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에서 옐로우나이프까지
보기에는 세상 자유롭게 보이지만 나는 제법 엄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엔지니어, 어머니는 공무원.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경기도 안산에 갔다가도 다시 5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것은 오로지 자식들의 공부 때문이었다. 말썽을 부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곧이곧대로 말을 잘 듣는 아이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맞기도 참 많이 맞았더랬다. 시골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산에 불을 내서 소방차가 출동한 그 날은 그야말로 엉덩이에 불이 났더랬다.
특히나 어머니는 검찰 공무원이었던 탓에 눈높이가 많이 높았다. 그저 그림이나 실컷 그리고 서점에 틀어박혀 있느라 공부할 시간 같은 건 없었던 내게 많은걸 원하셨다. 억지로 공부시키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꼬마와 어떻게든 시키려는 젊은 엄마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제법 잘 지냈다. 사춘기가 돼서도 이런저런 상의를 하고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전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어릴 때 그림을 그렸고 그걸 제법 잘해 큰 상도 받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예고를 거쳐 미대에 갈 줄 알았다. 그러다 중학생 때 미국 NASA에 방문하는 바람에 꿈이 생겼고, 어렵사리 공대에 진학했다. 대입과 동시에 나사의 제트추진연구소(JPL) 같은 곳에 가려던 꿈은 먼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 세계일주를 다녀와 우연한 기회에 사진을 배운 뒤 여태 그 길을 가고 있다. 개인의 일이라면 그럭저럭 재미난 삶이기는 하지만 그런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과연... 어느 한 부분도 쉽사리 동의해주기 어려울지 모른다.
내가 성인이 되어 여행이라는 것을 알기 전, 아버지는 여행을 좋아하셨다. 예전 주 5일제가 아닌 토요일 오전 근무가 있던 그때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면 아버지는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어딜 가는지도 모른 채 뒷 좌석에 앉아 동생과 떠들거나 어머니가 준비해 오신 음식을 먹다 잠들면 늘 새로운 장소가 펼쳐지던 주말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다니는 일이 업으로 될 줄 몰랐지만 어디로나 갈 수 있는 이 시대에, 뜻밖의 상황에 의해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어지니 어린 시절의 여행들이 새삼 떠오른다. 일상이던 것들이 비일상이 되면서 작은 것들에 의미가 생기고 소중해지는 요즈음이다. 그때 당시 근교가 되었든 어디 바다가 되었든 주말마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다니곤 하던 것이 나이가 들어 더 먼 곳으로 스스로를 이끌도록 하는 원천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말 안 듣던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고, 여동생이 시집갈 무렵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주'오랜만이라고 붙일만한 것이 우리가 어릴 때는 한 주가 멀다 하고 다녔는데,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된 뒤로는 자연스럽게(?) 그런 여행을 가진 않았다. 동생은 본인이 결혼하고 나면 더욱 그럴 기회가 없을 테니 다 함께 가자며 - 실은 사심을 채우려는 - 계획을 세웠다.
촬영으로, 여행으로 이미 다녀온 발리였지만 가족이 함께 휴양지에 온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제법 즐겁고 편안했다. 어른들의 사소한 요청사항 정도는 이미 여러 곳을 다녀본 여행자답게 그럭저럭 잘 채워드렸다.
아. '이미 여러 곳을 다녀본 여행자.'
이 지점에서 나는 불현듯 제 가슴을 쳤다. 명색이 사진 한답시고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강연이다 방송이다 여러 곳에서 여행의 아름다움과 정보를 떠들어대는 아들이 있는데. 정작 당신들은 아무런 도움도 받아본 적이 없으셨더라는 말이다. 그 생각은 해 질 녘의 스미냑 해변에서 정점에 닿았다. 해변에 떨어지는 보랏빛 노을, 물이 조금 빠져나간 모래사장은 마치 거울처럼 그걸 반사하고 있었다. 해변에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어머니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작 그녀는 그토록 자유로운 해외여행은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가만 보면 부모와의 여행은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따라 간 여행’과 ‘모시고 간 여행’. 가끔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완전한 여행 메이트로 잘 다니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나는 그런 성격은 못 되었다. 그러다 문득,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도 여러 곳을 잘 다니는데 어머니라고 못 할게 뭐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진가 전명진과 떠나는 여행’이라거나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와 함께하는 여행 등이 많은데, 어머니를 거기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어머니도 매우 좋아하셨고 그 덕에 이탈리아, 베트남, 캐나다 등등을 룸메이트로 함께 했다.
캐나다를 여러 번 다녀왔고, 아이슬란드에도 다녀왔지만 유독 오로라와 인연이 없던 나는 부담이 몇 배가 되었다. 홀로 못 보게 되면 아쉬움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지만 함께 떠난 참가자들과 어머니까지. 자연의 조화를 개인의 책임으로 넘길 수야 없겠으나 제법 부담스러운 출발이었다.
여행 프로그램을 오로라에만 맞추기에는 현지의 날씨나 오로라 지수의 영향이 너무 큰 데다, 넓고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캐나다에 오직 그것만 보러 가는 것도 많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눈 덮인 로키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즐기며 오로라를 향해 가는 일정을 만들었다. 10년 전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밴쿠버에 도착해 여정을 시작한다. 시내의 개스타운이나 스탠리 공원도 둘러볼만했지만 여행의 백미인 오로라를 만나기 전에 기대하던 일정이 있었다. 바로 록키산맥을 헤치고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는 비아레일의 탑승.
땅이 넓은 국가에서 장거리를 이동하려면 보통 비행기를 이용하지만, 그 외에 기차나 도로가 발전한 국가들이 있다. 보통은 인도나 러시아 등 평지가 많은 나라들이 그런데 캐나다는 국토에서 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러 산림자원 등을 옮기기 위해 철도가 발전해 있다. 항공의 발달로 이제는 승객보다 물류의 운송에 초점을 맞춘 기차가 많지만 국민들이 여전히 타고 싶어 하는 기차, 바로 비아레일이다.
굳이 요즘 같은 때에 기차의 낭만을 찾느냐 하겠지만 이 구간은 짧게는 이틀, 길게는 열흘씩 타고서 캐나다 전역으로 이동한다. 캐나다 제1의 도시 토론토와 서부의 밴쿠버를 잇는 캐네디언(The Canadian)과 브리티시 콜럼비아주 북부지역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스키나(The Skeena), 토론토와 몬트리올 사이의 주요 도시를 잇는 온타리오-퀘벡 종단 열차인 코리도어(Corridor Train)등 구간별로 각각 특색이 있으며 서비스가 다양하다.
우리의 구간은 캐내디언 라인 중에서도 밴쿠버에서 밴프, 재스퍼, 캘거리 구간을 운행하는 록키 마운티니어. 가는 내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캐네디언 록키산맥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달리는 호텔이라 불리는 만큼 장시간 이동하는 기차라고 해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 식당칸과 카페, 바는 물론 좌석이 침대로 변한다거나 아예 객실에 문도 달려있고 화장실과 침대가 딸린 방을 선택할 수도 있다.
마치 설국열차의 머리칸과도 같은 여유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나올법한 고풍스러운 열차와 풍경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다 한 층 위로 올라가면 3면이 유리로 덮인 방이 나온다. 눈 쌓인 기암절벽과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최대한 즐기며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어머니는 여기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끊임없는 수다 삼매경에 빠지셨다.
_pt.2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