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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진 May 29. 2020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숨결 pt.1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에 가다

지난해 딱 이맘때에 나는 터키에 있었다. 우리가 보통 교과서에서 배우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지명은 다른 문명과 달리 현대의 우리가 가 보기 어려운 곳으로 생각해 왔다. 보통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발원지는 터키의 동부 아나톨리아 고원이다. 두 강 모두 터키에서 시작하여 이라크를 북서에서 남서로 관통하여 페르시아만 인근의 바스라에서 합류한 뒤 바다로 흘러간다.

이집트와 황허, 인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가기 힘든 곳이라 염두에 둔 적이 없던 곳이었는데, 지난해 함께 작업하던 터키항공의 홍보 촬영으로 옛 문명의 중심지인 마르딘을 방문하게 되었다. 터키 서부와 중부는 여행으로나 촬영으로 몇 차례 다녀왔지만 시리아에 가까운 동남부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세상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지금이지만 여행에 아무런 제약이 없던 당시에도 터키 동부를 방문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라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새로 확장한 이스탄불 공항에 내려 다시 국내선을 타고 두 시간. 우리에겐 생소한 마르딘이라는 도시에 도착한다. 오랜 시간 동서양의 문명이 교차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동부는 확실히 더욱 오랜 문명의 흔적이 남아 현대에 흐르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느껴졌다. 옛 시리아어로 성채라는 뜻을 가진 마르딘. 기원전 2200년 경 언덕을 따라 조성된 도시의 골목을 천천히 오르면 어느 순간 아나톨리아 평원이 한눈에 보이는 성벽에 이르게 된다. 밤이 되면 마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어느 마을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이곳은 고대로부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평원 한복판의 언덕에 문명을 이루었다. 구시가지의 풍경 그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만큼 낮에도 밤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나 고대 도시 ‘다라(Dara)’는 현재에도 그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어 역사 연구에 중요한 곳으로 꼽히는데, 자연의 암벽 사이사이에 인간의 힘으로 구축한 오랜 마을이 인상적이다.  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당시의 관개시설과 댐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터키를 이슬람교가 우세하다고 생각하는데 기독교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들이 곳곳에 있다. 그 중 사도바울의 고향이 바로 이곳 다라였다. 더구나 노아의 방주가 마지막에 자리한 곳으로 터키 동부의 아라랏 산을 가리키니 의외로 여러 종교를 품었던 땅이라 하겠다.  

과거 실크로드의 아주 중요한 길목이었을 뿐만 아니라 18세기 오스만투르크에 점령당하기 전까지는 초기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곳이라 관련한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마르딘 동부의 데이룰 자파란 수도원(Deyrulzafaran Manastırı)은 1932년까지 시리아 정교회의 중심 역할을 하다 이후 난민 보호소 등으로 활용되어왔다. 무려 52명에 이르는 시리아 정교회의 교황들이 안장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로 찾기도 하는 곳이다.   


고대 히타이트 제국은 물론, 로마, 셀주크에 이어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왕국과 문명이 거쳐간 곳인 데다 개발의 광풍에 휘둘리지 않아 한 곳에서 여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덕분에 도시 곳곳을 거닐다 보면 마치 고대 아랍의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기독교와 더불어 이슬람교의 문화는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데, 1469년에 지어진 카스미예 신학교(Kaslmiye Medresesi)가 그 중 한 곳이다. 당시부터 신학과 철학,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움을 잉태한 지식의 요람이다. 건축에 담긴 삶의 철학적 의미가 개인적으로 매우 와 닿았는데, 단지 중정의 연못을 만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어 놀라웠다.

내부의 교실은 모든 문의 높이를 낮게 하여 누구나 지식을 대하는 데 있어 낮은 자세로 임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그뿐만이 아니다. 연못이라기엔 모양이 독특해서 물어보았더니 매우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중앙 벽 한가운데의 작은 샘에서 물이 나온다. 아래의 작은 못으로 물이 떨어지는데 그것이 탄생과 유년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작은 통로를 통해 다음의 기다란 공간으로 물이 흘러들어 가 천천히 흐르게 된다. 이것이 청년기이며 마치 같은 통로라고 생각했던 좁고 긴 공간이 노년기를 뜻한다. 그리고 수도원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가장 넓은 못이 바로 죽음의 영역. 인간 영혼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그곳이라고 한다. 뜻밖의 반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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