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와 찾아간 카메룬 난민캠프
#_낯선 땅을 찾아갔다
척박하고도 아름다운 땅 아프리카. 하나의 대륙 안에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듯 아프리카도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면이 많다. 펭귄이 사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중앙의 늪지대와 초원, 나미비아와 사하라의 적막까지. 그중 중서부에 위치한 카메룬은 주변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그나마 살만한 곳이다.
그곳에 가기 전에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축구를 잘하는 나라라는 것 정도였다. 80년대 영웅 로저 밀러를 비롯해, 레알 마드리드에 있던 은지탑, 토트넘의 에코토, 바르사와 인테르 밀란에서 활약했던 흑표 사무엘 에투까지. 최근 한국으로 귀화한 난민 복서 이흑산의 이야기가 카메룬이란 나라 이름을 들어보게 했다. 그 외에는 특별한 인상을 갖지 못했다.
난민촌. 단어에 거부감이 들었다. 80개국이 넘는 곳을 다녔지만 그동안의 나라들과는 조금 다른 곳에 다녀왔다. 카메룬이라는 국가 자체도 처음이거니와 그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곳. 마을이라 하기도 이상하고 국가는 더욱 아닌, 그렇다고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대로 그저 절망적이기만 한 곳도 아니었다.
여전히 무자비한 살육과 내전이 존재하는 곳 아프리카. 중서부는 어지간한 모험가가 아니면 굳이 찾지 않는 곳이다. 카메룬의 바로 위 나이지리아에는 보코하람이라는 무시무시한 무장 테러 단체의 근거지가 있다. 세뇌된 소년병뿐만 아니라 여성은 교육받아서는 안된다는 미명 하에 납치와 살해를 일삼는 조직이다. 또 다른 인접국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AK소총과 살벌한 칼 마체테로 무장한 민병대가 벌이는 잔인한 인간사냥의 피로 얼룩진 나라다.
무장단체를 피해 터전을 떠나온 난민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카메룬으로 건너왔다. 유엔 난민기구에서는 카메룬 정부의 협조로 국경 부근에 캠프를 세웠다. 유니세프의 보고에 따르면 카메룬에 머물고 있는 난민의 수만 32만이 넘는다. 우리가 방문한 케테(Kette)의 캠프에는 7,000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들은 자국 국경으로부터 불과 80km 떨어진 곳에 마을을 이루어 살아간다.
유니세프의 여러 모금활동 중에서도 명사와 함께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형태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지난 1월 KBS를 통해 방영된 '2018 유니세프 블루 라이팅'에는 세 명의 배우가 카메룬을 비롯한 세 국가를 찾아 그곳의 실태를 알렸다. 나는 배우 류진과 함께 카메룬으로 향했다.
워낙 먼 곳이기도 한 데다 육로 이동 시간이 상당한 탓에 가는데 3일, 다시 오는데 3일이 걸렸다. 먼 길을 건너 현지에서 미리 섭외와 촬영을 위해 선발로 와 있던 방송팀을 만났다. 처음 본 난민촌의 모습은 원래의 생각과 좀 달랐다. 우리가 도착하니 온 동네 아이들이 뛰어나와 구경을 했고, 드론 같은 촬영장비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넋을 놓았다.
카메룬을 비롯한 여러 아프리카 국가는 인구 분포에서 18세 미만의 어린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일반적인 국가라면 성장동력의 잠재력으로 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카메룬만 해도 18세 미만 14%, 5세 미만 영유아 16%에 달하며 그중 영양실조로 인한 어린이 사망률이 전체의 45%를 차지한다. 열다섯도 안 된 아이가 아이를 낳는 조혼, 일부다처제, 무자비한 약탈이 그 주된 원인이다.
#_낯 모르는 죽음의 애도
원래 우리가 취재하기로 했던 아이가 있었다. 방송팀은 한 주 동안 그 아이의 영양상태와 말라리아 치료 과정 등을 촬영했다. 아직 엄마라 하기에는 너무 어린 소녀의 삶도 조명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카메룬에 도착한 그 날.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방송에 차질을 빚은 것은 차치하고 현장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불과 어제까지 이 침대에 누워있던 아이가 지금은 없다. 누군지도 모를 그 아이가 안타까웠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말라리아와 영양실조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없다시피한데, 이곳에선 흔한 일이란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장례식이나 별다른 절차 없이 세상을 떠났고 현지의 관계자들은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한다. 워낙 많이 겪는 일이라 그럴 테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이 곳에 숨 쉬던 아이 아닌가. 다른 아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카메라만 졸졸졸 따라다니는 호기심 넘치는 아이들이 다수이지만 뼈만 남은 채 병상에 누워 하루하루 사투를 이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필드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유니세프의 방침은 상당히 확고한데, 특정 아이에게만 후원을 하거나 잘해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있다. 모두를 위한 조직이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를 나눠주어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도록 한다.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단체인 'Make a Wish'와는 어찌 보면 정반대의 지침인 것이다. 그곳에 오랜 시간 재능기부를 하면서 아이 한 명 한 명이 소원을 이루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아 오다가 여러 아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돕기 위해 활동하는 조직을 보니 묘한 대조를 느꼈다.
떠나간 아이를 생각할 틈도 없이 병원의 실태를 촬영해야 했다. 이미 현장 관계자들을 통해 촬영 허락을 받아 둔 상태였지만 차마 카메라를 들 수가 없었다. 카메라라는 기계가 너무나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10명 남짓한 병실, 한 명 한 명 아이와 엄마에게 눈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겠다는 동작을 취하니 다들 나를 응시했지만 정작 셔터를 누르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현지 직원도 병원 관계자도 괜찮다 했지만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작가님 오전 중으로 마치고 떠나야 돼요. 얼른 하세요.' 채근하는 그 말이 더없이 차갑게 들렸다.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날씨나 환경 등의 상황이 좋지 않아도,
시간이 부족해도,
그 어떤 여건에서도
제법 쓸만한 사진을 건져낸다는 자신이 있었다.
밀라노의 캣워크도, 네팔의 돌투성이 설산도 모두 다 즐거운 촬영이었다.
이 날처럼 카메라가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한참을 바라만 보았다.
다들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사진이 다만 십원이라도 모금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와는 아무 관계없는 먼 곳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만 하면, 이 사진 찍어도 되는 걸까. 나만 쓸데없이 감상적인 걸까. 누군지도 모를 그 아이의 죽음은 어차피 나와 상관없는 일 일까. 뻔한 생각으로 시간을 한참 허비한 후에야 조심스럽게 몇 장을 담아냈다.
이렇다 저렇다 결론도 떠올리지 못하고, 심금을 울리지도 못할 그저 어정쩡한 사진 몇 장이 남았다.
이틀씩 비행을 하는 것도, 8시간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도, 그쯤은 아무 문제 없지만 정작 해야 할 일 앞에서는 머뭇거렸다. 연마할게 여전히 많다.
아직은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