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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May 30. 2017

지중해 요트여행 pt.2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나는 선물

배 안의 조그만 주방은 나름 가스레인지부터 오븐까지 다 갖췄다. 항해 중엔 잘 활용하지 못하지만 정박하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시칠리아에 정박해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마침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에서 출발한 한국 배가 시칠리아에 닿았다기에,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로 했다. 

항해하는 동안 흔들리는 배에서 저녁을 해 먹기가 쉽지 않았던 터라 음식다운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컸나 보다. 더 이상 흔들리지도 않고 물과 전기를 아껴 쓰지 않아도 괜찮은 요트 위에서 모두가 들떠 요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각종 양념과 현지에서 구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로 진수성찬이 차려졌고, 정말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특별한 파티를 가졌다.


망망대해의 배에 하루 종일 있으면 심심하지 않느냐고 많이들 묻는다. 바다 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간다. 우선 해가 뜰 무렵 일어나 차를 한 잔 마시며 밤새 고생한 크루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철썩이는 바다를 곁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식사 준비를 한다. 바다가 잔잔할 땐 누군가 나서서 요리 솜씨를 발휘한다. 요트에 저장해 놓은 물의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 그릇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덮밥이나 국밥, 샌드위치 등이 주 메뉴다. 식사 후엔 배의 이곳저곳을 정비하고 다시 바다에 시선을 던진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배가 많이 흔들리면 그마저도 할 수 없다. 낚시 줄을 내려 바다 위의 세월을 낚는 사람도 있고, 그저 생각에 잠기는 사람도 있다. 다시 빨갛게 해가 내려앉는 모습을 보며 밤을 맞이한다.

지루할 것 같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바다는 우리에게 계속 선물 같은 즐거움을 준다. 겨울이어도 지중해의 바닷물은 그리 차갑지 않아서, 햇살이 좋은 날엔 바다 한가운데 퐁당 들어가 수영을 한다. 또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으면 가끔씩 수면 위로 뭔가가 튀어오르는 것을 포착할 때가 있다. 물고기 또는 돌고래다. 하지만 너무 짧은 순간이어서 그걸 발견한 사람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그 놀라움을 나눌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환호성을 멈추지 못할 만큼 놀라운 일을 마주했다. 돌고래 다섯 마리가 우리를 계속해서 따라오며 헤엄을 치고 있었던 것! 두 마리가 동시에 뛰어오르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참이나 우리와 함께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고래를 본 적도 있고, 제주도의 돌고래를 멀리서 본 적도 있었지만, 그토록 가까이에서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소름 돋도록 신기하고 고마웠다.

새카만 밤이 와도 할 일이 없지 않다. 나를 둘러싼 하늘 전부가 오롯이 별로 가득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갑판에 누워 그 별 이불을 덮고 있노라면 여기가 내가 알던 지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망망대해는 이렇게 인간에게 외로움과 나약함을 느끼게 하기도, 홀가분한 자유와 포근함을 주기도 한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너무 소리를 치고 말았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여행이 있고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촬영을 위해 또는 여행으로 지중해 근방의 여러 나라를 다녔고 바다라면 얼마든지 보고 느꼈다 생각했다. 그러나 서는 곳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듯, 바다 한가운데에 나가니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요트는 크루즈처럼 큰 배가 아니어서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어디 다른 곳을 갈 수가 없으니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단 1초도 흔들리지 않는 순간이 없는 시간. 밤하늘에 빼곡하게 박힌 별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흔들리는 곳에선 카메라도 무용지물이었다. 누군가에겐 멀미를 유발하는 그 멈추지 않는 흔들림이 많은 것들을 재조합시켰다. 단순히 하나의 여행 방식을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바다는 이래야 하고, 여행은 무릇 이래야 한다는 편견들이 있었다. 그전까지 갖고 있던 바다, 요트, 여행, 사람에 대한 생각 하나하나가 파도에 부딪혀 부서지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다시 조립된 느낌이다. 

이 여행은 때로 목숨을 걱정해야 할 모험이었고, 때로는 그 누구도 해보기 힘든 귀한 경험의 순간들이었다. 특히 캡틴으로서 우리를 이끌었던 선장님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홀로 외로움과 파도와 싸우며 7개월 동안 항해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렇게 다양한 크루들을 하나로 모으고 신경 쓰며 바닷길을 가는 일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장님은 자칫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흥분하거나 권위적인 모습 없이 모두에게 매사를 나누고 수평적으로 대해 주셨다.

사진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나의 경우 직업의 특성상 돈은 멀고 경험은 가까이에 있다. 나름의 뜻을 품고 사진이라는 분야에 들어왔어도 늘 좋지만은 않았다. 흔들리고 흔들거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하나로 모여진 생각은 이것이다. “부자가 될 수 없다면, 부자의 삶을 살자.” 시간부자, 경험부자, 생각부자는 왜 부자가 아니란 말인가.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야말로 부유한 사람이 아닐까? 선장님은 지금 태평양을 건너는 중이라고 한다. 남은 3개월의 여정도 부디 무사히 마치고 반가운 마음으로 왜목항에서 다시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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