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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May 28. 2017

지중해 요트여행 pt.1

낭만의 바다, 뜻밖의 사투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설레었다. 지중해, 요트 그리고 여행. 얼마나 낭만적인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나는 지중해에 떠 있었다. 한국인 최초로 무기항(어떤 항구에도 들르지 않는 항해) 세계일주를 이뤄낸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님과 함께. 선장님이 크로아티아에서 새로 구입한 요트를 타고 한국까지 항해하는 특별한 여정의 일부를 동행한 것이다. 길이 15m의 작은 배에 다양한 직업과 생각을 가진 6명의 크루가 탔다.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를 관통해 그리스의 이오니아해를 지나 이탈리아의 티레니아해에 도착할 때까지 넓은 바다 위 조그만 요트 안에서 생활했다. 지중해 요트 여행이라는 말 만으로도 멋지지만 때때로 여행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험한 시간도 있었고, 지극히 잔잔한 바다를 보며 하루 종일 넋을 놓고 보낸 시간도 있었다. 이전까지 다녀본 수많은 바다와는 전혀 다른 바다를 경험한 여행이었다.




바다를 ‘여행’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비행기로 날아 넘어갈 수도 있고, 배를 타고 건너갈 수도, 해변에 누워 바라볼 수도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기려면 서핑이나 다이빙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생활’한다는 건 어떤 걸까? 7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배에서 내리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돈다는 건. 심지어 어떤 에너지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돛과 바람의 힘만으로 홀로 여행한다는 건? 김승진 선장님처럼 말이다. 선장님은 2014년 10월, 충남 당진의 왜목항을 떠나 무려 209일 동안 적도를 두 번 지나고, 가장 험하다는 남극해 가까이의 케이프 혼을 통과해 총 4만 2,000km를 돌아오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그 사이에 항구 어디에도 들르지 않고 누구의 원조나 도움 없이 홀로 지구의 바다를 한 바퀴 돌고 온 것이다.     


지난 2016년 봄, 운이 좋게 우리나라의 남해와 서해를 선장님과 함께 항해했다. 싱그러운 햇살 속에서 바다를 미끄러지던 일주일간의 체험은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번 항해 여행이 계획되었다. 선장님은 “이번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요트를 한국까지 가져오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넓은 바다에서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고 하셨다. 지중해부터 한국까지, 구간마다 다른 사람들이 타고 내리면서 총 8개월 동안 항해를 하는 여정이다. 또 한 번 그 여정에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아무리 거친 바다라 해도 선장님과 함께라면 걱정이 없었다. 덕분에 또다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크로아티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드리아해에 접한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 스플리트에 크루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다. 선장님은 한 달 전부터 준비를 위해 스플리트에 계셨고, 유럽을 여행하다 온 크루, 남미 여행을 마치고 온 크루도 있었다. 글을 쓰는 작가, 화가, 회사를 그만두고 온 직장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는 며칠 동안 스플리트항에 머무르며 앞으로 3주간 배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물자와 식량을 준비하고 배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했다. 중간중간 기항지에 들르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선장님이 무기항 세계일주를 했을 때보다는 준비가 어렵지 않았다. 스플리트는 인터넷도 잘 되지 않았고, 요트를 정박한 마리나 근처는 번화가도 아니어서 늘 조용했다. 아침에는 바다를 따라 뻗은 숲길에서 조깅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을 하는 그런 일상. 좁다란 배에서 먹고 자는 것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좁다고 해도 갖출 것은 다 갖췄다. 방향타가 있는 콕핏은 테이블을 펼치면 근사한 피크닉을 즐길 수 있고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는 주방 겸 거실도 여덟 명이 오붓하게 식사하기에 좁지 않다. 거기에 네 개의 객실이 있고 화장실도 세 개나 된다. 작지만 샤워실도 갖췄다. 좁은 공간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계속 이동한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유쾌한 분위기 덕에 마지막까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서로 더욱 단단해지게 만들었다.

여유시간이 생겨 스플리트 시내와 그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스플리트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조그만 항구도시, 트로기르는 특히나 아름다웠다.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작은 마을은 아드리아해의 중세를 가득 머금은 채 석양에 물들고 있었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숨은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드디어 출항. 모두가 얼마나 기다려 온 순간인가. 적당한 바람과 맑은 날씨가 우리의 항해를 축하해 주었다. 기쁨을 만끽하며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던 것도 잠시. 한 명 두 명 멀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요트는 일반 배보다 훨씬 크기가 작아 파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거기에 돛을 펼치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배가 기울어지기 때문에 적응이 더 힘들 수 있다.

출발할 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잠을 자거나 먼 바다를 보며 간신히 몸을 추스렸다. 육지보다 바다에서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는 선장님은 홀로 부지런히 돛과 방향타를 조정했다. 평소에 멀미를 잘 하지 않는 나도 계속 흔들리는 배에서 중심을 잡으려니 만만치가 않았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크고 작은 배를 타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넓은 바다에서 이렇게 조그만 요트를 탄 것은 처음이었다. 선장님과 한국에서 요트 여행을 했을 때와는 달랐다. 아름다운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지고 나니 그 차이를 더욱 크게 느꼈다. 항해를 하는 동안 전기는 꼭 필요한 만큼만 아껴 써야 하기 때문에 밤에도 불을 켜지 않는다. 겨울이라 5시면 해가 지는데 말이다.

지난번 남해 연안에서 항해 여행을 했을 땐, 매일 저녁이면 닻을 내려 바람이 덜 부는 어딘가에 정박해 놓고 저녁을 먹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곁들이는 술이 그렇게나 달았다. 저녁을 먹은 뒤엔 요람처럼 흔들리는 배 안에서 편안히 잠을 잤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때와 같은 낭만을 기대했지만 지중해 망망대해에서 하는 항해는 달랐다. 배를 정박할 곳도 없을 뿐더러, 밤새워 불침번을 서며 배의 항로를 계속 체크해야 했다. 밤 동안 이동하지 않고 세워 두면 조류에 의해 의도치 않은 곳으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끝없는 흔들림, 암흑의 밤이었다. 기대했던 낭만은 어디에도 없고 사방에 어둠만 남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3일 정도면 된다. 더 빠른 사람도 있고, 좀 더 걸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다들 금세 적응을 마치고 바다 위의 생활을 즐기게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엔 강력한 폭풍우를 만났다. 높이 5~6m의 집채만 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커다란 풍랑을 넘느라 배는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다. 요트 앞부분에선 잠을 자려고 누우면 무중력 상태처럼 몸이 붕 떠올랐다. 물론 요트는 다른 배에 비해 복원력이 우수해 뒤집히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모두가 깜짝 놀랐다. 파도가 배를 때리는 소리는 당장이라도 배를 쪼갤 듯 거셌다. 배 위로 나오려면 암벽등반 장비인 하네스를 몸에 걸고 배에 안전줄을 매야 했다. -도대체 그 많은 술은 왜 샀던걸까 하며 후회했다- 펼쳤던 돛을 접고, 방향만 잡으며 어렵사리 앞으로 나아갔다. 선장님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 힘을 합쳐 이틀간의 사투 끝에 도착한 이탈리아 시칠리아 항구. 세상에, 그렇게 문명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누군지도 모르는 마리나 직원을 향해 반가운 손을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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