잘 알려진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한편 9장 <창업자 정신>에서 창업 박람회에 찾아간 알랭 드 보통은 돈과 꿈의 갈등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현대의 '성공'이 경제 활동과 자아실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만 성립된다는 점이다.


   이런 박람회의 인기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생각이 현대적인 성취라는 개념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개념은 잘 나가는 창업자들을 찬미하는 방식으로 부각되며, 여기에 그들만큼 성취하지 못한 동료들의 파산과 드물지 않은 자살에 관한 상대적 침묵이 결합된다. (...)
   우리 시대는 예외가 규칙으로 행세한다는 점에서 왜곡되어 있다. (pg.311)


   돈을 잘 벌어도 '속물'이라 욕먹고, 꿈을 좇아도 '바보'라고 놀림당한다. 둘 다 성취해야만 우리는 그를 성공한 사람이라며 추앙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돈과 꿈 모두 이루어내는 사람은 "규칙"보다 "예외" 쪽에 속한다. 다시 말해 돈과 꿈, 꿈과 돈에서만 노동의 의미를 찾고자 하면 범인(凡人)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일하는가?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노동은 왜 계속되는가?




우리는 왜 일하는가?


Courtesy of @nicksullivanesq / anothermag.com

   긴 분량을 할애해 경제 활동과 자아실현이라는 일의 두 목적에 대해 얘기했지만, 결국 그 둘에서는 "일의 슬픔"밖에 찾지 못했다. 돈을 위한 일에는 목적의 상실과 분업의 진부함이, 꿈을 위한 일에는 경제적 궁핍과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좌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일할까?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답한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죽어가기 때문에 일한다. 비록 죽은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의 노동이 아무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죽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보낸다. 무엇도 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이 돈과 꿈 사이에서 겪는 일의 슬픔보다 커다랗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한다. 그 안에 존재의 순수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밤이 올 때쯤이면 죽을 것이라는 커다란 사실을 외면한 채, 서둘러 칠한 붓이 남긴 페인트 한 방울을 피해 창턱을 계속 열심히 가로지르려는 나방에게서 볼 수 있는 강렬하고 맹목적인 의지가 있다. (pg. 364-365)
   (일은)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pg.368)
ⓒJim Pickerell, 1974




   너무 허무한 결론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일의 슬픔은 엄청 장황하게 풀어놓고, 일의 기쁨은 "노동이 죽음을 잊게 해준다"뿐이라니.


   하지만 400쪽에 걸친 열 개의 취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작가의 생각과 결론만이 아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일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그것에 다다른 과정에 있다. 장황하고 읽기 힘들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겠지만 저자는 세계 곳곳의 "노동하는 세계"를 미주알고주알 세세하게 묘사해두었다. 마치 첫 장에 등장한 '선박 구경꾼'들이 화물선의 길이, 항로, 도색에 관해 끄적이는 노트처럼. 사실과 현상을 자세히 기록해둔 만큼 그에 대한 의견은 갖가지 방향으로 갈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과 그에 대한 결론은 사실 이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수만 가지 생각 중 모범답안 또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알랭 드 보통과 '일'에 관한 열 개의 여행을 함께한 우리는 간접 경험을 토대로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생각해볼 가능성을 그에게서 선물 받은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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