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스런 지 자랑
그동안의 제가 써 오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게 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쓰는 소셜네트워크 계정과는 달리 제 글을 보러 오시는 5,000에 가까운 독자분들을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아마 저에 대해서도 잘 모르실테지요.
오늘은 자랑을 좀 하고 싶어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6월부로 카메라 회사인 캐논으로부터 장비를 후원받게 되었습니다.
다음주에 촬영을 가는 피렌체부터는 5D Mark 4와 85mm 렌즈가 함께합니다.
사진에 관심있는 사람, 특히나 인물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85mm F1.2 L 과 같은 꿈의 렌즈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는 걸 아실겁니다.
어느 메이커가 어떻다하는 이야기는 넣어두고, 지금껏 든든히 곁에 있어준 장비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아직은 딱히 좋은 사진이 아닌데도 응원해주고 박수쳐주신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늘 하는 말 ‘장비 탓은 없지만 장비 덕은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어 아래의 글을 썼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그간의 이야기를 혼자 주억거려보겠습니다.
세계여행 마치고 나는 돈이 없었다. 마지막 목적지 방콕에서 버티고 버티다 하루 3만원씩 4일치가 모자라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덕분에 마지막 4일은 잘 먹었다.
김중만선생님 밑에 들어가서도 돈이 없었다. 필름 맡기러 청담에서 신사동 포토피아를 가는 버스비가 아까워 걸어다녔다. 10분이면 다녀올 곳을 한 시간 넘게 걸린다며 혼나기도 했다. 압구정이고 학동이고 그동네 미팅은 다 걸어서 갔다. 팔자에도 없는 동네 지리를 다 익혔다.
한 달 삼 십 만원. 그걸 쪼개고 아껴모아 2년만에 카메라를 사고, 50mm 중고 단렌즈를 샀다.
KBS 1박2일 사진하면서 망원렌즈 하나, 건축사진을 시작하면서 광각렌즈 하나. 그렇게 4년이 걸려 지금의 장비 세트를 갖췄다. 독립 후 덜컥 스튜디오부터 열었던 탓에 계속 쪼들렸다. 다행히 지방에서 올라와 월세를 내야 하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부분이다. 그 분들은 32살의 대학 나온 아들이 일이 없어 방구석에 쭈그려 앉은 모습을 보셔야했다. 꿈 같은 소리로 설명하기에는 좀 늦은 나이였다. 스튜디오는 1년만에 접었다. 인생 어렵다는걸 다시금 배웠다.
근근히 버텨내어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7년 된 그 카메라를 쓰고 있다. 내구성 테스트로 20만 번까지 보증한다는 셔터박스를 한 번 갈았다. 필름으로 치면 5,556 통이다. 5년 동안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찍어야 쓸 수 있는 양이다. 돈이 생겨도 장비 욕심은 없는 탓에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명필은 혈서도 명필이라는 궤변를 늘어놓으며. 수리센터 기사님이 언제든 수명이 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던게 2년 전이다.
이 낡고 상처난 카메라가 나는 고맙다.
이걸로 다 했다. 이걸로 온 세상 다 담았고,
이걸로 차도 사고, 이걸로 부모님 용돈 드리고,
이걸로 동생들 술도 사주고,
이걸로 내가 좋아하는 너도 담았다.
50mm 중고 렌즈가 무럭무럭 자라서
85mm 렌즈가 되었다.
3.5cm 자랐다.
많이 컸다.
명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