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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Apr 11. 2017

남쪽의 길 Ruta del Sur _#Epilogue

강연장 가는 길

제법 먼 길을 운전했으니 운전이라면 진저리가 날 만도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두 달 동안 한국을 떠나 타지를 떠돌다보면 무언가가 그리워질 수 있다. 아쉽게도 애인이 없으니 그런 대상은 아니고 정작 그리운 것은 내 차, 내나라 길이었다.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돌아가면 실컷 마음대로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마침 부산에서 강연이 잡혔다. 당연히 평소대로라면 KTX를 타고 갔을 부산이다. 그 먼거리를 굳이 차를 타고 나섰다. 매일 700~800km를 운전하고 나니 한국의 잘 뻗은 도로에서 300km 정도를 가는 일은 쉽게 느껴졌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운전 할 때의 거리감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나절이면 가는 부산이지만 가는데 3일, 오는데 3일을 잡았다. 안동에 가려다가 친구의 부름에 밀양을 들르고, 포항을 거쳐 부산에 닿았다. 밀양에서 포항은 부산으로 가는 반대방향이지만 상관없었다. 내 마음대로의 여행이니까. 안동에 예약해 둔 한옥 호스텔의 예약도 당일 취소가 안된다기에 쿨하게 포기했다. 내 마음이니까.


두 달이나 남미에 있었고, 자유롭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면서도 어딘가에 '진짜' 자유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나보다. 진짜 자유가 꼭 멋대로, 하고싶은대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는 로드트립에 대한 로망을 정작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실현하고 있었다.


첫날은 숙소를 포기한 대신 차에서 잠을 잤다. 8년 전, 친구 호수와 차를 빌려 리옹에서 디종으로, 다시 파리까지 자동차여행을 했던 때가 떠올랐다. 없는 돈에 차를 빌렸으니 숙소는 포기했어야 했다. 조그만 차였지만 그리 불편하지 않았고 우리는 마냥 즐거웠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차장에서 밥을 먹었다. 씻는 문제가 남아있었지만 며칠 다니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특히나 유럽은 큰 규모의 호스텔이 도시마다 있고 직원들은 손님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주머니 한쪽에는 샴푸, 한쪽에는 수건을 찔러넣은채 자연스럽게 들어가 공용 사워실에서 씻고 유유히 빠져나온다. 나중에는 호스텔의 라운지에서 영화를 보며 와인까지 한 잔 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친구도 사귀고 말이다.

아. 이번에는 돈이 없거나 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러고 싶었다. 차를 세운 곳은 어느 대형 사우나 주차장. 일어나서 개운하게 씻고 출발하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었다.  

영남루의 야경을 보며 우리는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눴다. 술도 없이 말이다.


이튿날 포항에 사는 친구를 보러 나는 밀양에서, 다른 한 친구는 서울에서 건너왔다. 포항 친구가 서울로 오면 되지 않느냐고? 그거하고는 또 맛이 다르다. 친구는 포항 곳곳을 안내하며 자기 구역에 온 우리를 환대했다. 덕분에 맛난 회 한 접시는 기본이요, 사람 없는 어느 포구에 자리를 잡고 하염없이 바다를 보며 맥주를 홀짝거릴 수 있었다. 트렁크를 테이블삼아 바람을 즐기는 그 시간이 그렇게 달콤했다.

애정하는 브룩라딕과 함께하니 그 풍미는 배가 되었다. 그 때 찍은 사진들에 #남자의길 이라는 태그를 붙였는데, 어쩐지 이상한 허세병에 걸려서 자동차와 위스키, 그리고 시가를 오브제 삼아 사진을 찍고는 했다.

포항 친구들은 마침 일정이 맞아서 부산의 강연장까지 함께했다. 선루프를 열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그 어떤 여행과도 바꿀 수 없는 상쾌함이 있다.

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부산 친구들과 합류했다. 제법 자주 오는 부산이지만 직접 운전해서 다니는 재미는 사뭇 달랐다. 극심한 러시아워를 피해 차를 세우고 꼼장어 집에 모여앉았다. 사실 나를 제외하고는 서로가 모르는 사이인데 금세 친구가 된다. 이거 우리나라에서 어느 다른 나라의 민박집 거실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부산사는 은경누나가 잡아둔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한국에서 에어비앤비를 해 본 건 처음인데 부산은 워낙 큰 도시라 그런지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깔끔하고 훌륭한 숙소였다. 이렇게까지 환대를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반가운 만남은 전주와 광주에서도 이어졌다. 혼자 다니니 좋은 숙소가 굳이 필요없는데도 불구하고 호스텔이든 호텔이든 제법 훌륭한 곳에서 머물수 있었다.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라온 내가 그래도 곳곳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니 더욱이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하는 일에 비해 자동차를 늦게 산 편이다. 특히 건축사진의 경우는 지방에도 다닐 일이 많은데 장비를 바리바리 들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갈아타며 현장에 갔다. 강연할 때도 마찬가지. 그나마 적당한 정도의 의전(?)이 따라오는 경우에는 역이나 터미널까지 담당자가 마중을 나와주기도 한다.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지만 불편한 것은 어쩔수 없었다. 차가 생기니 확실히 차이를 느낀다. 친구들과의 무작정 여행도 우선은 차가 있으니 결정이 쉽다. 홀로 생각할 것이 있을 때에도 조용한 음악을 틀고서 천천히 어딘가를 향한다. 이 얼마나 좋은가.


군생활을 보급수송대대에서 한 탓에 다양한 자동차를 다뤄볼 기회가 있었다. 운전병이 아니어도 장교의 경우 교육기관에서 9톤 트럭까지 다루는 법을 배우고 면허를 따야 한다. 그 덕에 어떤 낡고 큰 차도 부담없이 운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 쓸 일은 그닥 없었다. 김중만선생님 밑에 있을 때에는 언젠가부터 늘 선생님을 모시고 다녔다. 이동할때에는 뒷좌석에서 주무실 때가 많았는데, 명진이가 빨리 가면서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라셨다.

그때는 그저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은 옆에 누군가 타게 되면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아니, 요새는 급한 일이 아니면 빨리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홀로 운전하는 시간도 좋지만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누는 대화도 몹시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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