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진 May 02. 2017

어떤 인연

터키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기

비행에 배려가 더해지면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된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나는 김승진 선장님과 지중해 요트 여행을 했다. 출발지인 크로아티아로의 여정을 준비하던 중 터키항공과 감사한 인연이 닿아 비즈니스 클래스에 탑승하는 행운을 얻었다. 비행기라면 수없이 타 보았지만 비즈니스석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넓은 좌석과 180도로 펼쳐지는 베드에 누워서 갈 수 있는 편안함은 기본이고, 세심한 서비스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좌석에 앉자마자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메뉴를 받았다. 달콤한 음료로 목을 축이며 기분 좋게 이륙을 기다렸다. 곧이어 나오는 어메니티도 훌륭한데, 그중 헤드폰이 압권이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오디오 명가 데논(Denon)의 헤드폰을 제공받는다. 기내에서는 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거기에 최적화된 헤드폰이라고 생각한다. 비행기 엔진 소음을 차단하는 기능도 뛰어나고, 귀에 닿는 패드는 한없이 부드러워 10시간의 비행 내내 끼고 있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도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는 터키항공의 기내식은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더욱 훌륭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편의 메뉴에는 한식이 포함되어 있지만, 터키식 메뉴도 우리 입맛에 제법 잘 맞는다. 터키를 여행할 때 맛본 수많은 음식들이 맛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식사를 할 때도 세심한 서비스에 여러 번 감탄했는데, 우선 기내식을 나르는 사람이 셰프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플라잉 셰프가 직접 음식을 서빙해 주는 터키항공의 특별한 서비스였다. 레스토랑 분위기를 내는 LED 초를 켜 주고, 소금과 후추는 터키를 상징하는 블루 모스크 모양의 통에 담겨 나왔다. 보기에만 귀여운 게 아니라 사용도 편리하다. 양념통이 워낙 작기 때문에 실수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자석을 부착해 뒀다. 귀여워서 자꾸 뗐다 붙였다 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덕분에 3주간의 항해를 하는데 그 시작과 끝이 아주 편안했다.

이런 비행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크로아티아행을 계기로 감사한 인연은 계속되었다. 터키항공은 조금 새로운 문화적 이벤트를 제안해주었다. 그들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스탄불의 지리적 이점 덕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70개 국가, 297개 노선을 취항하고 있다. 그중 한 곳을 찾아 사진으로 담고 엽서를 만들어 승객에게 나눠드리고 일부는 판매해서 좋은 일에 사용하자셨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안이었다. 사진가로서 아주 큰 보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명을 제안하셨는데, 사진은 혼자서도 가능하니 다른 시선을 섞어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그림과 음악을 더하고 나니 기획이 풍성해졌다. 그렇게 화가 김물길과 뮤지션 프롬이 합류한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생겨났다.

297개라니. 선택지가 많아지니 오히려 선택이 어려워졌다고 할까. 마침 대화중에 지난 12월 첫 취항한 쿠바에 대한 이야기가 스치듯 나왔고 그걸 우리는 놓치지 않았다. 나와 김물길 작가는 이미 한 번씩 다녀온 기억이 워낙 좋았던 터라 적극 추천했고, 특히 김작가는 쿠바여야 작품이 잘 될거라 했다.

넉 달 뒤, 정말 우리는 그곳을 향해 떠났다. 어찌 된 인연인지 나는 3월과 4월, 한 번씩 쿠바에 다녀오는 기회가 생겼다. 한 번은 캐나다 토론토를 거쳤고, 또 한 번은 당연스레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서 다녀왔다.


비즈니스 클래스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라운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9년 전 세계여행을 할 때에도 라운지 패스를 만들어 떠났기 때문에 페루의 리마부터 파리의 샤를 드골까지 수많은 라운지를 드나들었다. 라운지가 별 차이 있겠나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 경험은 끝이 없었다. 세계 1위라는 이스탄불 터키항공 라운지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우주선에 승선하는 기분이었다. 그전에 이미 충격을 받고 들어온다. 무슨 라운지 입구에 검색대가 있냐.고 생각하는 찰나, 긴 줄을 서지 않고 라운지 이용객을 위해 따로 설치된 보안검색대를 지나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마주했다. 이용 후 출구를 나가면 바로 탑승게이트로 연결되는 아주 편리한 구조다.    


규모부터가 압도적이다. 두 개 층으로 구성된 넓은 라운지에는 곳곳에 마련된 바와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설을 즐길 수 있게 해 놓았다. 고급스런 샤워실은 물론이고, 수면실, 영화관, 게임장, 스크린골프에 포켓볼까지. 라운지가 아니라 여느 휴양지의 리조트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긴 대기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칼리파와 술탄의 나라.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오늘에도 이어온 터키. 비록 최근의 정세가 여러모로 흔들리고 있지만 수많은 문화재와 역사적 의미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문화를 공간 곳곳에 녹여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은 다시 떠올려도 인상적이었다.

단지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써 가장 저렴한 가격을 검색해 항공사를 선택하는 요즘이지만, 깊은 고민과 배려는 여행자에게 새로운 경험과 기쁨을 준다. 돈이 좋은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직업의 특성상 나의 경우 경험은 가깝고 돈은 멀다. 비록 일정치 않은 수입에 고민하다 항공사의 협조를 요청해 시작된 인연이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잠시 언급했던 쿠바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알차게 준비 중이다. 단지 엽서와 이야기로만 끝내기에는 아쉬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

편안하게 떠나서 치열하게 담아온 화가와 음악가, 그리고 사진가의 결과물은 올 여름에 공개된다.

작가의 이전글 남쪽의 길 Ruta del Sur _#Epilogu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