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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Mar 22. 2020

엄마의 오로라 pt.2

여신의 춤사위를 보았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끼니마다 맛난 음식을 즐기며 3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애드먼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말로만 듣던 옐로우 나이프 국립공원으로 간다. 긴긴 여정을 지나 옐로우 나이프에서 우리를 맞아준 것은 혹독한 추위. 오로라를 관측하기 좋은 때는 12월~3월 사이인데 우리가 갔던 2월에는 낮에도 영하 10도의 기온을 자랑하며 밤에는 영하 29도까지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더구나 오로라를 보려면 밤 10시부터 이동을 시작하는데 짧은 시간만 밖에 있어도 금세 모든 것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관측하기 좋은 곳에다 인디언식의 티피 텐트를 쳐 놓고 그 안에 난방기구를 갖춰놓아 여행객들이 대기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오로라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날씨만 좋다면 늘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첫날 흐릿하게 본 것 말고는 삼일 째 성과가 없다. 마지막 밤이라 점점 더 초조해진다.

텐트에서 각국의 언어로 두런두런 대화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누군가 “나왔다!”라고 외치는 순간 우르르 몰려나간다. 우리는 그저 와.. 하고 탄성을 지를 뿐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저 멀리서부터 가까이에까지 온통 빛의 커튼이 춤을 추고 있었다. 빛의 장막은 때로 부드럽게 때로는 격렬히 움직이며 시선을 붙들었다. 세상에.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장면을 보아왔지만 이렇게나 전율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저 멀리 태양의 대전 입자가 지구의 대기에 와서 끌려오며 이온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과학적 지식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경이와 감탄만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 움직임과 규모에 압도되어 한편으로 두려움이 일 만큼 빛의 움직임은 놀라웠다. 옆에서 보고 계시던 어머니는 순간순간 비명을 토하시며 그렇게 신기해하셨다. 

뒤늦게 축포처럼 터진 밤하늘의 공연 탓에 예정되어있던 귀가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숙소로 들어왔고 셔터를 누르느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오른손은 다음날 손등이 꺼멓게 동상에 걸렸다. 어머니는 시간이 지나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밴프의 아름다운 호수가에서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문득 오로라의 놀라움을 표현하셨다.

한국에 돌아와 주변에 아무리 이야기를 하셔도 보지 않은 사람들은 공감하기가 어려웠을 테다. 어린 시절 따라간 여행도, 나이가 들며 모시고 간 여행도 다 좋지만, 역시 무엇보다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여행 메이트가 제일 좋다. 내가 술 먹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면서도 오로라를 보러 가기 전 숙소에서 직접 구운 스테이크와 함께 한 맥주 한 잔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시는 분. 여전히 14년이나 지난 낡은 차를 운전하시면서도 장성한 자식들 끼니 걱정을 하시는 분이다. 어느 자식의 마음이 그렇지 않겠는가만은 더 열심히 하고 잘 되어서 울 엄마 사막도 보여드리고, 쿠바에서 모히또 한 잔 사드리고 하면 좋겠다. 익숙한 것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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